|
아내와 아이들이
외갓집에 가서 혼자였던 지난 밤에는 평소보다 오래 기도와 명상을 했다.
명상 도중 문득 죽은 이의 영혼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또, 깊은 밤
명상하는 도중 많은 사람들의 말소리를 들었다. 환청이었을까? 하여간
잘 들어보려 하자 그 소리들이 사라졌다.
오늘은 황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휴일인 오늘 오전,
혼자 산길을 걸으며 계속 현각 스님의 '만행'을 염두에 두고 매 순간을
명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끊임없이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감시한다는 것이 끔찍한 일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아마도 산을 넘으며 계속된 이 '수행'때문에 나의 신경이 매우 날카로워졌었는가
보다. 오후에 애들을 데리러 갔다가 아내와 약간 티격태격했고, 귀가하던
도중에 도로변의 사소한 정차 시비로 인하여,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 중년 남자와 멱살잡고 욕지거리를
주고받는 추한 사태까지 벌어졌다. 나는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았으나
그 남자에게 저속한 욕설을 내뱉었으며, 나중에 보니 내 윗도리는 찢겨져
있었다. 아내와 아이들 앞에서 나는 한 멀쩡한 남자와 멱살잡고 싸우고
옷까지 찢기는 경험을 한 것이다.
매우 부끄럽다. 보기 좋게
첫 시험에 미끄러진 듯한 기분이고, 이 사건이 주님께서 내게 정신차리라고
보내준 신호가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 남자에게 분노하고 욕설을
퍼부은 것에 대해 속시원하게 생각하는 나 자신의 모습이 가장 한심하다.
반성하고 속죄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나에게 하는 것과 똑같이 그에게
해댄 나의 행동에 만족해하고 있는 나 자신의 덜떨어진 모습에 좌절감을
느낀다. 그래서 피곤하다.
하지만 중요한 가르침을 얻었다. 내가
분노하기 시작하던 그 순간에 나는 명상을 완전히 망각해버렸다. 분노의
시작을 명상으로 대하였더라면 전혀 그런 일이 없었을 텐데. 매순간을
명상으로 생활한다는 것은 그토록 어려운 일이다. 앞으로는 괜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는데 그 텅빈 순간의 의미를 찾는답시고
머리 터지게 고민하지 말고, 나의 마음 속에서 인지적이거나 감정적이거나
정서적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어떤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을 때, 바로
그 내면적 전환의 순간에 나로부터 한 발자국 물러나서 나 자신을 바라보는
명상을 의식적으로 시도하자. 이건 아주 중요한 일이다. 이것이
진정한 만행의 태도일 것이다.
'감사합니다, 주님. 당신은 오늘의 불쾌한
경험을 통하여 내가 깨달음의 길로 한 발자국 더 가깝게 다가서도록
이끌어주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선 그렇지 않다면 그 추한 경험의
의미가 없겠구요. 항상 저를 지켜봐주시고, 항상 저를 가르쳐 주시는
것 알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나의 신이시여.'
나의 분노와
그에 따른 행위의 근저가 두려움임을 안다. 모든 이의 분노와 마찬가지로.
나의 자존심이 손상될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약간의 그러한 조짐을
보여주는 상황에서도 분노를 터뜨리게 되는 것이다. 언제나 진실로 커질
수 있을까 하는 막막한 마음도 든다, 솔직히. 하지만 나는 지금 이 순간
커지는 것을 선택하는 수밖에 없음을 안다. 이대로 이꼴로 살다가 일생을
끝낼 수는 없으니까. 나는 그 길을 선택하였다.
그 동안 내가 선택한 신의 메신저로서의 역할(신의 말씀을 배우고 전하는
학생이자 작가이자 교사)을 추구해옴에
있어서 지나치게 그 기능성에만 초점을 맞춰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신의
메신저가 되기 위해서는 흔히 말하듯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함은 물론이건만,
나는 이 '사람'이 되는 쪽의 수양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해온 것 같다.
그러니 아직도 분노를 다스리지도 못하고, 커지지도 못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신의 메신저와 더불어, 동시에, 나는 진정으로 커지기를
선택한다. 양자가 함께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겠다.
결과적으로
오늘 내게 일어난 사건이 주님의 은총임을 나는 매우 잘 안다. 이미
내 옷을 찢어놓은 그 남자를 위하여 기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어젯밤 들은 그 환청 같은 것은 일종의 경고였던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경고였다면 누가 보낸 것일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