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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fession>
1.
스무
살쯤에 개신교와 천주교 교회를 기웃거렸더랬습니다. 그러다가 바이블을
열심히 읽어보았죠. 구약은 지겨웠는데 신약은 뭔가 찡하게 다가오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이런 대목이 있더라구요: '원수(enemy)를
사랑하라.' 전 여기서 딱 막혀 버렸습니다. 원 세상에, 사람이 어떻게
원수를 사랑해? 이건 난 죽었다 깨나도 할 수 없는 일이고, 또 그런
걸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세상에 어디 있겠어? 교회 다니는 저 사람들이
그런 걸 할 수 있나? 아니야, 아무도 할 수 없어. 할 수도 없는 가르침을
믿는답시고 들러붙어 있는 거 자체가 위선이야....
전 그래서
교회를 떠났습니다. 내가 도저히 할 수 없는 걸 요구하시는 예수님과
친해질 수가 없었습니다.
2.
삼십대 후반이 되어
신을 만났습니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만져지지도 않으나, 그분이 거기에
계신 것은 놀라울만치 분명했습니다. 그때 나는 신께 울부짓듯이 물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니요? 날더러 그런 걸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말이예요?'
초월자의 손길을 뿌리쳐 버린지 거의 이십년이 지나고서야 그분은 내게
다음과 같은 답을 주셨습니다: '너는 배울 것이다.'
3.
신과의
만남 이후에 나는 한 사람의 박해자, 적, 또는 원수를 만났습니다. 그
사람이 나를 비열한 술책으로 박해한 일들 하나하나를 명료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나는 그것을 어느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습니다. 그는 나에게
'원수'까지는 아니었더라도 '적(enemy)'임에는 분명했지요. 여러 번
계속되는 박해 끝에 나는 응징을 획책하기도 했더랬습니다. 그러나,
그가 너무도 명백하게도 적(또는 원수)으로 다가왔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나는 주저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인 즉슨, 바로 얼마
전에 '너는 배울 것이다'라는 신의 말씀을 받았기 때문이었지요(특히
'원수를 사랑하라'를 배울 것이라는). 그래서 나는, 한 번 이를 악물고
내 감정을 억제해봤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참 신기하게도, 홀연히
이런 속삭임이 마음 한 구석으로부터 들려오더군요. '그에게 이야기를
해보아라.'
그런데 그것은 어떤 생각(idea)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마음의 움직임이었지요. 마음이 내 몸으로 하여금 그렇게 해보라고
가리키고 있더란 말입니다. 조용하지만 매우 강한 힘으로!
그래서
난 그를 찾아갔습니다. 심지어는 주먹으로 마구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증오했던 그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더욱 신비로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내가 그의 방문 앞에 거의 다다랐을 즈음, 저녁 때도 아닌데 마치 황금빛
석양이 나와 내 주변을 따사롭고 뽀얗게 감싸주는 것처럼 빛이 났습니다(아마
오후 두시에도 햇살이 창문을 통해 그런 현상을 일으킬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나의 발길 한 걸음 한 걸음이 마치 매우 느린 슬로우 모션처럼
느껴졌습니다. 꼭 시간은 정지해있고 내가 그 시간의 공중을 천천히
유영하고 있는 것 같다고나 할까요. 무언가, 아니 누군가가 나를 이끌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 이끌음 속에서, 그때까지 내가 그에게 가지고
있었던 증오와 적개심이 순간적인 고통의 감정과 뒤섞이며, 허공에 있는
진공소제기 속으로 빨려들 듯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그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 그간 둘 사이에 쌓인 감정을 완전히 제쳐두고,
일상적이고도 따뜻한 이야기를 한참 나눴습니다. 그에게 잘지내라는
인사를 하고 그의 방문을 나왔을 때, 나는 알 수 있었지요. 내가 그를
용서했음을.
나를 움직인 건 내가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내가
의식하는 나의 자아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나를 이끄는 그 힘에 내
몸을 맡기고 나서, 나는 나의 박해자를 끌어안고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나에게는, 간단히 말해서, 기적이었습니다.
4.
나는
그가 나를 왜 미워하고 박해했는지 대충 압니다. 내가 그를 용서한 후에도
그가 나를 미워하기를 그친 것은 아니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나를 박해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전혀 의도한 바가
아니었는데, 나는 그의 크나큰 약점을 손에 쥐게 되었습니다. 그때 나는
많은 고민을 했지만, 결국 그 약점을 묻어두기로 결정했습니다. 그것을
눈치 챈 그는 그 이후로 나를 두려워하고 피하더군요. 나는 그를 위하여
기도할 수밖에 없었구요.
그는 모르지만, 나는 그와의 만남으로부터
정말로 엄청난 것을 배웠습니다. 그것은 원수를 사랑하는 법을 배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또 다시 나를 박해하는 누군가가 나타나면
나는 그를 아마도 증오할 것입니다. 나는 원수를 사랑하는 법을 모릅니다.
아직도 그것은 내가 할 수 없는, 내 능력 밖의 일입니다. 나는 그런
일은 신께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원수를
사랑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은 배웠습니다. 신께 나를 맡기면
그런 일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것은 굉장한 깨달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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