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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가장 원초적인 기억 중 하나: 다섯 살짜리 여자애가
얼굴에 비누칠을 잔뜩한 채 눈을 번쩍 뜨고 날 바라봤을 때. 동갑이었던
나는 아직 그때까지 얼굴에 비누칠을 하고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눈이
아플까봐. 그애의 큰 눈은 정말 놀라웠다.
자라면서 나는, 아니
대부분의 사내애들은, 가짜 용기를 일방적으로 주입당했다. 사악하고,
폭력으로 가득찬 거짓 용기. 정신이 빠지도록 본 대부분의 만화와 영화와
테레비전 프로, 이 모든 것들은 일관되게 내게 거짓 용기를 주입해주었다.
물리적 힘의 우위를 통하여 정의로운 심판을 내리는 것이 용기라고.
첨단 무기로 무장한 로봇과 인조인간과 특공대가 야수와 같은 적들을
격퇴하는 것이 용기라고. 정의로운 서부의 기병대가 야만스런 인디언을
학살하고, 정의로운 미군이 악의 무리 독일군을 응징하고, 그런 것이
용기라고. 압도적인 힘의 우위, 부시, 럼즈펠드, 이라크 정벌, 장갑차
살인, '정의로운' 살인자 보호, '야인시대'에 열광하는 동포들... 그야말로 모든 것이 폭력의 미화라는
원칙 안에서 조화롭기 그지없다.
모순이 없다.
존경해마지 않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 '센과
치이로의 행방불명'은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 간단하게 보여준다. 압도적인
힘과는 아무런 관계 없는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 사랑하는 부모를
구출하기 위한 어린 아이의 순진한 간구, 어려움에 처한 이를 보면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강렬한 동정심, 나에 앞서 타인의 안전을 위하여
상대도 안되도록 압도적인 현실의 벽에 온몸을 내던지는 지극히 비현실적인
도전과 자신이라는 주체에 대한 인식, 아픈 현실도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고자
하는 주체 의식, 이런 것들이 진정한 용기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용기는 내면의 선한 본성에 직접 닿아 있다.
나는
자라면서 나의 진정한 용기를 잊었다. 아니 잊도록 강요받았다. 그리고
가짜 용기를 갖추도록 강요받았다.
나의 내면의 선한 본성에
닿아 있는 진정한 나의 용기는 타인의 아픔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마음과,
그 마음을 내 방식대로 표출시키는 것에 관련되어 있었다. 그것은 예를
들어서 여덟살 때 쯤에, 차에 치여 다리를 부러뜨린 채 피를 흘리며
고통스러워하던 개 한 마리를 보았을 때, 하나의 결정체처럼 내 앞에
불끈 솟아오른 내 내면의 본성이었다. 그런 개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던
간절한 마음과 그로 인해 흘린 눈물과 그 마음을 스스로 행동으로 옮기는 과정에 진정한
용기가 들어있다는 것을 정말로 늦게도, 늦게도 깨달았다. 진정한 용기가
근본적으로 선함과 부드러움과 친절함, 남을 걱정해주는 마음, 이런
것들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정말로 늦게야 깨달았다. 진정한 용기는
내 안의 신이 나를 충동해서 나의 선한 본질이, 나의 자비심이, 나의
사랑이 밖으로 튀어나오게 하는 것임을, 그리고 그것을 거부하거나 억누르지
않고 그대로 표출시키는 능력이라는 것을 정말로 늦게야 깨달았다.
이제
하나, 둘씩 가짜 용기를 버리고자 한다. 헛된 자아의 욕심과 허영을
지키고자 하는 가짜 용기는 세상에 폭력과 투쟁과 상처만을 안겨준다.
그런 용기로는 좁쌀 만한 공간도 치유하지 못한다. 나의 진정한 용기를
받아들일 때 나는 내 주변의 공간을 치유할 능력을 갖게 된다.
비누
범벅이 사이로 나를 바라보던 다섯 살 짜리 여자애의 눈을 보고 나는
속으로 감탄했다. '우와, 용감하다!' 통증의 공포를 뛰어넘어서 자신
앞에 펼쳐진 공간을 두 눈으로 보고자 하는, 자신에게 주어진 순간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그 마음이 바로 용기라는 것을 다섯 살짜리 나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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