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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허상의
세계에 있는 나에게 정욕은 압도적인 파워로 다가온다. 아침에 눈을
뜨자 마자 신에 대한 인사로 하루를 시작하려 했건만, 간밤에 인터넷
동영상에서 본 여인의 얼굴이 먼저 떠오른다. 신은 단지 저 뒤켠에서
말없이 나를 바라볼 뿐이고. 나약한 나를. 한없이 자애로운 눈빛으로....
내가
메시지를 전해주고자 하는 중생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전부 나보다 못하지
않다. 그들 모두와 나는 동일하게 인간일 뿐이다. 성스러운 척, 고상한
척, 저 높은 신과만 교통하는 척, 저들 보다 고결한 척 하는 순간 나는
더 이상 메신저가 아니다. 나약한 나를 똑바로 보라. 그 나를 끌어
안아라. 그리고 겸허하여라.
아주 오래 전에 텔레비젼에서 황진이를
주인공으로 다룬 사극을 본 기억이 난다. 황진이 역의 이미숙이 도사
김무생을 유혹하는 장면이었다. 천리를 깨닫고 득도했다는 도사가 수도하고
있는 동굴로 찾아간 황진이는 최고의 여색으로서의 재능을 총동원해서
기어코 그 도사를 무너뜨리고 만다. 꿋꿋하게 미색의 체취를 견뎌내던
도사님은 결국 참지 못하고 '내 너를 안아주리라~' 비슷한 외마디와
함께 황진이를 끌어안았고, 그리고는 십년불공 도로아미타불, 타락의
늪에 빠져 폐인이 되고 만다. 그 장면이 젊은 내게 왜 그다지도 인상
깊었던지....
그 도사는 겸허하지 못했다.
2.
2년
전, 문을 쿵쿵 두드리며 답을 구했을 때, 마침내 신께서 내게 주었던
깨달음이란, 내 내면에 숭고하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진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진흙탕에서 피어난 한송이
연꽃 과도 같이. 그것은 진실이었다. 그러나 그 진실이 전부는
아니었다. 인간 내면의 어두움, 음습함, 더러움 역시 전체적 진실의
한 부분임을 깨닫게 되었다.
- '허튼 소리'의 주인공, 걸레 스님
중광의 기행(奇行)이 우리 인간 사회의 거울임을 이해한다.
-
내가 존경해 마지 않는 신앙의 친구가 '지퍼 게이트'로 곤욕을 치룬 빌
클린턴을 마치 음란증 환자와 같은 정신병자로 불렀을 때, 나는 그녀에게 클린턴을
이해할 수 있다는 반론을 차마 제기하지 못했다. 전세계의 웃음거리가
된 클린턴 전대통령을 그의 여러 용감한 정책 때문에 나는 존경한다.
- 젊었을
때는 미국의 텔레비젼 선교사(televangelist) 지미 스와가트(Jimmy Swaggart?)란
이가 포르노와 하드락을 그렇게 욕하면서 자신은 몰래 창녀를 찾아가
소위 변태적인 성행위를 즐긴 것이 폭로가 되어 텔레비젼에서 눈물로
참회하며 신에게 용서를 비는 장면을 보고 구역질이 났었다. 지금은
그가 정말 불쌍하기도 하고, 동정심이 들고, 그리고 축복해주고 싶다.
-
내가 존경하는 여자 동료가, 제 자식을 버리고 애인과 도망가 버린 무정한
엄마들을 자신은 욕할 수 없다고, 심지어는 이해 못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얘기했을
때, 나는 그녀의 솔직함에 머리 숙이며 깊은 성찰을 얻을 수 있었다.
-
바쁜 아내 대신 늘 갓난 아기를 돌보는 맘 좋기로 소문난 우리
동네 이웃 아저씨가, 제 자식을 죽인 사악한 아비(어미든가?)의
뉴스에 대한 얘기가 오갈 때, 자기도 아기가 밤에 울고 보채고
달래지지도 않으면 머리가 돌아 버려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고 고백했는데,
난 그의 말에 공감하며 내면의 아픔을 나눈 것에 감사했다.
-
O양
비디오를 인터넷에서 찾아내 돌려보는 주위 사람들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
피해자를 위해 기도했다. 그런데 나는 어젯 밤에 스팸으로
들어온 메일의 링크를 따라가서 포르노 동영상을 봤다. 그리고 즐겼다.
결국,
너희들 중 죄없는 이가 있으면 저 여인을 돌로 치라던 말씀은, 흉악한
죄인이 나와 다를 바 없다는 가르침이었다.
그래서 겸허하여라.
3.
우리
내면에는 우주가 들어 앉아 있는가 보다. 그중의 어둡고 사악한
면이 쉽게 겉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전쟁일 것이다['감성/지성'
섹션의 '평화사상' 참조].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도, 인터넷의 깊숙하고 음침한 곳을 쑤시고 다녀
보면 상상을 뛰어넘는 추악한 인간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다. 많은 작가들이
인간 내면의 마성(魔性)과 수성(獸性)에 천착한다. 그처럼 도무지
어찌해보려 해도 어찌 할 수가 없고, 우리를 숙명처럼 껴안고 놓아주지
않는 것이 우리 안의 악마인가 보다. 나는, 스스로 정의롭고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개신교 목회자들에게 솔직히 별로
신뢰가 가지 않는다. 그들을 판단하는 것이 나의 몫이 아니기에 아무
말 하지 않지만. 그런데 문인들은, 한 작가가 기독교에 귀의하게
되면 이제 그의 작가 생명은 다 된 것으로 여긴다고들 한다. 혹, 인간
내면의 악마성을 애써 외면하고, 깨끗하게, 오직 찬양만 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이 있는 관찰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에
더 이상 가치 있는 작품을 쓸 수 없는 것은 아닐런지.
누구나와
마찬가지로 내 안에도 우주가 들어 앉아 있다. 온갖 추함과 사악함까지도.
인간 내면의 어두움과 씨름하다가 그만 무릎 꿇어 버리는 어떤
작가들과 나 사이에 다른 점이 있다면, 그건 나는 그런 어두움이
나의 본질이 아니라는 가르침을 얻었다는 것일 게다. 나의 본질은 진흙탕이
아니라 연꽃이라고 신께서 가르쳐 주셨기 때문에. 그래서 가공할
어둠의 위력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는다. 결국엔 어두움도
축복이므로. 모든 것에 감사하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선택이므로.
그렇기는
하지만,
우리가
내면의 깊숙한 성찰로 얻게 되는 우주에 대한 관찰들은 대체로 진실에
관한 정확한 진술들일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 하나 하나가 그 자체로 거대한 진리의
전부인 것은 아니고, 그저 하나의 조각에 관해서만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진리는 너무도 크다. 무한할 것이다. 따라서 완벽한 진리를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건 신의 영역의 일이겠지. 지금 내가 알아낸 진실이 진리의
한 단편에 불과함을 깨달아라. 아무리 지금 내가 연못 위로 피어오르는
물안개 속에서 향기 높은 진실을 잡아내었다 해도 그것은 단지 부분일
뿐임을 기억하라. 그리하여 겸허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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