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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는
붓다의 말씀이 나로선 알 길이 없는 '실재계'의 진리라고 믿는다. 알지도
못하는 걸 어찌 믿느냐 물으면 할 말은 없다.
그런데 그 진리를
깨달은 이들에 대해선 많이 들어봤다. 나도 깨달을 날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저
내 수준에서 다다른 최소한의 깨달음이 있다면 그것은, 나의 삶의 최고의
유일한 권위가 내 내면에 있음을 안다는 것일 게다. 어디에나 계신 신은
내 내면에도 계신다. 내 내면의 신을 무슨 이름으로 부르던 간에, 그
신만이 나의 삶의 척도임을 안다. 그래서 다른 모든 척도를 폐기처분했다.
그리고 나만의 길을 걷기로 작정했다. 그 길을 '구도자'의 길이라고,
언급하기도 낯뜨거운 과분한 평을 해주신 이들도 있었지만, 어쨌든 내
밖의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인 'My Way' 임에 분명하다.
2.
하루에도
몇 번씩 이메일을 확인한다. 몇 시간 전에 확인한 것을 또 한다. 그러다
하루 해가 저문다. 문득, 내가 타인들에게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가를
깨달았다. 인정받기 위해 수많은 타인들에게 의존한다. 나의 전문가로서의 역량을
인정받기 위해. 나의 신앙의 깊이를 인정받기 위해. 나의 선함을 인정받기
위해. 나의 인간적인 개성과 매력을 인정받기 위해. 나의 고상한 - 제
눈에는 - 취향을
인정받기 위해. 나의 의지 강함을 인정받기 위해. 나의 남자로서의 매력을
- 이성들로부터 -
인정받기 위해. 그리고, 그래서... 나의 이렇게도 지독하게 자기중심적이기만 한 이고(ego)를
만족시켜주기 위해....
이놈의 이고는 얼마나 끈질긴 것인지....
너그러운
타인들은 늘 내가 그들에게 의존할 것을 허락해주고, 나는 그들이 허락도
안해주었는데 그들에 대한 나만의 기대치를 만들어 버린다. 그들이 나에게
이러이러하게 행동하여 주리라는 기대치를.
나는 그렇게 타인에게
의존해왔다.
3.
이 세상에 '배신'이란
것이 성립될까? 내가 상대방에게 가지고 있었던 기대감이 충족되지 못할
때 사람은 배신감을 맛보곤 한다. 누군가에게서 배신감을 느낀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자신이 얼마나 의존하고 있었는가를 알려주는 표시에 불과한
것 아닐까? 살아오면서 몇 번인가 배신감이라는 감정에 휩싸여 본 기억이
있다. 그 감정의 물결이 빠져나간 다음 다시 생각해보면, 언제나 내가
상대방에게 의존하여, 그들로부터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바랬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며칠 전에도 가까운 이에게서 배신감을 느낀 일이 있었다. 하루 이틀
지나고 보니 그 감정이 바로 이러한 자각을 가져다주기 위한 전초 작업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즉, 나는 스스로의 만족을 위하여 타인들에게
의존해 왔다는 자각을 가져다주려고.
나는 누구에게 의존해왔던가?
나의 가족, 존경하는 분들, 내가 매력을 느꼇던 이성, 가까운 친구들,
나에게 도움이나 조언을 구한 이들, 내게 일을 의뢰하고 나를 신뢰하는
이들, 나를 찬양하는 이들, 나를 비판하는 이들, 나의 제자들.... 그러니까,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내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 의존해왔었던 것이다!
정말
몰랐었다. 모르고 있었다. 난 내가 지극히 독립적인 인간이라고만 생각해왔다.
홀로 고고히 세파로부터 벗어나서, 삶의 길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독립적인
인간이 되었다고만 생각해왔다. 그런데 실은 철저하게 타인들에게 의존해왔고,
나의 독립적으로 보이는 독특한 삶의 행보마저 그 독특함의 껍데기를
유지하기 위해 타인들을 필요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나의 실상을
알아차렸으니, 나의 한없이 유치하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알아차렸으니, 나 자신과의 평화를 구하는 작업을 시작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그래서 진정으로 독립적이 될 수 있도록.
4.
며칠
간의 숙고와 자아성찰 후. 그들 모두를 놓아줘야 겠다고 결정했다. 내가
지금껏 의존해온 그들 모두를. 내가 어떤 특정 반응을 기대하며 '믿어
온' 그들 모두를. 그들에게 의존함을 그만둠으로써, 그들로부터 어떠한
특정 반응도 기대하지 않음으로써 나는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고,
그들또한 자유롭게 풀어줄 수 있을 것이다(N.D. 월쉬,
다니구치 마사하루의 책에도 나오는 말이지만). 자유가 사랑에 가까운 것
같다. 아무래도 기대와 속박은 사랑으로부터 먼 것 같다. 사랑에 비추어
자연스러울 때, 바로 그 때서야 나는 진정으로 구도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일
게다.
나의 이고는 타인의 인정을 바라고, 이는 타인에 대한
의존을 유발한다. 의존은 나와 타인을 속박하고, 그러한 자유의 부재는
사랑으로부터 멀어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사랑이 구도의 본질일진대,사랑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나의 이고, 나의 껍데기 자아는 진실로 구도의 적이로구나!
그런 이고마저 감싸안아줄 수 있어야 한다니 구도의 길은 과연 험난하구나.
* 이 글을 끄적인 것은 이 싸이트를 만들기 전의 일입니다.
싸이트를 운영한 이후로는 새롭게 제가 의존하게 된 또 다른 이들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제 싸이트를 방문하시는 분들이죠. 아직 그 의존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 분들에게 제가 의존하는 바로 그 정도만큼 아마도 제
싸이트의 '거울'로서의 투명도가 떨어지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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