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성(integrity) (2000년 가을의 생각; 2002/6/29)
 



                                                
 

1.
"Integrity"를 뜻하는 적절한 우리말을 못찾겠다. 내가 이해하는 integrity 라는 것은 구조물의 하중을 균형있게 받쳐주고 있는 통일성과 같은 것으로, 이것이 없으면 그 구조물은 아무리 세련된 장치로 유지되고 있다해도 붕괴되는 그런 것이다. "진실성"이라고나 해야할지... 거의 이십년 전, 존경하는 디베네데티 교수께서 "intellectual integrity"를 가르쳐주신 이래로 나를 지탱해준 단어, integrity.

요 며칠 연속, 아침 마다 나의 "진실성"에 관하여 자문(自問)하게 된다. 요즘 내 마음 속에서 꿈틀거리는 것이 나의 진실성을 해칠 만한 것인가?

'요즘 내 마음 속에서 꿈틀거리는 것'이란 정욕의 유혹에 내 몸을 맡기는 것이다.

어젯 밤, 늦게 귀가하여 이메일을 체크했다. 최근들어 일 때문에 만나게 된 두 여성으로부터 메일이 와있었다. 내 또래의 원숙한 여성 한 명과 이십대의 어린 여성 한 명으로부터. 그들의 메일은 일상적인 안부를 친절히 묻는 수준의 내용이었으나 나는 그 이상을 상상했다. 그 두 여성에게서 이성으로서의 매력을 느꼈던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내가 단순히 역겨운 한 중년남자인가, 아니면 나의 수행을 방해하려는 어떤 악마의 주문에라도 걸린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내가 과민반응하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러지 말고 현상계에서 느끼게 되는 헛된 정욕까지도 내게 주어진 아름다운 축복이자 소중한 선물임을 알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편이 현명한 것일까?

신과 함께 하는 삶으로서의 수행을 추구한다는 내가 매력적인 여성과 사귀고 싶다는 유혹에 내 몸을 맡기기로 결정한다면....


2.
그런 결정은 나의 진실성을 해칠 것인가?

이 질문은 왜,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이 질문은 두려움에서 나온 것일까?
유혹에 몸을 맡기고자 하는 결정이 나의 '자아'의 파괴로 이어질 거라는 예감이 내면 깊숙한 곳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을 보아 이 질문은 두려움에서 나온 것임에 틀림없다.

'나'는 파괴될 수 있는가?
그렇다, 나의 이고(ego)는 파괴될 수 있다.
나의 이고가 파괴되어도 괜챦은가?
아마 그럴 지도 모르겠다....

혹시, 내가 나의 진실성을 지켜야만 한다는 마음가짐 조차도 나의 이고가 파괴도 훼손도 되서는 안된다는 지극히 자아중심적 두려움의 발로가 아닐까?

나의 진실성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두려움에 근거하고 있다면 문제가 있다.

나의 진실성에 대한 집착이 단지 두려움에 근거하고 있는 한은, 그 집착을 떨쳐 버리고, 나의 진실성을 무너뜨리고, 따라서 나의 이고가 훼손당하게 놔둔다 하여도 무방할 것이다.

나의 진실성에 대한 집착이 단지 두려움에 근거하고 있는 한은, 그 따위 진실성에 대한 미련일랑 버리고, 정욕의 나까지 끌어안고, 그에 따른 사회-윤리적 책임을 지고 죄과를 받고, 허위의 고결함으로 치장된 나의 이고를 부숴뜨려도 무방할 것이다.

나의 진실성에 대한 집착이 단지 두려움에 근거하고 있는 한은, 가정과 명예 같은 것 무시해 버리고 매력을 느끼는 여성과 연애에 빠져도 무방할 것이다.

그리하여 나의 이고가 훼손되었다면 그건 깊은 차원에서 그만한 합당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나의 영혼 차원에서의 성장이라는 더욱 큰 과정의 의미있는 일부분이 되는 것과 같은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이고에 상처를 받는 것 마저도 영혼 차원에서 보았을 때 하나의 축복일 테니까. 비록 이고에 의해 상당히 지배받고 있는 나의 표면 의식에게는 끔찍한 일이 되겠지만....

두려움 때문에 진실성을 유지하는 것을 '위선'이라 부른다. 그런 진실성은 깨져 마땅하다.


3.
그렇다면 나는 충동을 가이드 삼아 정염에 내 몸을 던져야 옳은가?
두려움에 근거하고 있는 진실성을 제외시켜 버려도 여전히 그 결정을 내릴 수가 없다.
유한한 나의 삶에 주어지는 불꽃과 같은 달콤한 조우에 내 몸의 충동을 열어주는 것이 반드시 신께서 주신 삶에 대한 향유만은 아니라는 저항이 여전히 내 안에 있다. 베트남의 고승 틱낫한의 글에서도 그러한 저항이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읽어본 기억이 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면 무엇 때문에 정염의 충동 앞에서 나는 머뭇거리는가?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면 무엇 때문에 나의 진실성이 해체되는 것을 막아야 하는 것일까?

답을 얻지 못하는 나는 신께 의지할 수밖에 없겠다.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얻기까지 저는 일년 이상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아니, '진실성'에 대한 의문이 일어난 때(위의 기록을 적은 때)로부터 일년도 더 지나고 나서야 그 답을 구하고자 진실로 노력하기 시작했다고나 할까요. 실은 저는 그 답을 신으로부터 듣고 싶지도 않았던 것이지요. 그저 '나는 모른다'는 상태로 있으면서, 정념의 충동에 힐끔힐끔 눈길을 주는 짜릿함을 계속 즐기고 싶었기 때문이지요. 위의 의문에 대한 답을 얻은 과정은 훗날 더 적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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