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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에
대한 생각 다시 한 번.
우리는 자동차 운전을 할 때, 내가 보기에 상대방의
명명백백한 과실에 의해 마찰을 빚게 되는 경우에 처할 수 있다. 이럴 때
나의 분노의 정당성은 내가 가진 정보에 대한 확신에 근거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럴
경우 종종 - 아니 거의 매 번이라고 할까, 나를 분노케 한 상대방 역시
나와 동등한 정도로 비분강개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상대방은 그저 뻔뻔한
놈일까? 웬 세상에 뻔뻔한 놈들만 그렇게 많지? 난 재수가 없어서 뻔뻔한
적반하장의 운전자들만 부딪치게 되는 걸까? 그런 놈들만 계속 걸린다는
것은 통계적으로 볼 때, 그다지 있음직하지 않다는 이성적인 생각이
슬그머니 머리를 든다.
사실 나는 세상 사람들 대부분이 적반하장의 철면피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대부분 나와 같은 어느 정도 양심적이고 평범한 사회인들일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나와 별 차이 없는 인격의 소유자인 상대방이 분노하게
된 데에는 무언가 합당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 이유를 알려면 나의
그 순간의 시각으로는 접근이 불가능하다. 내가 가진 데이터는 나의
렌즈를 통하여 수집된 것이고, 그 모두가 상대방의 '악행'을 하이라이트하고
있다. 반면에, 나의 상대방이 분노하게 된 근거에는 그가 수집한 데이터들이
있을 것이고, 그 데이터들은 역시 전부 나의 '악행'을 하이라이트하고
있을 것이다. 왜 하나의 순간, 또는 순간에 대한 데이터들이 양자
사이에 이렇게 180도 차이가 나는 것일까?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의 주관적
데이터 수집의 피할 수 없는 불완전성, 즉 객관성 획득의 어려움을 깨달을
수 있다. 모든 개인은 그만의 렌즈를 통하여 그만의 시각으로 한 사건을 볼테고, 그
시각의 종류란 한 사건에 연루된 모든 개인의 수만큼이나 다양하다.
한 사건에 두 사람이 연루되었다면 두 시각이 존재할테고, 열 사람이
관련되었다면 열 개의 시각이 존재할 것이다.
이와 같은 형편을
이해한다고 할 때, 나는 과연 어떤 처지에서든 그 처지로 인해 촉발된
나의 감정을 어디까지 정당화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물론
인간인 이상 자신의 감각 기관을 통하여 입수한 데이터에 근거해서 감정적,
심리적 반응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으리라. 하지만 그 데이터 자체가
지극히 제한된 양이었음을 알 때에 그것에 기초한 나의 감정적 심리적
반응 자체의 의미가 크게 감소된다. 결국 나의 감정적이고 심리적인
반응은 순간적으로 관조되고 처리되어질(monitored and processed) 의미 이상을 부여받기 어렵고,
나아가서 그 반응을 타인에게 강요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조리한 행위인가를
알 수 있다. 즉, 한 사건이 나를 분노케 했을 때, 그 분노 자체가 그다지
큰 의미가 없으며, 더욱이 그 분노를 타인이 인정해줄 것을 강요하는
행위는 더욱 불충분한 자료에 근거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운전할
때 두 사람 사이에 시비가 붙었을 때, 또는 그와 유사한 어떤 다른 경우에라도,
대개는 두 개의 동등하게 정당한, 동등하게 불충분한 시각이 존재하고
있고, 그 궁극의 진실은 영혼의 양심이나 신밖에는 아는 이가 없을 것이다.
운전
시비의 경우에 두 개의 동등한 시각이 존재함을 인정하는 것을 확대
적용할 때, 우리는 모든 인간사에는 관련된 사람의 수만큼의 시각이
존재함을 알 수 있고, 이 모든 시각을 통틀어서 한꺼번에 볼 때에만
그 사건의 '객관적 진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즉 객관적 진실의 획득은
아마 대개는 인간 능력 이상의 무엇을 요구할 것이다. 전지력, omniscience.
그것이 현세에서 매우 도달하기 어려운(통계적으로 선지자나 붓다의
수효는 미미할 테니까) 경지의 각성을 요구한다하더라도,
그런 이해의 가능성을 논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런
이해에의 도달을 인식의 목표로 상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그런
이해의 경지는 우리에게 무엇을 제공할 수 있을까? 완전이해는 해탈이
아닐까? 구원? 아니면, 적어도 운전 중 벌어진 시비에 연루된 두 사람의
입장을 완전히 이해해주고, 상대방과 내가 다를 것이 없음을 이해하고,
우리의 분노가 헛됨을 깨닫고, ..... 궁극적으로 우리가 진실로 가진
건 사랑 뿐임을 깨닫게 되지는 않을는지.
다음과 같은 도식은
어떨까?
1. 상대방의 렌즈를 통하여 모든 것을 관찰
2. 상대방
입장의 완전이해
3. 상대방을 용서
4. 상대방과 나의 동질성 확인(나=너)
5.
구원, 또는 해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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