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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을
어느 날]
몇 달전인가 서울 용산의 길에서 내게 차비 몇 푼을 애걸하는
경상도 말씨를 쓰는 청년을 받아주지 않았다. 천원 한 장 건네주면 될
것을 매몰차게도 거절했다. 지하철의 걸인에게는 곧잘 주면서...
후회한다. 깊이 후회한다.
주님, 다시 한 번 그 청년을 제게
보내주세요, 좀 더 따뜻하게 대해줄 수 있도록.
2.
[겨울
어느 날]
이틀 전 지하철에서 한 멀쩡한(넥타이에 와이셔츠 입은)
중년 남자가 오백원을 구걸했다. 다른 노선으로 갈아타려고 급히 걷고
있던 나는 무심코 그의 청을 뿌리쳤다. 황당하다고 생각하며. 그리고
후회했다. 몇 달전 뿌리쳤던 그 청년도 그렇게 멀쩡했었다. 두 사람
다 천사였는지도 모르는 것을 ...
결국 그 청년이 다시 내게
온 것이었는데, 나는 두 번째에도 그를 거부했다. 그의 안에 계셨을
신을 거부했다.
후회막급의 나에게, 그러나 신께서는 자비를
베풀어주셨다. 어제는 길을 가는데 유난히도 구걸하거나 도움을 청하는
이들이 많았고, 나는 그들 모두에게 내 가진 것을 주었다.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닌 이에게는 내 마음을 주었다.
이건 아주 편리하고도
자비로운 우주 시스템 아닌가! 시험에 계속 미끄러졌다고 내쫓지도 않고,
금새 재시험의 기회를 베풀어주다니.
3.
내
강의를 듣는 학생들은 모를 것이다. 내가 매번 강의실에 들어가기
전에 신께 기도를 드린다는 것을. 나의 최상을 전해줄 수 있는
강의가 되도록 이끌어주십사는 기도를 드린다는 것을. 강의는 길에서
마주치게 되는 도움을 청하는 이들처럼 느닷없이 다가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충분히 나 자신을 대비시킬 수 있다는 점이 쉽다.
내게 도움을 청하는 학생들을 무심코 뿌리치지도 않는다. 기도로 준비하면
항상 충분하다.
한 학기를 열심히 보내고 종강일에 나의
제자들에게 내가 그들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말을 해줬다. 그리고
곧 그들로부터 아주 많은 이메일을 받았는데, 그중에는 내가 그들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말에 감동 또는 충격을 받았음을 실토하는 내용이
많았다. 난 놀랐다. 물론 나는 진심을 말하였지만, 그것이 그다지도
큰 반향을 학생들에게 일으키리라고는 상상 못했기 때문이다. 그저 당연한
내 마음을 밖으로 표현했을 뿐이었는데.
이십대 젊은이들이,
그것도 사회적으로 혜택 받은 무리인 대학생들이 자신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주는 어른을 만난 일이 없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하지만 나도 그
나이 때 그랬었지 않은가. 세상은 각박하다. 나도 그 각박한 세상의
일원에 불과하다. 느닷없이 거리에서 도움을 청하는 이를 매몰차게 거부하는
그런 인간에 불과하다. 하지만 내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친 것은
참 잘한 일이었다. 그러길래 신께서 자꾸 새로운 기회를 주시는 것 아니었겠는가.
내게 이런저런 도움을 요청한 제자들에게 감사한다. 그들 역시 나의 영적 성장에 기꺼이
참여해준 것임을 안다, 깊은 차원에서.
나의 삶에 다가오는 모든
타인들 - 가족에서부터 친구, 제자, 지인(知人), 그리고 지하철의
걸인까지도, 어느 한 찰나에 모두 나를 위해 움직이며 애쓰고 있다는
것을 섬광처럼 느낄 수가 있다. 동시에, 나 역시 어느 한 찰나에 그들
중 누군가를 위하여 움직이며 애쓰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는 경우가 있다.
타인과 나의 존재의 뿌리는 실은 한 곳으로부터 뻗어나온 것만
같다.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할 바이블의 핵심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라고 믿는다: Do
unto others as you would have them do unto you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 이것만 지키면 인생을 실패할 수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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