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화 (2003/2/15)

화를 내는 것, 분노의 표출은 인화성과 독성을 동시에 가진 물질을 위속 깊은 데서부터 밖으로 뿜어내는 것과 같다. 분노를 억누르고 있는 것은 독을 삼키는 것과 같고, 그것을 내뿜게 되면 그 순간에 뱃속부터 식도까지 꺼멓게 타버린다.

화를 어떻게 다루는 것이 현명할 것인가? 참는 것? 아니면 밖으로 표현하는 것? 단순하게 참느냐 내뱉느냐의 이분법을 넘어서 다카하시 신지 선생은, 진심으로 우리들 자신을 위하는 자세를 중심으로 이 문제에 접근했다. 즉, 나를 화나게 한 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해줄 수 있는 마음이 있지 않은 이상, 그에 대한 분노를 자기 뱃속에 넣고 인내하는 것은 오히려 유해하다는 결론을 제시해주었다. 이는, 나 자신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 나를 그토록 화나게 만든 바로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라는 말씀이다.

우리는 모두 하나이고, 모두가 성불할 소중한 존재이고, 모두의 안에 신께서 거하고 계신 지극히 존귀한 이들이라는 진리를 교과서처럼 잘 터득하고 계실 터인 나의 길벗들이나 이 싸이트 단골 방문객들께서는, 나를 화나게 만든 이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최상책이라는 이 말씀에 쉽게 공감하시리라 믿는다. 나도 공감하니까. 그런데 문제는, 그게 어디 말처럼 실생활에서 쉽게 되어야 말이지. 나 자신, 그간 분노의 다스림에 어느 정도 진전을 보았다고 느끼고 있었으나, 어느 한 순간, 이제 겨우 만 세 살이 되려고 하는 딸에게 - 하도 예뻐 매일 품에 껴안고 사는 딸에게 - 분노를 터뜨려 고함을 질러댄 연후, 극심한 자책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참담한 경험을 했다. 그때 든 생각: '아, 한 학기 동안 퀴즈에서 계속 A 받다가 기말시험에서 F 받았구나, 또 떨어졌다...'

십대, 이십대에도 별로 내본 기억이 없는 분노를 삼십대 때에는 왜 그다지도 여러 번 내뿜었었는지... 내 내면을 샅샅이 해부해 보다 보면 그럴 만한 원인이 포착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어찌 되었든지 간에 분노의 폭발을 나는 정당화할 재간이 없다. 그러나, 덕분에 삼십대를 지나오며 '화'에 대해서 줄곳 생각해왔다. 그 결과 내가 터득한 결론은 이러하다: '화, 특히 격한 분노를 터뜨리는 것은 자신에게 매우 나쁘며, 화를 화로써 표현하지 말고, 화나는 것에 관하여 이야기함으로써 표현하는 것이 최상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 나를 매우 화나게 만들었을 때 그에게, "이 새끼 죽을래?"라고 분노를 터뜨리는 것은 자신의 심신의 건강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따라서 그보다는 "네 행동 때문에 내가 화가 났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최상이라는 말이다.

그럼 내가 이거는 잘하냐 하면, 사실 그런 것도 아니다. 그저 계속 수련하고 있을 뿐. 어쨌든 이런 수련을 위해서 이성 차원이나 영성 차원의 종합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매우 효과적으로 수련을 향상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다음의 두 글을 옮겨 놓았다. 먼저 이성의 차원의 도움글.

"살다 보면 화나는 일은 다반사로 생긴다. 화가 날 때 해결 방법은 다양하지만 화를 폭발시키고 나서야 풀리는 사람이 있다. 대부분 다혈질 성격인 사람들인데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흔히 '성질을 맘껏 부리고 사니 병은 안나겠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문제 상황에 대해 이처럼 원시적인 감정 폭발을 거듭하면 심신의 건강은 오히려 해치게 된다. 우선 화를 폭발시킬 때, 다시 말해 적개심을 나타낼 땐 우리 몸의 자율신경계가 자극을 받아 극도의 긴장상태에 놓인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호흡이 가빠지면서 가슴을 들썩거리고 숨을 쉬게 된다(흉식 호흡). 실제로 화를 잔뜩 내고 나면 자율신경계의 지배를 받는 소화기관.심혈관기관에 영향을 미쳐 소화불량.속쓰림.두통.혈압 상승 등을 경험하게 된다. 즉 화가 날 때마다 화를 내는 사람은 몸이 극도의 긴장상태에 반복 노출되는 것이다. 실제로 다혈질인 사람은 협심증.심근경색증 같은 심장병,소화기 질환 등에 걸릴 가능성이 2~3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건강장수의 비결로 복식호흡을 권하고 있는데 그 이유도 숨을 천천히 쉬는 복식호흡을 하다 보면 맥박도 느려지고 마음이 평화로워지면서 긴장이 풀리기 때문이다. 화풀이를 실컷 하는 사람의 또다른 문제점은 일상생활에서 남달리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점이다. 이런 성격의 사람은 가족.이웃.동료 등과의 대인관계에서 환영받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스트레스가 면역기능을 떨어뜨려 만병의 근원이 됨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면 화는 참아야 건강에 좋을까. 물론 그렇지도 않다. 화를 참다 보면 화병에 걸리게 된다. 화병이란 '자다가도 열이 치민다''가슴이 두근거려 죽을 것 같다'는 화기와 '가슴이 꽉 막히게 답답하고 말이 안나온다'는 등의 울기가 번갈아 나타나는 병으로 1994년부터 국제 의학계에서 공인한 정신질환이다. 따라서 화가 날 때 가장 바람직한 해결책은 주변 사람에게 화나는 심정을 하소연하고 이성적인 해결책을 찾는 데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가벼운 해소책을 찾는 것도 방법이다."

- 중앙일보, 2003.2.11, 황세희 전문기자, 의사

그 다음은 이성을 뛰어넘어 보다 포괄적인 수준에서의 도움글로, 요즘 우리 나라에서 '뜨신' 틱낫한 스님의 말씀이다.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젊은이들일수록 더 그러합니다. 그럴 때는 이렇게 해 보세요. 아주 유익한 수행입니다. 숨을 크게 들이쉬면서 `기분을 다스려야지. 감정을 다스려야지`, 그리고 숨을 내쉬면서 `이제 가라앉았어`라고 혼자 말해 보십시오. 내면의 감정이 가라앉을 때까지 반복하는 겁니다. 그 감정은 절망일 수도 있고, 두려움일 수도 있고, 화일 수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격한 감정에 시달리면서도 그것을 다스리는 방법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이 수행법을 잘 따르면, 여러분은 내면에 격한 감정이 솟는 것을 느낄 때 언제나 그 감정을 다스릴 준비를 갖추게 됩니다. 여러분은 격한 감정에 자신을 내맡기면 곤란합니다. 그런 수행을 생활화하지 않는 사람은 격한 감정의 노예가 되고 희생이 됩니다.

폭풍우가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은 집이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야 합니다. 격한 감정은 내면에서, 여러분의 의식 깊은 곳에서 생겨납니다. 매 순간 항상 깨어 있을 수 있는 힘 또한 내면에서, 여러분의 의식 깊은 곳에서 나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격한 감정이 일면 안정된 자세로 앉거나 드러누워 보세요. 그리고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모든 관심을 복부로 모아 보십시오. 왜 복부일까요? 폭풍우 속에 서있는 나무를 보면서 초점을 나무의 꼭대기에 맞추면 여러분은 불안을 느끼게 됩니다. 가는 나뭇가지가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서 나무가 폭풍에 견디기 힘들겠구나 라는 인상을 받게 되지요. 하지만 초점을 나무 줄기에 둔다면 판단은 달라집니다. 나무가 튼튼하게 뿌리를 박고 있기 때문에 폭풍을 거뜬히 견뎌내겠다는 느낌을 받지요. 여러분은 나무이고, 여러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정은 폭풍입니다. 폭풍에 대비하지 않으면 결국 날아가버리게 됩니다. 폭풍에 대비한다는 것은 매 순간 정성을 다하는 호흡을 시작하고, 여러분의 관심을 뇌, 즉 사고의 수준에서 복부, 즉 배꼽 바로 밑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것을 뜻합니다. 그 부분은 나무로 치면 바로 줄기입니다. 뇌는 폭풍의 눈인 셈이지요. 이 수행은 간단하지만 매우 효과적입니다. 나무 줄기에 피난처를 얻는 셈이니까요.

그렇게 피난처에 몸을 숨기면서 곰곰 따져보면 감정은 그저 감정일 뿐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여러분이라는 존재의 극히 작은 부분이지요. 여러분은 감정 그 이상의 존재입니다. 감정이란 한 순간 여러분에게 다가와서 잠시 머물다가 폭풍처럼 지나갈 것입니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다면 여러분은 감정을 절대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많은 젊은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다스릴 줄 몰라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들은 고통을 끝내는 유일한 길이 자신을 죽이는 방법밖에 없다고 서둘러 판단해 버립니다.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을 몰라 자살을 택하는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은 어렵지 않습니다. 감정은 그저 감정일 뿐이야, 감정은 잠시 찾아와서 머물다가 곧 사라지는 거야 라는 생각만으로도 여러분은 쉽게 감정을 풀 수 있습니다. 그렇게 격한 감정을 흘려보내고 나면 여러분은 매우 행복해질 것입니다.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을 깨달은데 따르는 행복이지요. 또다시 격렬한 감정이 내면에서 일어나면 똑같이 해보세요."

- 틱낫한, 중앙일보, 2003.1.9

틱낫한 스님의 '화'라는 책을 사두었는데 아직 못 읽었다. 요즘들어 나의 화를 잘 다스리고 있다는 자만감에 빠진 탓이다. 읽어봐야겠다. 네살박이한테도 화내는 내 주제, 아직 머-얼었다.

'수행일상 2003'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