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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보다는
훨씬 설거지를 즐길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설거지에서 내가 싫어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수채구멍의 망에 걸리는 음식 찌꺼기를 치우는
일이다. 그래서 그 망을 음식 쓰레기 분리 수거용 바께쓰에 탁탁 털어
비우고 나면, 마치 대단한 오물이라도 만진 듯이 두 손을 비누 묻혀서 벅벅
씻곤 한다. 또 그 분리 수거 바께쓰를 바깥의 수거통에 비우고 올 때도
어디 내 몸에 국물 한 방울 튈까 조심을 한다.
하루는 텔레비젼
뉴스에서 그 음식 쓰레기 수거통들이 한데 집결된 후, 재활용 또는 폐기
처분되는 장소를 보았다. 일꾼들이 거대한 수거통에서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는 음식 쓰레기 앞에 서서 처리과정을 진행하고 있었다. 손바닥
만한 수채구멍 망을 닦으며 손 더러워졌을까봐 호들갑을 떠는 나. 거대한 음식
쓰레기의 폭포 곁에서 왼 종일 일할 그들. 만약 내가 그들의 입장이라면.... 순간
나 자신이 심하게 부끄러웠다. 나는 나 자신을 얼마나 깨끗하고 잘났다고
여겨온 것인가.... 신께 드리는 기도를 통해 음식 쓰레기를 처리하고
있는 그들에게 사죄했다. 값싼 순간적 감상으로 이런 것이 아니다.
그 후부터는 일부러 음식 쓰레기를 손으로 콱콱 쥐었고, 수거통에
버릴 때마다 사죄하고 감사했다. (물론 그 후에도 비누로 손을 닦는
것은 계속 했다; 가정 위생도 생각해야 하니까.)
닐
도날드 월쉬
선생의 책에는, '고도로 진화된 존재'들의 세상에서는 우리가 보기에는
가장 미천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높은 사회적 대우를 받는다는
환상적인 이야기가 등장한다. 즉, 청소부가 가장 높은 보수와 존경을
받는다는 동화나라 같은 이야기다. 자신은 국가사회의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일을 수행하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교통법규 위반에 대한
처벌을 다른 '일반인'들과 동일하게 받게 하는 것은 사회적 손실이고
따라서 일반인들보다 훨씬 중요한 자신의 시간을 쓸데없이 낭비시키지
않기 위하여 더 적은 양의 처벌만을 받아야 한다는 논지의 항소를
하는 사람이 엘리트로 군림하고 있는 우리 사회와는 정확하게 반대편에
자리잡고 있을 환상의 세계의 이야기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도, 가장 미천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높은 지위에
앉아 있는 사람들과 적어도 동일한 존중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진실로 알고
있는 현자들도 있다. 여행 중 마주치는 청소부에게도 국가원수에게 하는
것과 똑같이 합장하고 고개 숙여 절하는 달라이 라마와 같은 현자들
말이다.
이것이 나의 착각일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나는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달라이 라마의 그와 같은 자세가 진실로 고귀한 것임을
이미 알고 있다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그런 행동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 감동의 파문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감동의 파문이
우리의 진실한 본질, 참된 나를 건드린 것이다. 달라이 라마의 행동에
감응하는 내 마음의 진동이 바로 참된 나의 발로이다. 그것이 진짜라는
말이다. 목에 힘주고 제가 갖고 있는 알량한 지위와 힘과 지식을 내세워야만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고 믿는 그런 내가 진짜가 아니라.
나는
거시적 차원이나 사회의 구조적 측면 등등에 대해 여러 해 동안 공부한
사회과학도로서 사람들의 행동이나 태도와 사회문화의 여러 양상이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또, 세상의 변화를 추구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나름대로 잘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제 이런
지극히 단순한 결론에 도달해버렸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오직 나의
뜻과 행동일 뿐이라는. 예를 들자면, 우리 사회의 비극 - 목에 힘을
주고 약자 위에 군림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고 믿는 - 을 해결할
최상책은, 나 스스로 목의 힘을 빼고 타인들에게, 특히 나보다
약하다고 여겨지는 타인들에게 고개 숙여 존중을 표시하는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는 말이다.
최근 삼, 사년간 우리 나라의 관계, 학계의
여러 사람들과 접할 기회가 많이 있었고, 때론 예외적인 경우도 있었으나,
내가 자주 목격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뻣뻣한 목'이었다. 뻣뻣한
목은 권위의식 또는 권위주의로 표현될 수 있다. 권위의식이 지배하는
공간에는 언제나 서열이 있다. 서열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밑바닥과
열등의식이 있다. 그 열등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로서는 돈, 권력,
지위, 지식 등이 있다. 나는 이런 요소들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먼저 변화해야만 한다고 믿는다. 열등의식을 많이 느끼는 쪽이 아니라
힘있는 자들이 먼저 변화해야만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의 순서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 사회의 기성 종교들이 자신들 종파의 신도들인 힘있는
자들을 변화시키는 데에 얼마나 기여했는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권위주의는
우리 나라의 교육계에도 만연되어 있지만, 나는 교육계 뿐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깊이 스며있는 권위주의가 우리 교육을 온 국민들이
싫어하는 이 모양으로 만든 원흉이라고 믿는다. 우리 나라의 교육은
복마전이다. 그 복잡성을 잘 아는 편인 내가 우리 교육을 살리기 위한 최선의
해결책이라고 믿고 있는 것은, 먼저 높은 자리에 앉아있는 자들이, 즉,
예를 들자면, 대학 교수들이 자신들 목의 힘을 빼는 것이다.
'못 배운' 사람들이 가방 끈 긴 사람들과 똑같이 존귀한 인간으로서
존중받을 수 있도록, 가장 많이 배운 자들이 지식과 지성과 지위의 권위를
스스로 내다 버려야 한다. 그렇게 되어야만 이 사회에 진실로 존경받는
스승들의 수가 늘어날 것이고 차츰 모든 사람들의 신성을 존중하는
풍토가 확산될 것이며 '조폭 문화'로 일컬어지는 정계, 관계의 수직적
서열의 구조와 거기에서 배태되는 권위의식으로부터 사람들이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그와 함께 범국가적 질병인 목디스크도 사라질지 모른다.
우리 모두 목에서 힘을 빼면, 비록 내 귀한 자식놈이 음식 쓰레기 처리장의
노동자로 일을 하게 된다 하여도 남들 업신여김 안받고 사회에서 존중받는
일원으로 자긍심을 갖고 살아갈 수 있다고 믿게 되는 날이 온다면, 만약
그런 환상적인 날이 온다면, 그때에는 더 이상 수능 점수 1, 2점에 목숨
매달고 '일류'대학 보내기 위해 일생을 거는 그런 부모들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는 한, 나는 우리 나라의 교육 문제가 개선될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내 자식이 못배워서 '미천한' 직업을 갖고, 그래서 겪어야 하는
그 쓰라림을 아는 어떤 부모가 자식이 '못배우도록' 내버려두겠는가.
당연히 누구나 교육에 목숨을 걸테고, 교육에 그렇게 첨예한 이해가
걸려 있는 한, 정부건 전교조건
현 상태를 조금도 변화시킬 수 없을 것이다.
내가 학계의 일
때문에 쓴 글이나 이 싸이트에 올린 글을 읽은 이들로부터 '현학적'이거나
'너무 어렵다'는 평을 몇 번 들은 일이 있다. 반성한다. 비록 그런 것들이
대개 어려운 책들만 읽으며 공부해온 나의 습관에 불과할 뿐, 일부러 의도한
것은 전혀 아니었지만. 사실 아는 것도 별로 없는 나의 같쟎은 '현학'에
숨어있을 권위의식을 말끔이 뿌리뽑아 내고 진정으로 쉽게 글을 쓸 수
있도록 신께 부탁을 올려야겠다. 나는 꿈을 꾼다. 만약 내가 사회의
가장 미천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합장하고 고개숙여 절한다면 사회가
변할 것임을. 여전히 그걸 제대로 못하고 있기 때문에 계속 반성한다.
그래도 살다보면 가끔이긴 하지만 의외로 달라이 라마 같은 사람들을
목격하고 신선한 감동을 받곤 한다. 나는 먼저 그런 사람들을 본받을
것이다. 당신도 당신 주변에서 그런 사람들을 발견하고 본받기 바란다.
지극히 소중한 우리가 이토록 고귀한 인생에서 이다지도 저급한 '뻣뻣한
목'의 태도로 살다 가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당신이 나처럼 달라이
라마의 절에서 감동을 받았다면, 바로 그 감동받은 당신이 진짜 당신임을
잊지 말아라. 진짜로서 살 때에만 우리는 진정한 평화 속에 있게된다.
메시지:
내가 타인의 내면에 계신 신께 절할 수 있을 때, 나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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