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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출근길을 동행해보는 이라면 누구라도 그 길에 홀딱 반할 것이다. 승용차나
지하철을 이용하면 20분 안에 갈 수 있는 거리지만, 나는 웬만하면 자전거로
30분 넘어 걸려 출퇴근 한다. 자전거로 가면, 대로변에서 벗어나서
산등성이 사이로, 논밭을 끼고 언덕을 넘고 시냇물을 건너 호젓한 도로로
다닐 수가 있다. 이것은 내 생활에 주어진 프리미엄이다(아니,
프리랜서가 되기로 한 것은 내가 결심하고 이행한 것인만큼, 어느 정도는
내가 만든 프리미엄일지도 모르지만).
교통비를 절약할 뿐만
아니라 운동도 하는 일석이조의 행사인 자전거 출퇴근. 언제나 할 일이
산더미인 나는 자전거를 늘 빠른 속도로 달린다. 기어는 거의 항상
최고단인 21단에 걸려 있다(경사길 오를 때만 빼놓고). 요즘 바빠서
자전거 산행도, 등산도 통 못하는 처지라, 그 운동 부족을 보상해보고자
더욱 세차게 페달을 밟곤 한다(사실 매일 자전거를 한 시간 넘게 타는
것을 요즘 도시 생활에서 운동부족이라고 할 수는 없겠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자전거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질주도 좋지만, 주마간산식
보다는 스치고 지나가는 주변에 관심을 기울이고, 느끼고, 자각하며
다니는 것도 좋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빨리 자전거를 밟다
보면 - 나의 숨겨진 급한 성질은 주로 운송 수단을 몰 때에 잘 드러난다
- 도중에 장애물을 만나게 된다. 주로 신호등의 빨간불이 그것이다.
신호등에 걸리면 몇십초, 또는 몇 분이나 기다린다고, 나는 그것을 통과해
버리려 발악을 한다. 때로는 신호가 거의 바뀌려고 하는 순간 아슬아슬하게
길을 건너서 위험을 자초하기도 하며. 이는, 내가 장애물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장애물을 혐오하고 있는 것이다.
조금 더 현명한 이라면, 장애물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이 주어진
의미를 성찰하며, 심지어는 그것을 자신을 위해 활용하기까지 할 것이다.
빨간불에 걸려서 자전거를 멈추게 되면, 멈추는 것이다. "에이
씨-" 하지 않으며. (쌍시옷 다음에 곧잘 붙는 연결자음은
만들지 않음). 멈춰서 자신을 한 번 더 돌아보는 것이다. 그 순간을
잠시 명상으로 만들 수 있다. 어느 날 여기에 생각이 미쳤고, 그래서
자전거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삶에는 숱한 장애물들이 있다.
수행의 초기에는 그 장애물들의 의미를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신의
사랑을 믿고 그것들과 부딛치며 나아갔고, 차츰 신이 주시는 것은 축복밖에
없음을 깨달아 갔다. 지금은 축복으로써 주어지는 장애물들의 의미를
때때로 이해하기도 한다. 이성적이거나 지적인 의미의 이해가 아니라,
'스스로 삶을 창조해가는 주체로서의 이해'라는 차원에서.
신호등에
걸려서 자전거를 멈춰 서면 하늘을 바라본다. 주변을 돌아보면
사실 관찰할 것들이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생활 속에서의 활동에
제동이 걸렸을 때, 그것에 화내지 말고 잠시 한숨 돌릴 필요가 있다.
한숨 돌리며 주변을 살펴보는 그 순간, 내가 내 삶의 주체가 되어 있다.
그러면 신께서 오직 자비로우실 뿐임을 떠올릴 수 있다. 비온 후의 흙탕길에서는
조심해서 달려도 오물이 몸에 튀기도 한다. 살다보면 똥도 밟는다. 포리스트
검프는 "Shit happens"라고 한 마디 던지고 가던 길을 계속
갈 뿐이었다. 자전거를 험한 코스에서 무리해서 운전하다 보면
넘어지는 경우도 있다. 지난 주에도 커브길이 미끄러운 걸 간과하고
빠른 속도로 돌다가 미끄러져 무릎팍이 찢어졌다. 앞으로는 무리한 운전을
삼가야지 하고 반성하게 된다. 살다가 넘어지면, 내가 과속했다는 것을
깨달으라는 시그널을 접수하면 된다. 그래서 속도를 줄이고 주위를 한
번 돌아보고 다시 신중하게 갈 길을 계속 가면 될 뿐이다.
자전거
속도를 줄이고 나니, 그동안 나의 고속질주를 방해하던 장애물들이 꼭
장애물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매일 매일을 살아가며,
타인들과 부대끼며, 나에게 주어지는 마음에 안들거나 상처를 주는
장애물들, 특히 수행하는 이에게 찾아오는(아니, 실로 자기 스스로
만드는) 좌절감을 주는 여러 일들, 이것들에 대해서 내가 취해야할
마땅한 태도는, 그것들이 다 있을만 해서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심지어는
나의 좌절까지도). 이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생활의 질주를 잠시 멈추고
관성에서 벗어나, 그 장애물을 그대로 가만히 응시하는 것이다.
조용히 들여다 보고 있으면, 그 장애물들이 다 있을만 해서 있는
일들임을 알게 된다. 다 제자리에 있는 것이다. 지금 이대로 완벽하다.
그러니 그 완벽을 즐기는 편이 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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