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의 대야호 부근 농가:
 

이번 여행을 통하여 느낀 것 한 가지는, 전라도 농촌이 이십년 전에 비해 별로 달라진 점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인구는 더 감소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시골 마을들에선 사람 보기가 어려웠고, 폐농가도 자주 눈에 띄었습니다. 제삼세계의 급속한 현대화 과정에서 가장 피해를 보는 인구는 농업 종사자들이라는 전세계적 현상이 우리 나라에서도 예외가 아닐 듯 싶습니다. 특히 이 마을 저 마을 마다에 걸려있는 현수막의 처절한 투쟁 구호를 보노라면.

여행하는 저만 좋았습니다. 적막하고 고요해서. 세월의 변화를 느낄 수 없어서.

그러나, 가난하고 늙은 대다수 농민들은 세월도 느릿느릿 흘러가는 것 같은 전답 위에서 땀흘려 일하고 있었고, 그것을 보는 저의 마음은 죄스러웠습니다.

세월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의식의 역행을 효과적으로 도와주는 옛 모습 그대로인 농가들. 유년기와 그 이전, 그리고 그 이전, 그리고 또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영원과 맞닿은 그 끈을 찾을 수 있을런지. 나의 그리움의 정체는 그 끈을 찾아야지만 알 수 있을 것인지. '히말라야에서 만난 성자'라는 책을 보면 그러한 그리움을 증폭시키는 시·공간이 따로 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행을 떠난다는 것이 어쩌면 그런 시·공간과 조우해보고 싶은 의식 깊은 곳의 갈증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영원과 맞닿은 나의 느낌을 굳이 확인해보고 싶은 그 갈증.

그리움은 이제 접고, 수행의 장으로 돌아왔습니다. 사실, 채워지지 않는 그 갈증과 영원에의 그리움 같은 것 즐길 수 있습니다. 언젠가 그곳으로 돌아갈 것임을 알고 있기에. 그래서, 지금 여기 잠시 머무는 동안 계속 해야할 수행이 현재의 나에겐 중요합니다. 저의 수행이 점점 더 깊어질 것임을 예감하며 돌아왔습니다. 한없는 은총에 진정 감사드립니다. 나의 주인이고 벗인 신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