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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아름다운 음악이라 하여도 동시에 두 곡을 들을 수는 없다. 두 곡을
동시에 들으면 바로 소음이 되어 버린다.
어느 집에 갔더니 텔레비젼의
모니터 한 귀퉁이에 자그마한 별도의 사각형 화면이 나와서 다른 채널의
방송을 보여주는 이른바 PIP 기능이라는 것이 있었다. 두 개의 방송을
동시에 보았다. 한참 보다 보니, 둘 다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겠다.
그것보다 - 즉, 정보의 습득보다 - 한 마디로 재미가 없었다. 어느 한쪽에도
몰입하지 못하니 양쪽 다 시시해진 것이다.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어 바쁜 현대인의 생활에 쫓기다 보면, 언제나 두 가지 이상의 일을
동시에 처리하려고 부산을 떨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아침 식사 하며 텔레비전 보고, 똥누며 신문 보고, 걸으며 이어폰으로
음악 듣고, 전화 받으며 이메일 확인 하고, 문서 작성하며 동료 일 참견하고...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이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습관이 돼 버린 것 같다.
한 번에 하나씩만 할 수 없을까? 아침 먹을 때, 음식의 맛과 씹히는
질감과 잘 소화시키는 것에만 집중할 수는 없을까? 똥눌 때 어느 광고에도
있듯이 '황금빛 대변'을 탄생시키기 위한 산고(産苦)에만 집중할 수는
없을까? 길을 걸으며, 내 발걸음과 호흡과 주변 경관과 같은 것에만
집중할 수는 없을까? 전화 받으며 수화기 저 켠에 있는 사람의 말을
듣는 데에만 집중할 수는 없을까? 일하며 지금 하고 있는 일에만 집중할 수는 없을까?
과연 어느 쪽이 더 현명한 것일까? 한 번에 두가지를 하는 것과 한 번에
하나만 하는 것 중에서.
삶의 지혜를 아이에게서 배운다. 아이는
아이스크림을 제대로 먹을 줄 안다. 아이가 아이스크림 하나를 다 먹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그 집중도와 그것으로부터 뽑아내는 그 지극한
만족도에 경탄하게 된다. 한입 한입 참 정성스럽게도 먹는다. 다른 데는
전혀 한눈 팔지 않는다. 그 순간 오직 아이스크림의 맛을 보는 데에만
온 정신이 집중되어 있다. 어른이 된 이후로 저렇게 아이스크림 하나를
맛있게 먹어본 적이 있는지... 틱낫한 스님의 글에도 제자와 귤을 까서
먹으며 대화하다가 제자가 여러 상념에 대한 이야기를 하느라 자신이
먹고 있던 귤에 대해선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음에 대하여 지적하는
경우가 등장한다. 비즈니스 거래상 식사 한 후에 음식의 맛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 것처럼.
어린 아이의 지혜를 나도 본받아 보기로 했다.
아이스크림 먹는 수행을 하는 것은 좀 부적절한 듯 싶고, 그래도 수행에는
뭔가 '고행(苦行)'의 요소가 들어 있어야 그럴 듯 할 것 같으니, 평소에
하기 싫던 설거지를 수행 도구로 삼았다. 설거지를 하며 오로지 설거지
그 자체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이것도 틱낫한 스님의 어드바이스). 따스한
물의 감촉을 느끼며 미끄러운 세제와 수세미와 여러 다른 질감을 가진
그릇들, 그것에만 집중했다. 내가 지금 이 순간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의식하려고 하면서. 어느 틈엔가 잡념 쪽으로 도망가 버리는 나의 의식을
붙잡아다 놓기를 수 차례, 반짝이는 깨끗한 접시들이 거대한 더미로 한
켠에 쌓아 올려지는 것을 바라보며 온 정신과 정성을 다해 설거지를
하던 중 문득 깨달았다. 내가 진짜로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나는
사랑을 하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고 있으며, 내 삶
전체를 사랑하고 있으며, 나의 가족을 사랑하고 있으며,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 다음에는 설거지 뿐 아니라 청소도 명상으로 만들어
버렸다. 아직 자동으로 명상의 발동이 걸리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설거지와 청소가 충분히 명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
이 순간에 내 전부를 쏟아붓는 것이 일상의 명상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설거지나 청소하면서 투덜대는 정도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오히려 깊이 감사한다, 신께.
일요일 오후, 등산로 하산 길의
늙수그레한 오십대 아저씨들을 보았다. 인생의 황혼길로 걸어들어가고
있으나 여전히 만만치 않은 세상, 수북한 현실적 걱정 거리들, 일주일에
한 번 친구나 동료와 훌훌 제쳐버리고 아직은 제 기능 하고 있는 몸을
끌고 나와 숨을 헐떡이며 험한 산을 넘어왔을 그들. 터벅터벅 걷는 그들의
어깨에 내리쬐는 석양이 조금은 쓸쓸한데, 한 아저씨가 등산로 어귀에
다 내려왔을 때 호기있게 일행에게 운을 뗀다. "허, 저- 아래서
빈대떡 냄새가 솔-솔 나네."
그때, 그 아저씨와 그 일행의 입가에
번지는 미소에서 나는, 지금 이 순간 그들 역시 그들의 인생을
지극히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는 다른
모든 잡념 제쳐두고 오직 빈대떡 내음과 그것이 수반하는 따스한 정감에만
집중하고 있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저씨들, 지금 이 순간은 세상
걱정일랑 잠시 잊고, 저- 아래 빈대떡 집에서
막걸리 한 사발 맛있게 드시고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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