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과 의식 (2003/8/24)
 

얼마 전에 신문에서 "자살을 암시하는 행동들"이라는 다음과 같은 기사를 읽었다:

1. 평소와 달리 말이 적고 표정이 무뚝뚝하다.
2. 외출을 삼가고 집에만 있는 경우가 많다.
3. 집에서도 TV만 보거나 전화를 하기보다 방에 갇혀 혼자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4. 좋아하던 취미나 운동, 레크리에이션 활동을 갑자기 중단한다.
5. 갑자기 교회나 사찰을 찾는다.
6. 죽음을 다룬 염세 철학 서적을 탐독한다.
7. 직장을 휴직하거나 학교를 쉰다.
8. 갑자기 며칠 동안 혼자 여행을 떠난다.
9. 아끼던 물건들을 가족이나 친구에게 나눠준다.
10. 가까운 사람에게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내뱉는다.
11. 방이나 서랍을 깨끗이 정리한다.
12. 갑자기 관대해지거나 친절해진다.

위 항목들을 읽고는 나는 크게 웃었다. 이유인 즉슨, 4번과 10번 빼고는 전부 나에게 해당되는 사항이었기 때문이다. 아내에게 이 기사를 보여주며 바로 내 얘기 아니냐고 묻자 아내도 깔깔대며 웃었다. 남이 보면 밥맛 없을지도 모를 정도로 신나게 잘 살고 있는 나의 행동거지들이 자살을 암시하는 그것들과 일치한다니.

오늘은 어찌하여 '마음수련원'이라는 곳 홈페이지에 들렀다가 다음과 같은 글을 봤다:

이럴 때 당신은 진짜 부자
이웃이 잘될 때 흐뭇한 마음이 들면 당신은 부자이다.
남을 위해 물질을 쓸 때 주저하거나 아까운 생각이 들지 않으면 당신은 부자이다.
자녀가 보통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면 당신은 부자이다.
식사할 때 건강함과 주어진 음식에 대하여 감사한 마음이 들면 당신은 부자이다.
남을 비판하기보다는 긍정할 수 있으면 당신은 부자이다.
과거를 후회하거나 현재를 한탄하기보다는 오늘에 최선을 다할 때 당신은 부자이다.
어려움이 닥칠 때 지혜를 배우라는 하늘의 선물임을 느낀다면 당신은 진정한 부자이다.
가장 중요한 일을 할 때나 가장 바쁠 때에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을 생각할 수 있다면 당신은 부자이다.
수입과 부조금, 기부금을 내 것이 아닌 하느님의 재산이라 생각할 수 있으면 당신은 부자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할 수 있는 감성을 지니고 있으면 당신은 부자이다.
죽음도 삶과 같음을 알 때, 그리하여 죽음에 자신감이 있으면 당신은 정말 큰 부자이다.

또 다시, 밥맛 없게 들릴 지도 모르나, 위의 사항 거의 다가 나의 평소 마음 상태를 묘사하고 있다. 따라서 나는 진짜 부자다. 나를 '진짜 부자' 이도록 하는 나의 마음의 평화를 막을 도리가 없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든다. 앞에 나온 '자살 암시 행동'은 물론 '행동(behavior; 외면)'의 표시들이고, 그 다음에 나온 '진짜 부자'의 표시들은 '의식(attitude; 내면),' 또는 '태도'의 지표들이다. 간단히 말해서 나의 의식과 행동은 지극한 부조화를 보여주고 있다. 진짜 부자이면서도 자살 충동을 느끼는 이들의 행동을 하며 사니까. 여기서 포착되는 부조화는 그러나, 상식, 또는 사회과학적 지식에 근거하고 있다. 어떤 의식들이 어떤 행동들과 일치하여야 한다는. 결국, 나의 평화는 상식 밖이란 말이 된다. 진짜 부자의 의식과 행동은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논리의 비약도 불가능하지 않다.

나를 밥맛 없을 정도로 까발려가며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이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상식에 인생을 내맡겨 불행에 허덕이지 말고, 자신만의 길과 참된 평화을 찾으시라! 상식은 내 이성이 흡수하는 참고 데이터일 뿐, 내 삶의 진정한 엔진을 움직이게 하지 않으니.

혹, 이 권고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것도 팔자소관이라 할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