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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코비가 외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나의 삶에도 여러 차례 일어났었다. 그중에서도 초등학교 4학년
때 쯤에 일어났던 패러다임의 전환은 나의 인생에 기나긴 영향을 끼쳐오고
있다. 그때 어린 나는 어떤 연유로 어른 한 분을 따라 친구들과
고아원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 온 나라가 가난했던 칠십년대 초의
고아원 모습은 하나의 충격으로 내 뇌리에 각인되었다. 한 반나절을
고아원 아이들과 함께 보냈던 그때의 경험은 너무도 강한 충격을
내게 주었고, 그 이후에 나는 그 경험을 스스로 내면에서 어찌
처리할 줄을 몰라 심각한 반항 아동으로 변하게 되었다. 아마 그때 이후로
부모님 속을 썩이는 불효자가 되었던 것 같다. 불행한 내 또래 아이들을
봄으로써 나의 복 많은 팔자에 감사하여 효자가 되기는커녕.
그러나
한 가지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났는데, 그것은 음식에 대하여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된 것이었다. 고아원의 점심 식사 시간에 세 가지 음식이
밥상에 올려졌는데, 설익은 듯 밥알이 까끌까끌한 된밥과 김치와 고등어
통조림이 그것이었다. 원장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손님들이
오신 특별한 날이어서 특별한 반찬으로 고등어 통조림을 먹게 되었다고,
평소에는 김치 딱 하나만 반찬 삼아 밥을 먹는다고.
집에 돌아온
나는 다시는 반찬 투정 따위는 하지 않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순식간에
세상 모든 음식을 죄다 사랑하는 아이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모든 물질적 사치와
그중에서도 특히 먹는 것에 대한 사치를 지독하게 경멸하기 시작했다(이
경향은 아직까지 내게 남아 있는 듯 하다). 그 경향이 한 때는 좀 심해져서,
아들 도시락에 콩자반이나 달걀부침 같은 것을 넣어주시는 어머니께
마구 반항하며 오직 딱 하나의 반찬만을 넣어달라고 고집을 부려서 어머니
속 깨나 태워드리기도 했다. 그 딱 하나의 반찬이 무말랭이가 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무말랭이'라는 소설을 읽고 나서여서 그랬었다. 어쨌든,
지금도 음식에 한해서는 가리는 것이 전혀 없는 완전한 잡식성의 인간이
되었다. 음식의 국적 역시 가리지 않는다. 종교에 대한 나의 잡식성향이
음식에 대한 잡식성향에서 나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고아원에 가기 전까지 나는 굉장히 까다로운 아이였고, 특히 입맛이
까다로운 편이었다. 가난한 유년기에 간장 하나만 가지고 밥먹은 경험은
있었어도, 초등학생이 되고 난 이후로는 김치 한쪽만 놓고 밥을
먹을 일은 결코 없었다. 그런데 고아원에서의 식사라는 단 한 번의
경험이 음식에 대한 나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패러다임이
바뀌자 세상 모든 음식이 다 맛있게 되어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이즈음도
아이의 편식 습관을 고쳐주기 위해서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기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는 의견을 가지고 있다.
성인이 되어서 일어난
패러다임의 전환 한 가지는 두 딸의 애비가 된 것에 기인한다. 내 딸들이
지극히 사랑스럽다보니, 다른 여자들을 바라보는 눈 자체가 변해버렸다.
그 전까지는 젊고 예쁜 여자를 보면 '꼬시고' 싶다는 마음만 들었었다(그런
걸 실행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저 마음만... - -;). 그런데
딸을 키우다보니 다른 여자들까지 남의 집 귀한 딸로 보이게 된 것이다.
저 예쁜 딸을 키운 부모들은 얼마나 애지중지 사랑을 주었을꼬...
얼마
전, 심야에 서울에서 좌석버스를 타고 가다 용산역 앞을 지나치게 되었다.
사창가로 유명한 한 골목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정육점 불빛
같은 홍등(紅燈)의 유리 진열장 안에 앙드레 김의 '공주옷' 같은 하아얀
드레스 빼입고 곱게 앉아있는 십여명의 앳된 여인네들... 어여쁜 그네들의
부모는 그들을 낳고 얼마나 그들을 사랑하였을까? 세상의 슬픔이
그 진열장 안에 다 모여 앉아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을 차창 너머로 바라보며
나는 눈물을 질질 흘렸다. 내딸들을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생각했다.
요즘 주책 맞게 눈물을 잘 흘린다.
젊은 시절
사창가 출입해본 일은 없지만, 지나치다가 그런 진열장 안에 앉아있는
윤락녀들을 보면 호기심과 음심만 발동했었던 것을 기억한다. 지금은
오직 슬픔만이 솓구친다. 늙어서가 아니라, 내가 여자를 바라보는
시각이라는 면에서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났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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