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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선을 다했다(왜 "최선을 다했다"라는 말의 어감이 "나로선
할만큼은 했다"로 변질된 것일까...). 그러나 참석자들 중에는
무성의하거나 무관심한 이들이 있었고, 모임은 엉망이 되었다. 그의
표정에는 실망의 빛이 역력했다. 속상했다. 그가 내게 항의했다. 이런
식으로 모임을 지속할 필요가 있냐고. 다른 참석자들을 무시하고 우리
둘이서 좋은 방식대로 하자고. 이번엔 내가 화가 났다. 한, 두 번 모임을
망쳤다고 나머지 사람들을 무시하고 애초에 만든 약속을 포기하라니.
내 딴엔 얼마나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준비한 모임인데. 나는 예외적으로
그를 공박했다. 감히 나의 방식을 폐기 처분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냐며
좌장인 나에 대한 그의 월권 행위를 비난했다.
분노의 부정적
본질을 늘 의식하며, 그것에 종속될 것을 경계하는 까닭에, 어떤 사건이나
사람에 대하여 화를 내는 것을 피하며 살지만, 분노가 제거된 이성적인
반박까지 회피해선 안된다고 믿는다. 나의 반박에 그는 당황하며 자신의
요구를 철회했고, 또 나의 반박에는 화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으나, 그와
나 사이에는 감정의 앙금이 남게 되었다.
곰곰히 홀로 생각하고
있노라면 그가 더욱 괘씸했다. 내가 그 모임에 들인 공은 누구라도 알
것이라고 나의 주관은 줄곳 주장하고 있었고, 지금까지 나의 방법이
매우 효과적인 것이라는 평가를 받아왔음은 객관적 사실이며, 무성의한
회원들마저 보듬고 그들의 참여 동기를 유발하는 것이 좌장인 나의
힘겨운 책무이거늘, 어쩌다 참여율이 저조하여 모임이 소기의 성과를
못 거두었다고 해서 나의 방식을 포기하라고 대들다니.
그러나
이성적으로 냉정하지만 부정적인 화의 감정을 제거한 반박을 그에게
명확하게 표시했다는 것이 잘한 일이었던 것 같다. 하루 쯤 만에
그에 대한 화 그 자체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나는 나의 일에 충실히
임했으며, 그러면서 다음 번 모임을 위해 더욱 철저한 준비에 착수했다.
내 마음엔 그를 향한 사감(私感)이 조금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에게
화가 난 직후, 그를 위해 기도했던 것 역시 효험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
다음 번 모임에서 특별한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참여자들의 반응은
지난 번 보다는 약간 나았으나, 역시 질적으로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모임이 끝날 때 나는 그의 표정을 보았다. 그의 얼굴은 불만으로 가득했고
심지어는 한 참여자에 대한 적개심마저 번득였다. 나는 남몰래 미소
지었다. 지난 번에는 나를 속상하고 화나게 만들었던 그의 불만에 찬
얼굴이 이번에는 나를 미소 짓게 만들었다. 그가 우리의 모임의 일원임에
감사했다. 신께.
나는 믿는다, 일편단심의 기도는 분명 변화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나의 방식에 대한 비난을 받아들이는 나의 자세는 분명히 변화했다.
비난 앞에서도 평화로울 수 있다.
나는 깨달았다. 참여자들에게
비춰진 '나'의 모습이 좋건 나쁘건 그건 내가 전혀 신경 쓸 일이 아니라는
것, 그건 나의 껍질에 여전히 내가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남이 뭐라고 보든, 나는 내 할 일만 성심껏 하면 되는 것이다. 나는
'메시지'만 전하면 될 뿐. 그 과정에 '나'의 자아가 개입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나'는 사라져야 한다. 이런 깨달음으로 인하여, 나의 내
방식에 대한 고수의 자세는 더욱 굳건해졌다. 나는 내가 믿는 바대로
밀고 나갈 것이다. 누가 뭐라해도.
모임에서 돌아오는 전철 속에서
에픽테토스의 책을 펼쳤다. 나에게 불만을 품은 자를 사랑의 미소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음에 내심 기분이 좋아진 나의 눈앞에, 지난 한
주일 동안의 나의 영적인 진전이 나에게 가져다준 가르침을 지극히 적확하게
요약, 정리해놓은 고대 로마의 철인 에픽테토스의 말씀들이 착착 펼쳐졌다:
'타인을 탓할 필요가 없다, 아무도 비난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타인의 칭찬에 의지하지 말라, 타인의 존경을 구하지 말 것이며,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신경쓰지 말라, 진짜 자신의 것을 잊지 말고 자신의
본업에만 집중하라.'
나에게 시험 문제 하나가 주어졌고, 나는
그것을 열심히 잘 풀었으며, 그에 대한 해설이 곧바로 주어진 것이다.
나는 이렇게 믿으며 살 것이다. 누가 뭐라해도. 그리고 나의 내면의
평화는 변함이 없다.
신은 돌아온 탕아도 사랑하실지 모르나,
꾸준히 열심히 하는 놈도 분명히 사랑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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