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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다닐 때 같은 과 안에서 교수들과의 사교에 열성인 학생이 한 명 있었다.
같은 과 학생들이 몇 모여 있던 자리에서 그가 권위있게 말했다: 궁극적으로,
학위를 받으려면 무엇보다 학교 내의 '정치(politics)'에 능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학위 따기가 아주 어렵다고. 그 말을 듣고 속으로 나는
그를 경멸했다. '공부 열심히 할 생각은 안하고 인간관계로 학위 따려고
그러냐' 하면서. 내가 그 대학에서 학업 다 마치고 다른 대학으로 떠날 때까지도 그 학생은
학위 취득에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공부도 좀 하렴.'
다른 학교로 옮겨간 나는 오랜 세월을
보낸 끝에 박사논문 심사위원단을 결성하고 논문 완성에 박차를 가했다.
전 학교의 그 학생은 까맣게 잊은지 오래였다. 내 논문 심사위원들은
저명하거나 또는, 왕성한 학문 활동을 벌이고 있는 교수님들이었다.
세 명의 주 심사위원을 기본적으로 내가 선택했는데, 그 주요 선택 기준은
물론 그 교수님들의 전문 분야와 내 논문 주제와의 관련성 여부였지만,
사실
또 하나의 은밀하지만 결정적으로 중요한 선택 기준이 있었다. 그것은
세 교수 사이의 인간관계에 대한 평가였다. 즉, 그 세 교수님들은 학문적으로
또 인간적으로 아주 짝짜꿍이 잘 맞기로 정평이 나 있는 '그룹'이었다.
나는 내 논문 내용과의 적합성에 초점을 맞추기에 앞서, 이 인간관계의
친밀도에 더욱 큰 비중을 두었다. 예상대로 세 분은 온화한 분위기 속에
서로 의견 충돌 없이 나의 논문을 통과시켜 주었다. 학문적 노선이 유사하니
당연한 일. 박사논문의 심사위원들 간에 사이가 나쁘거나 학문적 노선이
다르면 얼마나 학생이
고생을 많이 하는가는 학계에서는 상식적인 일이다. 결국 나는 '정치'에
성공적이었다.
학교 내의 '정치'를 옹호하며 나의 경멸의 대상이
되었던 그
학생과 나와의 차이점: 그는 정직했고 나는 위선자였다. 남이 하면 간교함,
내가 하면 신중함.
하지만 이 정도의 자기비판으로 비탄과 좌절에
빠져 있을 만큼 내가 한가한 사람이 아니다. 뻔뻔스러움을 발판 삼아 자책감을
유용하게 써먹을 전략을 짜보자. 다음 번 누군가 간교한 발언을 하면
그것에 그의 신중한 뜻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 다시 생각해보자. 그리고
다음 번 내가 신중한 자세를 취하면 그것이 간교한 처세술은 아닐까
다시 점검해보자. 아니, 언제나 내 멋대로 남과 나를 보고 판단해버리고
마는
내 눈으로부터 자유로워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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