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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웹싸이트에는 '성찰을
위하여'라는
섹션이 있다. 방문객이 삶에 관한 어떤 특정한 생각거리라든가 고민사항
같은 것이 있을 때, 그런 것과 관련된 글로 링크되어 있는 일종의 별도의
채널로써 작년 3월에 만들어졌다. 작년말까지 줄곳 업데이트를 해왔으나,
갈수록 그 기능이나 실효성이 의심스러워졌는데, 이는 방문객들로부터도
그에 대한 별다른 반응을 받은 적이 없었다는 사실로도 확인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연초에 조금 한가한 틈을 타 대대적인 개편 작업에
돌입했다.
이걸 어떻게 뜯어고쳐야 누군가에게라도 도움이 될까
궁리를 해봤으나, 다른 어떤 싸이트에서도 이런 걸 본 적이 없고 해서
난망할 따름이었다. 결국 이 궁리 저 궁리 끝에, 전처럼 관련된 페이지의
그림을 통해 링크하는 썸네일 모양을 집어치우고 - 그림을 클릭해가지고는
어떤 내용의 글이 나올지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지 않은가, 바보같이...
- 링크된 페이지의 첫 문장을 가져다 놓기로 했다.
그래서 시작한
이 일, 싸이트의 500개가 넘는 파일들을 추려내서 링크시킨다는 것,
아직 2년도 안된 싸이트에 웬 잡글들이 이리도 많은지... 정말 시간
엄청나게 잡아먹는 지리한 작업에 착수하게 되었다. 박사 논문
쓸 때, 한 5년 동안 모은 사료(史料) 수 천점을 정리하느라 몇 달을
고생했던 것에 비하면 대단한 것이 아니겠으나, 어찌 되었든 단순 반복
작업의 기나긴 고행이 아닐 수 없다. 시작한 첫 날 왼종일 마우스 클릭하고
보니 그 다음 날에는 한 쪽 팔과 어깨가 기능을 하지 않아 반대편 손으로
작업을 했다.
내겐 이십대 초반부터 품게 되었던 생각이 하나
있었다. 나한테는 십대라는 것이 정말 힘겨운 시기였는데, 세상이라는
것은 - 특히, 학교는 - 그런 시기에 전혀 내게 도움을 주지 않았고,
아니, 도움은 커녕 오히려 나의 자구(自救)적 몸부림에 족쇄만 채우는
지긋지긋한 억압자일 뿐이었다. 허구헌 날 교사들에게 얻어맞고, 개기다
더 맞고, 또래 집단의 이른바 '주류'로부터는 왕따를 당하면서 그저
대학교엘 가야 한다니까 할 수없이 매일 나가던 학교... 그런 지겨운
십대를 보내며 아무 길도 찾을 수가 없어 헤매고 있는 수많은 청소년들에게
스스로 길을 찾는 데 도움을 줄 글을 쓰고 싶었었다. 그 생각이 세월이
한참 흐른 후에 현실에서 결정화(結晶化) 된 것이 '성찰을 위하여' 섹션이다.
실상 시도하고 보니, 유치한데다 별로 기능도 못하며 쓸모도 없는 꼴을
하고 있는데다가, 이제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을만 한 대상은 십대가
아니라 삼십대 이상의 청장년층이 되어버린 것 같지만; 아직 마음만
있지 그 시도는 마음에 못 미치고 있다. 과연 이번의 새로이 개조된
채널은 좀 더 쓸만 한 그 무엇이 될 수 있을 것인가? 하긴, 채널이 문제가
아니라 거기에 연결된 페이지의 컨텐츠가 문제지. 나는 그런 컨텐츠를
생성해가고 있기나 하나?
그래, 그래서 짚어보자면, 비록 아주
협소하고 수준 낮은 부분이나마, 말하자면 '중생제도'라는 거대한 사업의
한 지류에 내가 몸을 담고, 순수한 이타적 자비심에서 이런 귀챦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싸이트 개편 잡무에 귀한 시간을 며칠씩 투자하고 있는 것인가?
길잃고 빛을 등진 현대인들이 참된 자신을 찾도록 도와준다는 지극히
고귀한 사명을 받잡고, 내 한 몸의 쾌락을 포기하고 이런 '돈 한 푼
안나오는,' 게다가 그 실효성마저 의심스러운 일에 어깨가 빠지도록
왼종일 고행중인 것인가?
우하하하! 웃음이 나온다. 내가 본디
씨니컬한 면이 있어 웃음이 나오는 것만이 아니다. 나의 '고행'의
배후에는 중생제도 사명감 같은 것과는 거리가 먼 나라는 개인에게 고유한
특수사정이 있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 사정이란 것은, 단순히, 이게
다 내가 좋아서 하는 짓이란 것이다. 그 역사서(historiography)적 성격
때문에 특히 자료의 양이 많았던 박사 논문 집필 때에도, 그 많던 잡다한
자료들을 색인 파일로 정리하던 그 쪼잔하고 지리멸렬한 작업 그
자체를 내가 즐겼다는 것을 나는 안다. 지금은 그 수작업(手作業)이
디지털화(化)하여, 주로 마우스 클릭으로 대체가 되었으나, 어쨌든 유사하게
쪼잔한 웹에디팅 작업을 나 스스로 즐기고 있음을 나는 안다. 다 제가
좋으니까 하는 짓거리다. 뭐 거창하게 중생제도니 어쩌고 할 것 없다.
다 자신에게 영적으로 프로그램된 적성에 맞는 방식으로 보시도
하고 세상을 돕고 하는 것이지.
이십대 후반에 영어 강사할 때,
나는 나름대로 잘 가르쳐 보려고 애썼었다. 하루는 강사 대기실 한 켠에
있던 자그마한 책상에서 나는 열심히 수업 자료를 만드느라 가위와 풀과
이런저런 그림들을 가지고 매우 단순한 수(手)작업에 몰두해 있었다.
얼마나 그렇게 일했을까, 문득 옆의 소파에서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음을 눈치챘다. 나를 보고 있던 사람은 동료 강사로, 나보다 여러
살 연상인 그녀가 미국에서 자라서 영어 실력은 뛰어나지만, 매우 씨니컬하고
공격적인 여성이라는 인상을 나는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나를
미소를 머금고 조용히 줄곳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좀 쑥스러워서
이렇게 말했다: "유치하죠? 이런 일..." 마치 우리와 같은
고학력자가 이런 단순 수작업을 하는 것은 동료 집단의 명예에 흠집을
내는 것이어서 미안하기라도 하다는 듯이 - 어리석게도... 그런데
그녀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아니, 아니에요, 아주 멋있어요,
한선생님." 그녀의 눈을 보고 나는 그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짧은 수업 하나를 위해서 자료를 만드는 데 기나긴 시간을
들여 준비를 한다는 것이 프로페셔널로서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라 자랑할만
한 일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때 이후로는 내가 몰두해서
하는 모든 쪼잔한 일들에 자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까지만
해도 내게 냉담한 편이었던 그녀는 그후에 내게 큰 도움을 주기도 했다.)
이번에
'성찰을 위하여' 섹션을 개조한 것이 내 내면의 어떠한 동기에서 비롯된
것인지 단순하게 하나를 꼬집어 말할 수 없다. 사람의 행동의 동기는
언제나 복잡다단한 것이 아닐까. 그런데 그 동기라는 것이 거창한 이타적
박애주의이든지, 아니면 나라는 개인의 특수한 적성이 마침 시간 때우기에
적당한 일을 찾아내서 드러난 것이든지, 그런 게 중요하지는 않다. 중요한
건 내가 이 일에 몰입하기로 심각하게 선택했다는 것, 그 자체일 뿐이다.
그리고 선택한만큼 일을 완수하고, 그러고 나서 그 성과를 가늠해볼
것이다. 과연 새로운 방식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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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성찰을 위하여' 섹션의 개조작업은 약 40% 정도의 공정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2-3주 후에야 완공되어 싸이트에 올려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때엔 새로운 '채널'을 여러 분들이 시운전해보시고 평가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면 내년에는 이보다 더 나은 방식을 만들어낼 수
있겠지요. 그래서 그 누군가에게라도 도움이 될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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