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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책의 지혜' 섹션에 집어넣을 현각 스님의 책 내용을 뒤적거리다가
다음과 같은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은 불가의 스님이지만 소시적에
폴란드에서 카톨릭 교회를 다녔던 현문스님의 체험에 관한 이야기였다:
현문스님이
입을 열었다. "신부님, 하느님께서 우리를 똑같이 사랑하신다면
왜 장애인들을 만드셨을까요?" 신부님은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대답하셨다. "그건, 우리가 장애인들에게 동정하는 마음을 갖게
하고 우리가 나쁜 일을 하면 그렇게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시기
위함이지." 현문스님은 납득이 되지 않았다. 만약 그러한 신이라면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순간 성사를 받을 수 없다고 느꼈다. 그리하여
신부님 말씀이 채 끝나기가 무섭게 성당을 나와버렸다. 그리고 난 뒤
성당에는 아예 발길을 끊었다. (현각, 만행2, P. 120)
장애인들의
존재는 나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어왔다. 한 일본인 친구로부터
일본인들은 장애자인 자식을 사회적으로 수치스러운 존재로 여겨
쉬쉬하고 숨긴다는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나이를
먹다 보니 사람이란 것이 그 정도로 천박하고 비열한 존재로구나 하는
것을 실감할 수도 있었다. 자식의 명예가 곧 부모인 자신의 명예와 동일한
것인 양 여기게 되는 그 유치한 심리적 습관을 나도 자식을 키우다
보니 이해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내 아이가 뭔가를 남들보다 훨씬
못할 때, 마치 나 자신이 못난 듯이 느껴지고, 반대로 내 아이가 다른
애들보다 뛰어난 점이 있을 때, 나 자신이 우쭐해지는 그 유치한 심리.
그래서, 자신의 장애자 자식을 당당하게 데리고 다니며 극진히
뒷바라지 하는 부모들이 새삼 존경스러워진다.
딸내미가 다녔던
유치원의 같은 반에 지체부자유 아동이 한 명 있었는데 그 아이 때문에
여러 아이들이 전학(전원?)을 가버렸다는 슬픈 이야기를 이 싸이트 어딘가에도
적어놓은 기억이 있다. 진정코 제 자식을 이기적으로 '사랑'하는
부모라면, 그 장애 아동을 도와주고 함께 생활함으로써 제 아이가
습득하게 될 삶에 대한 깊은 지혜를 탐내야 마땅하지 않을까... 그렇게
체득한 지혜가 한 아이를 얼마나 깊고 빛나는 인물로 만들어줄 것인가에
대한 상상력이나 사고력이 우리 사회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이런
상상력, 사고력이라는 것이 제 자식만을 '훌륭한' 인물로 키우겠다는
'이기적 사랑'의 테두리 안에서는 발원하기조차 힘든 것이기는 하지만.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장애를 딛고 일어나 '정상인' 사회에 참여하려 발버둥치는
젊은이의 이야기를 보고 한참을 울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다, 장애인에
대한 나의 첫 번째의 감정적 양태는 동정, 연민 등에 가까웠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순수한 감정일지 모르나, 유치하다(수준이
낮다).
며칠
전, 한 건물의 계단을 급히 내려가다가 한 중년의 여성과 마주쳤다.
그녀는 내게 아무개 치과가 어디에 있는지 아느냐고 물었고 나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고는 주위를 살폈다. 그런데 내가 서있던 바로 그곳
앞에 그 치과가 있는 것이 아니가. 그래서 알려줬다. "바로 여기네요."
하지만 그녀는 내 손이 가리키는 곳을 전혀 보고 있지 않았다. 그저
조용한 미소만으로 다시 그 치과의 위치를 묻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그녀의 짙은 색 안경 속에 감겨져 있는 그녀의 눈을 보고 그녀가
시각장애인임을 깨달았다. 그녀가 여전히 미소지으며 자신을 그곳까지
안내해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그녀의 한쪽 팔을 잡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치과 접수계까지 그녀를 데려다주었다. 그녀는 나에게 밝게 감사의
인사를 했고 나 역시 밝게 답례하고 내 갈 길을 떠났다. 내가 웃음지어도
이 사람에게는 보이지가 않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짧은 사건은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정상인'들은
사회에서 조우하게 되는 타인의 정체와 심중을 알아채리기 위하여
열나게 눈알을 굴리고 아래 위를 훑으며 상대방에 관한 평가에
몰두하곤 하는데, 이 시각장애인 여성은 나와의 순간적인 조우에서 그러한
절차를 완전히 생략한 채, 아무 거리낌없이 나의 손에 자신의 몸을 맡겼던
것이다. 아무 두려움도 없는 듯이. 나는 그런 것을 못한다. 엥간해선
내가 모르는 타인에게 도와달라는 청을 하지를 못한다. 이러한 내가
정상인가, 다른 인간의 선의를 믿고 그것에 자신을 기쁘게 내맡기는
시각장애인이 정상인가? 내가 그녀에게 자그마한 도움이라도 줄 수 있었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것조차 잊고, 나는 '정상인'인 나 자신의 비정상적
심리 행태를 탓하느라 한참의 시간을 흘러보냈다.
엊그제 나는
가족을 데리고 실내 수영장에 다녀왔다. 둘째가 몇 달째 튜브타고 수영하게
해달라고 졸라대서 겨울인데도 할 수 없이 데리고 갔다. 새로 만들어서
아이들이 좋아할 다양한 시설들을 갖춘 그 수영장에는 마침 십수명은
되보이는 장애인들이 단체로 놀러와있었다. 그런데, 내가 튜브에
탄 둘째를 밀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난 사내
녀석이 내 얼굴에 정면으로 냅다 물을 끼얹는 것이 아닌가! 하도 어이가
없어 그 녀석 얼굴을 바라봤더니, '히이-'하고 웃으며 두 손을 물에
파닥거리는 것이었다. 몸뚱이는 어른만 한데 가만 보니 말도 제대로
못하고 표정도 부자유스런 장애인이었던 것이다. 할 수 없이 나도 같이
히이- 웃어주고 말았다.
그 다음에는 야트막한 유아용 풀에서
깔깔거리는 두 딸내미들과 놀고 있는데, 열 댓살은 되어보이는
사내 녀석 하나가 그 얕은 물 속에 제 몸을 정열적으로 잠수시켰다 뺐다가를
되풀이 하더니만, 느닷없이 내게로 와락 달려드는 것이 아닌가!
난 순간 그 애도 장애아동인 것을 눈치 챘지만, 지체부자유자의 행동과
표현에 익숙하지 못한 탓에 얘가 무슨 의도로 이러는지 잠시 주춤했었다.
내 눈에는 그 아이의 사지(四肢)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워 보여, 혹시
그 얕은 물에서라도 빠져서 호흡 곤란이 온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에
일단 몸이 빠지지 말라고 그 큰 몸뚱아리를 두 팔로 껴안았다. 생면부지의
커다란 사내 놈을 꼭 껴안고 있는 제 애비를 보고는 내 두 딸내미들은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몰라 놀란 채로 눈만 말똥말똥 뜨고 지켜볼
뿐이었다. 그런데, 그 남자 아이가 비록 말은 하지 못했지만, 물에 빠질까봐
도움을 청한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놀자는 표시를 한 것임을 금새
알아차릴 수 있었다. 딸애의 몸의 두 배는 될 성싶은 거대한 '아이'를
두 팔로 안고는 다섯 살짜리 딸내미를 어르듯이 살살 흔들어주었다.
여우같은 내 딸들은 그런 제 아빠와 '오빠'를 보고 멋적으면서도 난감한
듯한 묘한 미소를 지은 채 옆에 서있고, 그 남자 아이는 나와 제대로
시선도 못 맞추면서 소리를 꽥꽥 지르며 물을 첨벙거렸다. 나는
그 아이가 즐거워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잠시 그러고
있는데 날씬하고 예쁜 젊은이 하나가 달려와서 나로부터 그 아이를
받아서 껴안고는 내게 죄송하다고 말했다. 장애아들의 인솔자인
대학생인 것 같았다. 죄송하긴 뭘... 댁을 보니 내가 미안하구먼...
하는 생각이 들 뿐이었거늘. 그 젊은이는 커다란 아이를 유아풀에서
데리고 나가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커다란 '오빠'의 첨벙거림 때문에 위협을
느꼈던 나의 딸내미들은 그제서야 내 품에 달려들며 대체
저 오빠가 왜 그랬냐고 질문을 퍼부어댔고.
나는, 내가 방금
아이를 데려간 그 젊은이 또래였을 때에 뭘 했었던가 생각해봤다.
술쳐먹고 데이트하고 놀기 바빴었지... 그 젊은이의 눈빛이 얼마나 맑고
아름답고 또 자신감 넘치던지... 아, 내 딸들도 그런 눈을 갖게 만들어주고
싶다.
평소, 주변에 장애인이 없어 장애인의 사정을 피부로 느껴본
적이 없던 나였지만, 최근 이, 삼일 사이에 문자 그대로 '피부로' 그들을
느껴볼 수가 있었다. 그 열 댓살 먹은 사내애의 물에 젖은 피부의 감촉이
아직도 기억에 뚜렷하다. 그 아이가 내게 달려들었던 것에 감사한다.
적어도 나를 무서워서 피할 어른으로 느끼지는 않았었다는
것이겠고, 또 그런 나와 놀고 싶은 자신의 마음을 활짝 열어서 보여준
것이었으니까. 두려움 없는, 거리낌 없는 그 아이와 또 다른 몇 사람들의
그 행동을 존경하며 또한 감사한다. '정상인'인 내 쪽이 더 마음의 장애인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몇 달 전엔가 첫째의 학교 숙제인 글짓기를
도와주며 이런 이야기를 해준 기억이 난다. (딸애는 장애인인 동생을
부끄러워한 어떤 어린이의 이야기를 담은 동화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던
중이었다.) '장애인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못하는 사람이지만, 또
어떤 점에서는 우리보다 훨씬 더 잘하는 것들이 많단다. 그러니까 앞을
못보는 사람이 귀로 듣는 능력은 우리보다 훨씬 뛰어날 수도 있는 것처럼
말야. 그래서 우리는 장애인도 뭔가를 잘 하는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존경해줄줄 알아야 해.'
그런데 여기에다 덧붙여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다. 장애우들이 보통 사람들보다 더 용감하고
커다란 마음을 갖고 있는 경우도 많다는 것을. 그리고 보통 사람들에게
깊은 가르침을 주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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