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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식구들과 '반지의 제왕' DVD를 봤다. 겉에 드러난 선악의 투쟁과
궁극적인 선의 승리 같은 스토리라인은 우리 딸내미도 보고 재미있어
할
정도로 단순 소박하다고 하겠으나, 역시 소문대로 보면 볼수록, 그 안의
무궁무진한 층과 결들이 정교하면서도 웅대한 규모로 인생 여정의 본질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악의 반지를 파괴하기 위한 사명을
띠고 길을 떠나는 프로도의 여정이 바로 삶의 목적을 몸소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험난한 여정 중 프로도는 - 그리고
여타 호빗족 주인공들은 - 틈틈이 떠나온 고향 샤이어를 그리워한다.
그가 그리워하는 것은 평화로운 샤이어의 평범한 일상이다. 샤이어를
조금은 지루한 곳이라고 여겼던 그는 고생길에 오른 후에야 비로소 샤이어의
아름다움에 눈뜬 것이다. 그러나 샤이어는 너무도 연약하다. 자그마한
외적 자극에 언제라도 부서질지 모른다. 그래서 프로도 일행은 이 약한
샤이어를 악의 손길로부터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건 모험길에 나서는
것이다. 샤이어는 결국 한 인간에게 주어진 현상계의 터전을 암시하는
것 같다
- 대체로 '가정(Home)'으로 대표되는.
프로도는 자신을 사로잡은
반지의 마수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하여, 그리고 그 반지가 상징하는
악의 세력으로부터 세상을 지키기 위하여 길을 떠나 죽을 고생을 겪는다.
여기에서 반지는 그 소지자를 거대한 집착과 독점욕의 포로로 만들어버림으로써
그의 악한 마음을 점점 키워주는데, 이 반지가 가진 마력은 우리가 인생에서
조우하게 되는 강렬한 매혹을 나타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매혹이란 고양된
형태로 드러날 때엔 코엘료의 '연금술사'에서 말하는 '자아의 신화'와
같은 것일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보다는 좀 차원이 낮을지 몰라도
어쨌든간에 한 인간으로 하여금 안락하고 단조로운 집안에 남아있지
말고 거칠은 들판으로 꿈을 좇고 위험을 무릅쓰며 나아가라는 다양한
충동들을 다 포함하는 것이리라 본다. 그보다도 더 낮은 차원으로 보자면
한 개인을 평생 뒤쫓으며 발목을 잡는 어떤 집착, 또는 자신만의 악마일
수도 있겠다. 하긴, 자신의 내면의 악마와 대결하기 위하여 집을 떠나는 예도
많지 않은가.
프로도의 목적은 반지를 파괴하는 것이고,
이는 그 길고도 고통스러운 여정을 견뎌내지 않고는 이룰 수 없는
일이다. 프로도는 결코 고난에 굴복하지 말고, 역경을 견디며 뚫고 나아가야만
한다. 바로 이것이 결국은 반지의 제왕에서 말하고자 하는 인생의 목적 아닐까?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소명을 이루기 위하여 삶의 여정에서 조우하게
되는 모든 고통을 반드시 인내하며 이겨내야만 한다는 것; 이는
이번 생에서 부여받은 독특한 사명으로, 이를 성취함으로써 나는 '영혼의
진화'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헌데,
이 목적을 이루는 방식이란 것이 악독한 마음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의 최상, 즉 사랑을 통해야만 된다는 메시지도 반지의
제왕 도처에 나타나지 않았는가 싶다.
프로도 일행은 엄청나게
어려운 임무를 마치지 않는 한, 샤아어에서의 옛 행복을 다시 맛볼 수
없다. 그러나 동시에, 이 어려운 임무가 주어졌다는 것은 인생의 목적이
명백하게 한 인간 앞에 드러났다는 말이다. 이는 위기가 최상의 기회라는
말과도 통할 것 같다. 그 위기를 불굴의 의지로 극복해냄으로써 자신의
최상을 드러내고, 그리하여 인생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 목적을 이루고 난 후 프로도 일행은 샤이어로 돌아오지만,
그리고
샤이어는 여전히 평화롭고 천국과도 같지만, 그러니까 현상계가 곧 천국이었음을
깨닫지만, 천국이란 어디에 어떻게 있는 그런 곳은 아닐 것임을 깨닫게
된 것일까... 임무를 완수함으로써 삶의 목적 - '영혼의 진화' - 을 다 채운 프로도는 저 세상으로
떠나는 배를 탄다. 자신의 존재를 송두리째 사로잡았던 그 모험을 통해서
얻은 깊숙한 상처가 결국 프로도를 죽음으로 이끈 것일지... 삶의 목적을
이루는 그 길에는 그러한 치명적인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일지...
나는 과연 이번 생에서 반지원정대에 합류하여
목숨을 건 모험을 떠나보기나 할 것인가? 혹시 떠날 기회가 다가온다
해도 그저 겁먹고 그 기회를 외면해버린 채 평범한 일상의 샤이어에
남아 여생을 보낼 것인가?
나 자신은 그 모험의 길을
떠났다고 믿고 있다. 비록 반지의 제왕 이야기 속과 같은 엄청난 위험과
위대한 영웅들, 그리고 천상의 것과 같은 기적적인 매혹들과 조우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이 조촐한 모험의 길 또한
위험, 길벗, 매혹 등으로 치장되어 있다. 이길을 가며 나의 최상을 찾아내어
나의 최악에 구원의 빛을 비춰주어야만 한다는 것을 나는 아주 잘 알고 있다. 비록
프로도와 같은 모험은 하지 않아도, 이 길도 나름대로 험난하다. 처음
길 떠나던 무렵, 이 정도 내공으로는 안되겠다 싶어 담배를 끊었다 -
심신의 힘을 키우려고. 이젠 그 좋아하던 술도 끊었다. 그 다음엔 누군가 농담으로
내게 말했듯이 가족까지 끊을 차례인가?
설마... 가족에
대한 집착과 욕심을 끊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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