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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련의
불유쾌한 일들 네 건이 한꺼번에 벌어졌다. 납품에 대한 불평이 접수되었고,
부당한 공과금이 부과되었으며, 몇 번 거래한 상인의 무례함을 접하였고,
기대했던 인물이 등을 돌렸다. 언제부터였던가 왜 이런 대수롭지 않은
부정적인 일들이 마치 잔업 처리하듯이 한꺼번에 몰려드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평소에는 아주 잠잠하다가.
프로그램 제1단계:
작동
어쨌거나 수행자로서 나는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있는 그대로
보고자 한다. 나로부터 떨어져 나와서 나 자신의 그 일들에 대한 반응을
살펴보았다. 나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정들에 먼저 쉽사리 눈길이
갔다. 그것들은 자존심 손상, 억울함, 피해 의식, 배신감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각 사건이 발생하는 순간, 내가
이러한 감정들에 의하여 잠시 동안 휘둘림을 당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이번에는 네 건이 거의 한꺼번에 일어났지만, 다행히도 나는 휘둘림을
그다지 오래 당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렵지 않게 관조 프로그램을
작동시켰고, 평소와 다름없이 일하면서도 간헐적으로 그 관조의
결과에 대하여 숙고할 수 있었다.
프로그램 제2단계: 파악
먼저,
내면에 일어난 감정의 주체는 '나'이다. 이건 가짜 나다. 이 가짜 나는
현상의 사건들에 대하여 감정을 일으키고, 자신이 일으킨 감정에 압도되는
바람에 현상에 대한 주인 의식을 상실해버리곤 한다. '나'를 압도시키는
그 감정들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조용히 따라가다보니 그 밑바닥의
두려움이 뚜렷이 보이고, 그 두려움의 기원은 과거에 있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대체로, 아직 기억하고 있는 어린 시절 마음에 입은 상처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보다 더 과거로 들어가보고 싶었으나, 내겐 그럴
능력은 없다. 그 정도에서 멈추고 다시 현재로 돌아왔다. 부정적 감정의
밑에 깔린 두려움과 그 두려움의 자양분이 되었던 유아기적 경험에 대한
어린 나의 반응을 고구마 줄기 캐듯 줄줄이 끄집어내본 것이다.
프로그램
제3단계: 행동
오래지 않아 내면의 불쾌감들은 그 기운을 잃었다.
각 사건들은 무미건조하고 별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없는 데이터로서만
내 기억에 남아있다. 그제서야 나는 각 사건들에 대하여 뒤늦은
현실적 조치를 취해보았다. 전화와 이메일을 사용해서 나를 설명하고,
상대의 뜻을 확인해보았다. 마음 속에서 그 네 사건들을 부정적으로
결박하고 있었던 나의 감정의 매듭들이 다 풀려버렸다. 그 사건들은
더 이상 부정적이고 불쾌한 사건들이 아니다. 심지어는 그들중 세 건이
기대도 못했던 방식으로 쉽게 해결되고 말았다. 납품에 대한 불평은
감사 섞인 제안으로 바뀌었고, 부당 부과금에 대해서는 즉시 정정 조치가
취해졌으며, 등을 돌린 것으로 생각했던 인물은 전산 오류에 기인한
오해였음이 판명되었다. 무례한 상인은 다시 보지를 않아서 모르겠으나,
그를 더 이상 '무례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내가 그 사람 처지에 대하여
대체 무얼 알겠는가?
프로그램 제4단계: 평가
결국
잔업 네 건은 하루 만에 처리가 되었다. 나 자신의 처리 과정과
그 방식에 대해서는 큰 불만은 없으나, 처리의 싸이클이 너무 길다는
게 불만이다. 또한, 비록 초기의 부정적인 감정의 반응 그 자체를
부정하거나 거부하려는 마음까지는 없지만, 그 상태에서 나의 유체이탈적인
-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 관조 능력이 아직 일천하여, 그 감정의
기승전결의 싸이클을 앞서 인식하지 못하고, 그 감정이 기승을 부리는
그 순간의 기운에 한심하게 압도당하는 것이 불만스럽다. 앞으로는 초기에 이렇게
반응해봐야 하겠다: '지금 발생한 이 부정적인 감정은 얼마 후면
그 기력이 쇠진하여 사라져 버릴 것이 뻔하다.'
프로그램
제5단계: 계획
관조 프로그램은 일상을 평화롭고 성실하게 영위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그런 이점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 프로그램의 제1단계인 '작동'개시가 제일 중요하다. 스위치 ON 하지
않으면 당연히 말짱 헛거다(즉, 속으로 계속 C8 C8거리다가 급기야 호전적
반응을 보이거나 괜히 애꿎은 상대에게 분노를 터뜨리는 짓거리나
할 거다). 앞으로도 이 프로그램을 여러 번 되풀이 하여 사용해봄으로써
그 성능을 향상시켜 여타 상황과 다양한 변인들의 개입에 대하여도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신제품으로 개발할 계획이다. 추가로, 상기의 조악한
5단계 과정은 좀 더 세련화될 필요성이 있다. (사업 보고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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