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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
높으신 수행자님들은 명상도 오래 잘 하신다는데, 난 영 수준이 낮아
그런지 심오한 명상보다는 그저 하느님을 붙잡고 늘어지는 기도를 더
많이 하는 편이다. 아침에 일어나 앉아 하는 명상도 하다보면 금세 졸립고,
그래서 틱낫한 스님 제안대로 생활 속의 매 순간을 명상으로 만드는
일상 명상 쪽으로 치우치지만, 그것도 쉬운 게 아니다; 살다보면 맨날
까먹고 마니까. 맨정신으로 두눈 부릅뜨고 살아도 할까말까 한 일상의
명상을 정신 빼놓고 살며 술까지 퍼마시니 제대로 될 일이 만무하다
- 아무래도 수행 계속하며 살려면 아예 술을 끊어버려야 할 것
같다. 헌데, 이런 나태한 수행자인 나에게도 기도는 친숙하고도
친밀한 수행 방법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나 어떤 방식으로든
기도를 한다.
아마 기도를 처음 해본 것은 십대 후반 쯤이었던
것 같다. 알을 깨고 나오는 사춘기의 아픔을 견뎌보고자 절대자에게
의지하려 했었다. 헌데 그 후로는 1999년에 신을 만날 때까지 단 한
번도 기도로 신을 찾은 적이 없었다. 심지어는 첫애 출산 때 아내와
태아의 생명이 위중해졌을 때마저도. 그러나 신을 만난 후로는
기도 없으면 쓰러질 것처럼 살게 되었다.
하루를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끝낸다. 그리고 그 중간에 수시로 기도한다. 나는 기도드리는
나의 모습을 하나님께서 예뻐하신다고 믿는다. 내가 기도올리는 것을
그분께서 좋아하신다고 믿는다. 나의 기도는 하느님께 감사드리기와 말걸기일
뿐, 구복적 내용은 없다; 허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행복과
안녕을 위한 기도는 매일 한다. 일상 속에서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말을
걸며, 스스로에게 불만스런 점을 털어놓고 가이드를 구한다. 하루에도
여러 번 그런 일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나의 기도에는 특정
장소나 시간, 형식, 자세 또는 그밖의 어떤 사회적 제약도 없다. 기도를
하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하지 나머지는 고려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렇게
책상머리에 앉아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다가도 문득 기도를 한다.
자전거를 타고 들길을 가다가도 잠시 멈춰서서 기도를 한다. 지하철
타고 가다가도 잠시 눈을 감고 기도를 한다. 길을 걷다가 미풍에 머리카락이
흩날릴 때도 기도를 한다. 기도를 수시로 한다. 감사하는 마음이 때와
장소에 맞춰 솟아나는 게 아니니까. 따라서 늘 자세를 갖출 수는 없다.
지하철 타고 가다가 갑자기 무릎 꿇고 기도를 하면 볼만 하겠다. 뭐
그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겠지만 내 스타일은 영 아니다. 때론 인파로
붐비는 도심을 걸으면서도 두 손 합장하여 잠시 기도 올리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주로 그저 잠시 눈을 감는 것으로서 그 '폼'을
대체한다. 기도를 올린다는 그 자체가 중요하지 폼이 중요하지는 않다.
때로는
혼자 방 안에서 무릎 꿇고 제대로 자세 갖춰 기도를 올리기도 한다.
헌데 이건 대체로 무지무지 큰 잘못을 저질러 후회막급의 경우에 잘
취하는 자세다. 무릎 꿇고 오래 앉아 있으면 다리가 아프고 저리기 때문에
이 자세도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그래서 그냥 편하게 앉아서 두 손
모아 기도 한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도 침구 옆에 곱게 무릎 꿇고 앉아
기도드려야 옳은지 모르겠지만, 난 그리 하지는 않는다. 예의 없는 신도인가,
나는? 아니면 인간이 인간의 잣대에 맞춰 만들어놓은 그 정도의 예의
수준은 뛰어넘은 신도인가? 나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또 기도하며 느껴봐도,
나의 하느님께서 어떠한 특정 조건을 갖춰 기도를 드려야만 흡족해하신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다. 하나님은 우리들 수준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설사
내가 벌거벗고 응가를 하다가 기도를 드린다면 그것이 신성모독이 될까?
'신과
나눈 이야기'에서
여러 번 되풀이되는 말씀이지만, 인간이 신을 모독하는 것이 가능한
일이 아니지 않는가. 신은 도저히 모독될 수 없을 만큼 크기 때문에.
인간이 기도 자세를 좀 안 갖췄다하여 그것에 모독될만큼 우리의 신께서
우리처럼 쬐그말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잠들기 전 누워있을
때 아직 잠이 안오면 하느님께 말을 건넨다. 시건방지게 다리 쭉 뻗고
누워서 합장도 잘 안 한 채, 감히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다. 잠도 안오는데
상념에 빠져 머리 굴리는 것보다 이렇게 기도하는 게 훨씬 낫다. 물론
무릎 꿇고 자세 갖춰 기도 드리고 자는 것도 좋겠지. 헌데 누워있는
그 시간마저도 기도에 쏟는 것도 좋다. 난 처음으로 신과 만나 푹 빠져
있을 때 마치 하느님과 연애를 하고 있는 기분이었는데, 그때 누군가의
차 뒷좌석에 타고 가는 길에 혼자 몸을 웅크리고 하나님께 말을 건네며
응석을 부렸던 기억이 난다. 난 그때 지극히 행복했고, 그런 나의 모습을
신께서 어여삐 여기셨음을 의심치 않는다.
수시로 기도하는 게
좋다. 그게 삶을 신께 내맡기는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우리의 하느님께서
받아주시지 못할 우리의 모습이 없다는 걸 안다면, 잠 안오는 밤에 누워서
기도하는 것이 결례일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기도는 많이
자주할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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