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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제 궤도 위에 올라와 있는 줄 알았다. 제 갈 길에 제대로
잘 들어와 있는 줄 알았다. 비록 그 길이 항상 평안하고 보람 있는 것은 아닐지라도, 이것이 평화와 행복의 존재인 참된 나로서 가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모습 그대로, 구도자로서 아직 턱없이 부족한 나를 성장시키고, 내 주변에 맑은 향기를 퍼뜨리며,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나를 바치는 등, 착실하게 살아가다보면 신께서 알아서 또 어떤 기적적인 계기를 가져다주실 것이며, 따라서 나는 내 영적 진화의 길을 순조롭게 이어나가다가, 때가 되면 육신의 짐을 뒤에 남기고 현상계로부터 벗어나 신의 품으로 되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맑고 높은 곳에서 5년이 넘는 세월을 고공비행했다. 그런 순진한 믿음 모두가 잘못되었던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나는 그 길이 칼날같이 좁은 길이라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주님께서 주신 평화와 안락 속에서 나태해지고, ‘소명’에 빠져 지냄을 자만하여.
지난 반년 간 나에게 다가온 사건들과 그것들에 대한 나의 반응을 이제 조용히 되짚어보고 있노라면, 많은 실책을 저질렀고 연속적으로 어리석은 판단을 내렸던 나 자신의 모습이 드러난다. 그런데 그런 내가 부끄럽지가 않다. 심지어는 극도로
어두운 마음마저도 잠시나마 품었던 나 또한
이제는 죄스럽지 않다. 그러할 수 있었음에 - 그것을 경험했음에 - 대하여 감사의 마음이 든다. 좀 더 마음이 넓어진 것 같다. 좀 더 세상을 많이 껴안을 수 있게 된 것 같다. 세상의 더 많은 부분을 장애나 저주가 아닌 축복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 같다.
결국, 나 자신의 더 깊숙한 곳까지 수용하고보니 세상의 밝지 못한 면을 더 많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 같다.
고난을 겪으며 결과적으로 내가 더 착한 사람이 된 것 같지는 않으나, 적어도 나는 더 겸허해졌다. 더 몸을 낮추고, 목소리를 낮추고,
'선명함'을 티내지 않으며, 평범함 속에 스스로를 녹이고 동화시켜, 내 주변의 일부가 되고자 하고 있다. 고통이 가장 심했을 때는, ‘주여 왜 이런 시련을 내게 주시는 것입니까’하는 탄식이 저절로 삐져나오는 가운데 감옥에서 매일 아침 일어나서 복역하고 있는 듯이 느껴졌으며, 좌절과 허망함에 빠져 쓰러져 있을 때는 그 어떤 것도 하고 싶지가 않아 술과 담배로 나날을 흘려보냈다. 그리하여
이제, 고통과 좌절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어렴풋이나마 나에겐 그것들이 필요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내게 필요한 것들을 나보다 더 잘 알고 계신 신께서 다 알아서 제공해주셨겠지만,
내가 고통과 허망감을 좀 더 깊이 이해하고 극복해야할 필요가 생겼을 때
- 무슨 연유에서 그런 필요가 생겼는지는 알 수 없지만 -, 주님께선 내게 가장 효과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방식으로 그것들을 조합하여 가져다주셨다고 믿는다. 그래서 효과적으로(effectively!), 나라는 인간의 아킬레스건이 노출되고, 매우 오랜
세월동안 내 무의식을 프로이드의 디자인대로 지배해왔던 섬세한 심층의 바램들이 간단히 표면의식을 꿰뚫고 나올 수 있었으며, 결과적으로
그 오랜 바램들이 부정되고 제거되는 고난을 겪게 되었으나, 이런 과정을 통하여 예상치 못했던 방식으로 이기심과 자기보호 본능을 떨쳐버리고, 순수한 이타심이라는 맑고 고운 꽃을 나의 내면에 피우는 축복을 체험할 수 있게 되었다.
되짚어보면, 고통이 가장 예리하게 내 심장을 쑤시고 있을 때에도, 비록 그 고통을 부정할 수는 없었으나, 나는 그것이 신께서 나를 사랑하시어 주신 축복일 것임을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 허무함이 끈질기게 발목을 잡아 수렁 속으로 나를 끌어내릴 때에도, 나는 이 모두가 나를 위하여 신께서 자비로써 베풀어주신 과정일 것임을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
바로 요만큼에 대해서는 자부심을 갖고자 한다.
추상적이고 관념적으로 이렇게 쓰고 있는 것들의 구체적인 배경이 된 사건들에 관하여 직설적인 묘사를 보태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러하지 않는 이유는 겸허하기 위해서, 즉 튀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러하지 않는 이유는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칼날같이 좁다는 것을 더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그 길로 돌아왔다. 미끄러져서 굴러 떨어져 저 밑에서 기어 다니다가 다시 올라왔다.
비록 상처가 완전히 아물지는 않았으나 지금은, 오랜만에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작고 소박한 행복감이 새삼스럽고 고마운 그런 시기이다. 나의 안전과 이익을 먼저 생각하지 않고 이타심을,
즉 나 아닌 타인을 위하는 마음을, 평상심처럼 지니고 있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하여 가장 감사의 마음이 든다.
헌데 피곤하다. 조금 쉬고 싶다.
조금만 쉬고 그 길을 계속 갈 것이다.
그간 나를 인도해주신
신의 말씀의 일부를 핀드혼의
아일린의 글을 통해 몇 자 옮겨놓아본다. 변화의 고통에는 반드시 의미가
있다고 믿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 배후에 자비로운 하나님의 손길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며, 그래서 고통스럽더라도 그 변화를
받아들이고 용감히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고통이 두려워 변화를
거부함은 하느님께서 나의 영적인 성장을 위하여 마련해주신 기회를
거부하는 것이란 말이다.
번데기 속의 안락과 안전으로부터 밖으로 빠져나오려
하고 있는 나비를 생각해보아라. 그 나비가 밖으로 나오려는 과정을 멈추고 이렇게 말했다고 가정해보아라. “안돼, 나는 이곳을 떠날 수 없어. 난 바깥에 무엇이 있는지 모른단 말이야.” 나비가 밖으로 나올 것을 거부했다고 가정해보아라.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나비는 제 자신의 진화에서 실패하게 될 것이고, 만약 계속 자신의 번데기 안에 머물러 있는다면 스스로 오그라들어서 죽고 말 것이다.
너 또한 마찬가지다.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것을 거부한다면 너는 네 자신의 진화에 제동을 걸게 될 것이 자명하다.
네가 이러한 새로운 모험 속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다면, 네가 너의 번데기로부터 밖으로 나온다면, 너를 맞이해줄 가장 놀라운 경이와 기쁨을 내가 마련해두었다. 두려워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러한 전진 끝에는 오직 완벽한 결과만이 너를 찾아올 것이다. 너에게 아직 알려지지 않은 많은 신비와 경이가 완전히 새롭게 펼쳐질 것이다.
네가 무엇을 하고 있든 간에 나는 언제나 너와 함께 함을 기억하여라. 나는 네 곁에서 너를 이끌고 너를 지켜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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