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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
만에 존경하는 길벗 한 분을 만났다. 회포를 푸는 술 한 배가 돌아간
후, 길벗께서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했다.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나의
독자적인 공부와 수행의 길을 세속의 눈으로 평가하지 않고 늘 격려만
해주었던 길벗께서, 지난 수 개월간 생기가 쏙 빠져버린 글들만 싸이트에
간신히 올려놓고 있는 나의 슬럼프의 원인에 대하여 궁금했던 것은
당연한 일. 그런데 대답하려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이미 지나버린
일인데도.
지난 5월의 꿈 이야기를 했다. 너무도 생생한 꿈이었다.
내가 신과 합일이 되기 위하여 황금빛을 내뿜으며 천상으로 올라가다가,
무언가 딱 하나 아쉬운 것이 있어서 승천을 포기하고 지상으로 다시
내려오는 꿈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 태어나서 겪어본 중에 아마도 가장 극심한
마음의 고통 속에 오랜 기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 꿈을 꾸었던
때가 나의 의기양양한 수행의 진도가 어떤 절정에 도달했던 순간이었다. 지난
5년간 한 우물만 파며 일하고 공부하고 수행해오면서, 내게 주어진 현실의
도전들을 하나, 둘씩 멋지게 뛰어 넘고, 포용하고, 또 깊은 의미에서
이해해왔다. 승승장구. 내가 내 앞의 현실의 주체적 창조자이며, 거의
내 마음먹은 대로 모든 일들을 처리해왔다. 칩거라고 할 수 있을만큼
나 홀로 수행을 지속해왔지만, 수 많은 사람들과 만나 함께 일을 해야하는
갑작스런 경우에도 사회적으로 경험 많고 '유능한' 사람들 보다도 더
유능하게 만사를 처리할 수가 있었다. 모두를 도와줬고, 그 모두가 기꺼이
나를 도와주었다. 물론, 현실적으로 실패도 있었고 괴로운 일들도
많았지만, 나는 그 모든 것들 앞에 무릎 꿇지 않고 영적인 차원에서
그것들을 보듬어 안으며 그것들이 축복으로 주어진 깊은 의미를 깨닫고
꾿꾿한 평화를 유지해왔다. 그래서 기고만장하였다. 이제 내 여생의
할 일이란, 이렇게 평화롭고 행복하게 일하고 살며, 가능한 한 효과적인
방식으로 내가 받은 신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것일 뿐이라고 믿었다.
이제 드디어 나만의 책을 쓰기 시작할 때가 되었다고 믿었다.
그러다가
시험을 받았다. 신과 일체가 되는 승천(상징적이지만)을 접을 만큼 강력하게 나를
붙잡은 지상에서의 미해결 건이 있었던 것이다. 그 일에 관하여 길벗께
간단히 이렇게 말했다.
그 일로 인한
내적인 갈등으로 매일 밤 정신이 두 쪽으로 깨져나가는 고통 속에서
살며 살이 죽죽 빠졌다고. 나는 선한 두 사람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
살아오며
나름대로 이런저런 어려움도 겪었으나, 올해처럼 힘들었던 때는 없었던
것 같다. 기획했던 중요한 일 하나도 무산되었으며 쓰려던 책도
그 내용을 채울 수가 없었다. 돈도 못 벌었다. 자전거가 사고로 부서진
이후 운동도 안하고 산다. 살이 너무 빠져 몸에 맞는 옷이 없다.
길벗께서는
내게 술잔을 권하였다. 6년 간 끊었던 담배를 피우며 나는 그 술을
받아마셨다. 내가 만들어낸 지옥, 두 사람에게 준 크나큰 상처.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이미 지나버린 일들인데도.
그리고 우리는
공부와 수행에 관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수행 싸이트를
폐쇄해 버릴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마치 영성이 완전히 고갈된
듯하여 글을 쓸 수가 없다고. 맑게 닦던 거울이 너무도 더러워져서 부끄럽기
짝이 없는데 무슨 글을 쓸 수 있을까. 길벗께서 이렇게 말해주었다.
내가 글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 마저도 거울이 될 수 있다고. 그냥 내
모습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수행의 길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 쪽 뺨으로 눈물이 주륵 흘러내렸다. 알콜
때문이 아니었다. 어머니 시신 화장할 때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었는데,
나도 모르게 그만 눈물이 흘러내리고 말았다. 눈물이 자꾸만 흘러내려
화장실에 가서 세수를 해야만 했다. 이렇게 되어버린 꼴로도 내가
수행을 하고 있는 것이라니, 이런 모습으로도 여전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니...
길벗께 감사드린다. 나로 인하여 큰 상처를
받은 두 사람에게 용서를 빈다. 그리고 부끄러움 때문에 저 밑으로 내려가서
기도하겠다. 주님, 나의 님이시여, 당신께서 이 모든 것을 오직
은총으로써만 주셨음을 믿습니다. 나의 추한 몰골에 부끄러워하지만,
내가 받는 고통에 감사하겠습니다. 오직 님만을 바라보며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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