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2004/7/24)
 

사람들은 대체로 조심스러워, 길에서 마주치는 아무나와 마음을 터놓고 사귀지 않는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이고. 그래서 세월이 흐르다 보면 자신의 곁에 두고 지속적으로 마음을 주고 받는 핵심 교제 인물군이 형성되기 마련일 것이다. 그들에 대하여 품고 있는 나의 마음은 기본적으로 신뢰에 기초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랜 시간의 시험을 버텨내고 그들에 대하여 내가 품게된 신뢰감은 그들 각자가 나에게 지속적으로 보여준 '진실성,' 또는 'integrity("인테그러티")'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번역하기 어려운 이 'integrity'라는 말을 잘 설명해준 글을 얼마 전에 읽었다:

Integrity는 일체성을 뜻한다. Integrity를 지닌 사람은 서로가 딱딱 들어맞는 가치관들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이들은 자신의 참된 자아에 들어맞지 않는 가치관들은 가차없이 내던진다. 이들의 정치관, 가정 생활, 우정, 커리어 결정 등은 모두가 통합된 일체이고, 동일한 윤리적 코드를 반영한다. 이러한 통합적인 핵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해체된다. - Joshua Halberstam, Everyday Ethics: Inpired Solutions to Real-Life Dilemmas (New York: Penguin, 1993).

"해체"가 영적 성장을 위하여 꼭 나쁜 것일지의 여부는 차치하고, 그렇다면 나 자신은 이러한 integrity를 지닌 자인가? 나는 그렇다고 믿고 산다. 그리고 내가 가까이에 두고 친분을 나누는 이들 또한 integrity를 가진 사람들이다 - 그들이 이를 인정하건 말건 간에. 그러나 integrity를 지니고 있다고 해서 한 개인이 완벽한 것은 당연히 아니다. 현상계의 인간 세계에 발딛고 살아가는 사람의 integrity가 때때로 흔들리는 것은 당연히 가능한 일이고 또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믿는다 - 그게 현상계가 해야할 일 아닌가. 단, 그 흔들림이 표면적인 것이어서 중심 또는 뿌리는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면 그의 integrity가 견고하다고 평가해줄 수 있을 것이다. 초고층 건물이 강풍에 이리 저리 흔들리는 것을 가지고 그 건물이 견고하지 않다고 평할 수 없듯이 - 무너지지 않고 꿋꿋이 서있는 이상 건물은 견고한 것이므로.

바람에 흔들려도 꿋꿋한 건물과 같이 인간도 자신의 자아가 표면적으로 흔들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중심을 굳게 지키고, 윗 글에서 말하고 있는 '가치관'을 져버리지 않을 수 있다면 그는 integrity를 지닌 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인간세계에서 때로 겪게 되는 흔들림에 당황하거나 번민하지 말고, 그 흔들림을 흡수하고 받아들여 잠잠하게 진정될 때까지 인내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과정을 통하여 자신의 참된 자아와 그에 의하여 통솔되고 있는 가치관들이 그대로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으면 되는 일이겠다.

살다보면 맞닥뜨리게 되는 '흔들림'의 종류는 수없이 많을 것이다. 금전적 이익을 위하여 지조나 절개 또는 신의를 헌신짝처럼 내버리라는 유혹, 애욕의 충족을 위하여 배우자를 배신하라는 유혹, 조직이나 집단의 이익 또는 권위에 흠집을 내지 않기 위하여 비윤리적 상황을 묵인하라는 유혹, 자신의 생존을 위하여 타인에게 피해가 돌아가는 것을 방관하라는 유혹, 순간의 육체적 쾌락을 위하여 윤리관을 내던지라는 유혹, 일신의 안락을 위하여 맡은 바 소임을 대충대충 해치우라는 유혹, 감정적 해소를 위하여 약자에게 가혹하게 대하라는 유혹.....

한 개인을 흔드는 유혹의 종류가 어떤 것이 되었든 간에, 그것에 무너지지 않고 의연히 버텨낼 수 있는 사람의 integrity는 아름답다. 내가 그를 신뢰하는 이유는 바로 그의 이러한 integrity 때문이다.

내가 신뢰하는 사람들은 어떤 이들인가? 내가 그들을 신뢰하는 이유는 그들의 외적인 매력도, 지성도, 재산도, 지위도, 명예도, 권력도 아니고, 그들이 자신의 핵심 가치관으로 자신의 삶의 제반 영역들을 통합성 있게 - 비록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 관리하기 때문이다(그들 스스로도 이를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많지만). 그들 각자만의 개성이라고 할 수 있는 자비심으로, 또는 책임감으로, 또는 일에 대한 정열로, 또는 이상에 대한 꿈으로, 또는 합리성의 존중으로, 또는 이웃사랑으로, 또는 틀에 박히지 않은 사고방식으로 자신의 삶의 대부분의 차원에서 일관성 있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를 신뢰한다는 것은, 그가 새로운 다른 상황에 처한다 하여도 즉, 심각한 흔들림을 유발시키는 유혹에 직면한다 하여도, 그의 태도와 행동이 내가 신뢰하는 그 자신으로부터 현저하게 일탈하지는 않을 것에 대한 잔잔한 믿음을 갖고 있다는 말이다.

내 주변에는 그렇게 신뢰할 수 있는 integrity의 보유자들이 많음을 또한 나에게 주어진 진귀한 복으로 여긴다. 그런 소중한 이들을 여전히 새롭게 만들고 있음도 큰 복으로 여긴다. 문제는 이렇게 훌륭한 내 주변 사람들이 아니라 나다. 나의 integrity는 얼마나 견고한가? 그들은 나를 얼마나 신뢰해주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