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인간의 악마성 (2004/5/8)
 

미군이 이라크 포로들을 고문하고 성적으로 학대한 사건이 세계적인 뉴스 거리다. 악마와도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남녀 미군들과 비참한 포로의 나신은 전세계 인류에게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는가 보다. 그 미군들은 즉각 전세계인의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미국 스탠포드 대학의 1971년 교도소 실험 - 내가 강의 때 교육사회학을 설명하며 빈번하게 예로 드는 - 의 집행자인 짐바르도 교수의 인터뷰 기사가 뉴스에 실렸다. 그는 작금의 미군의 만행이 조금도 놀랍지 않다고 했다. 교도소라는 지극히 권력의 불균형이 심한 공간에서 간수와 죄수 사이의 관계가 험악해지는 것은 [사회학적으로] 당연하다는 것이다. 나 또한 짐바르도 교수처럼 미군의 포로 학대가 전혀 놀랍지 않았다. 내가 미국의 '충격과 공포'라 명명된 전쟁 그 자체를 철저히 반대한 배경에는 이러한 만행이 당연하게 따라올 것에 대한 예상도 포함되어 있었다. 내가 무슨 혜안 같은 게 있다는 말이 아니라, 이건 전쟁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저 당연하게 따라붙는 일상적인 부록이라는 말이다. 세상에는 정말 가끔은 정의로운 전쟁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명 살상이라는 지독하게 비정상적인 행위를 당연한 듯이 자행해야만 하는 그 어떤 전쟁도 인간의 악마성이 분출되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지른 그 미군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싶지 않다. 잊어버릴만 하면 써먹곤 하는 '내 탓이오'를 또 들먹거린다고 욕해도 할 수 없다. 천인공노할 만행은 그 미군 개인이 저지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미군을 그 상황에서 그렇게 행동하게끔 만든 미국의 전쟁 시스템과 미국의 정부, 그리고 그 정부를 지지하는 미국인 전체가 비난받아 마땅하다. 더 나아가 그런 미국 주도하의 세계 질서에 편승해서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그런 비난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나는 부시와 럼즈펠드 대신 그 불쌍한 미국 여군이 세상의 돌을 맞았다고 느낀다.

'나'라는 것은 얼마나 허약한가? '나'는 거의 전부 사회가 만들어준 것이다. 이런 '나' 속에 진짜 나는 얼마나 들어있는가? 이삼십대의 점잖은 남자들이 예비군복을 입고 동원훈련 가는 버스를 타면 집단적으로 어떻게 돌변하는가는 익히 잘 알려진 바이다. 시골길에서 여중생들을 보고는 휘파람을 불어댄다. 여고생이 아니라 여중생들을 보고. 이에 대하여 명백히 성희롱 혐의 뿐 아니라 아동 학대 혐의를 지울 수 있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사마리아'에서는, 술집에서 딸뻘의 소녀들에게 수작을 거는 자신의 친구에게 주인공이 따귀를 갈긴다. 역겹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사회 속의 보통 사람들은 그러한 광경들을 보면 역겨움을 느낀다. 그런 보통 사람도 예비군복을 입으면 '야비군'의 일원이 되고, 전장에 나가면 피에 굶주린 악귀가 되는 것이다. 살인기계인 군인에게 역겨움은 일상적인 사회로부터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지평으로 뻗어가게 된다. 전쟁이라는 새로운 사회는 악마를 닮은 새로운 '나'를 창조해낸다, 아니 드러내준다.

나를 포함한 반전주의자들이 줄기차게 외치는 것이 바로 이 점이다: 정상적인 사회의 평범한 시민들이 전장에 나가면 인간성을 상실하고 악마성에 사로잡힌다는 점. 내가 아는 현대의 모든 전쟁들이 이런 인간의 허약함을 입증해주고 있다. (여전히, 한국전쟁 당시의 '국군'과 미군은 인간적이었다는 둥의 지극히 주관적인 경험에 근거한, 따라서 사실과는 모순되는 주장을 하는 이들도 있지만.)

20세기 말의 인류사에 새겨진 또 하나의 오점 보스니아 사태에 관한 미국 기자의 처절한 보고서가 우리 나라에도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이름의 책으로 출판되어 있다. 이 책에 등장한 인간 악마의 모습은 아우슈비츠에서, 난징에서 등장했던 그 악마의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저자 피터 마쓰(Peter Maass)가 전쟁에 대하여 토해내는 말이다:

인간의 내부에 도사리고 있으며 법과 인습이라는 장벽이 사라질 때까지는 감히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던 야수가 이제 자유의 몸이 된다. 장벽은 무너지고 신호가 보내진다 ....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제 막 인간성의 심연으로의 여정을 시작한 나로서는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일들을 아직 이해할 수가 없었다. 혐오감을 느끼고 포기하기에는 아직 그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당시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비세그라드의 무슬림들이 대학 학위를 갖고 있고, 시를 읽고, 알프스에서 스키 휴가를 즐긴다고 해서 자신들이 이제는 안전하며 야만행위는 과거의 일일 뿐이라고 오산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광야에서 부르는 소리가 나면 문명의 구속력은 지극히 허약한 것으로 드러나 교수들은 미치광이가 되고 한 세대가 쌓아올린 모든 것이 바로 그 당사자들에 의해 하루나 이틀만에 얼마든지 파괴될 수 있다는 안드리치의 경고를 이들은 잊고 있었던 것이다. 야수는 죽지 않고 있었다. 야수는 역사의 긴 풀숲 속에서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채 습격에 나설 적시를 노리며 잠복해 있다는 사실을 다시 증명해 보인 것이다 ....

악에는 두 개의 얼굴이 있다. 작가,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 유태계 독일 출신 정치철학자: 편집자 주)가 전직 나치 고위 간부로 예루살렘에서 반인륜 범죄에 대해 사형선고를 받은 한 남자의 생애와 재판 과정을 기술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Eichmann in Jerusalem)이라는 작품에 나오는 평범한 얼굴이 그 중 하나이다. 아렌트는 아돌프 아이히만이 똑똑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둔한 인물로 종이에 손을 벤 것 외에는 손에 피를 묻힌 적도 없는 관료였다고 적고 있다. 그는 '평범한 얼굴을 한 악'의 전형이었던 것이다. 악한 정책을 추구하려면 아이히만 같은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도자들은 완전히 다른 종자들이다. 그들은 '악의 야비한 얼굴'을 가진 미친 천재들이고 대량학살이라는 최종해결책을 들고 나온 히틀러나 스탈린 류의 인간들이다. 보스니아에서는 인종청소라는 악령을 되살리고 처음으로 총을 쏘고 처음으로 강간한 자들이 그런 부류였다. 뒤죽박죽이 된 악의 세계에서는 차마 입 밖에 낼 수 없는 것들을 내뱉고 차마 할 수 없는 짓을 자행하고 호령을 해 모든 사람들을 따르게 하는 이들이 '용감한' 사람들이었다.

- 피터 마쓰, 네 이웃을 사랑하라 [A Story of War], pp. 27, 33-34, 69

마쓰 기자가 전해주는 전장의 참상은 빈약한 나의 상상력의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는다. 몇 가지 예만 들어 본다:

1995년 2월 13일 UN 전범재판소는 처음으로 일부 전범들을 기소하여 세르비아인 21명에 대해 전쟁범죄 및 반인륜범죄 혐의로 국제 구속 영장을 발부했다. 이때 기소된 인물 중에는 두산 타디치도 포함돼 있었는데 재판소 기록에는 그가 무슬림 죄수에게 다른 죄수의 고환을 물어뜯도록 강요했다고 나와 있다.

보스니아는 인간성의 기본 전제에 대해 의문을 갖게 만드는데 특히 고문이 그렇다. 따지고 보면 도대체 고문에 한계 같은 것이 왜 있어야 하나? 이미 고문을 가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못할 고문이 없는 것이다. 고문에 착수해 죄수의 살에 첫 상처를 내거나 얼굴을 총대로 처음 가격하는 순간 그는 이미 도덕과는 등을 돌린 것이다. 고문자는 돌연 자신이 가학적 쾌락으로 가득찬 신세계에 들어섰음을 깨닫게 된다. 야수가 풀려나 그의 영혼 속에 자리잡게 된다. 사람의 목을 따거나 성기를 따거나 도덕적으로 무슨 큰 차이가 있다는 말인가? 이에 대답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나? 그에 대한 답 같은 것은 없다. 구둣발로 남의 머리를 짓이길 수 있는 배짱이 있다면 여자의 유방을 도려낼 배짱도 있는 것이다. 남을 죽이기는 하되 신체 부분을 잘라내는 짓은 안 했다고 해서 하나님이 더 잘 봐줄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냥 마음대로 해도 되고 두려워 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 ....

아무 집이나 쳐들어가 그 집 가장의 머리에 총을 대고 자신의 딸을 강간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강간하는 척이라도 하지 않으면 방아쇠를 당기겠다고 할 수 있다(보스니아에서 그런 이야기들을 들었다). 아버지는 거절하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러느니 차라리 죽겠다. 그러면 어깨를 으쓱하며 이렇게 대꾸하는 거다. 그래, 좋아, 늙은이. 너를 쏘지는 않겠다. 하지만 네 딸을 쏘지. 그러면 아버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아버지는 호소하고 애원하지만 총을 든 자는 딸의 머리에 총을 대고 안전핀을 푼 후 이렇게 소리친다. 자, 이제 해! 아니면 쏜다! 아버지는 울면서도 혼이 나간 사람의 동작으로 느릿느릿 바지 혁대를 푼다. 자기가 해야 할 짓을 믿을 수가 없는 채로. 총 든 자는 웃으며 말한다. 옳지, 늙은이. 자, 바지 벗고 딸 치마 올리고, 그리고 그 짓을 하라구!

총 든 자는 바로 법이고 자신이 신처럼 느껴진다 ....

[포로 수용소의] 검투사 쇼 시간이었다. 오말스카 수용소 경비들은 그 후 2시간 동안 죄수 수 명에게 맞붙어 싸우도록 명령했다. 그들은 지칠 줄 모르고 이를 즐겼다. 그리고 주먹을 거둬들이는 죄수를 보자 경비가 총대로 그를 내리쳤다. 그들은 가족끼리 싸우게 하고는 특히 즐거워 했다. 형제들에게 서로 때리라고 명령했다 .... 경비들은 심지어 자기 친구들까지 수용소에 불러들여 함께 재미를 봤다. 수용소 바깥의 민간인들이 놀러 와서 때리고 죽이고 강간하는 것으로 하룻밤을 지새는 것이다. 정말 어이없는 것은 이들 세르비아인들이 도착된 쾌락의 밤을 지내기 위해 지옥문에 들어서는 이유이다. 묵은 원수를 갚고 싶다는 것이다. 생존자들은 자기들이 아는 세르비아 사람들이 수용소에 갑자기 나타나면 다른 사람들 뒤에 숨고는 했다고 한다. 가난한 세르비아 사람이 5년 전 자기에게 일자리를 주지 않은 부유한 무슬림을 찾아 온 것일 수도 있었다. 한 농부가 10여 년 전 어느 날 자기한테 트랙터를 빌려주지 않은 사람을 찾아 나선 것일 수도 있다. 또 중년이 다 된 남자가 25년 전 고등학교 때 애인을 가로챈 무슬림 남자를 찾고 있을 수도 있었다. 과거 사소한 다툼에 대한 앙갚음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났다 ....

[고등학교 여학생들이 포로 수용소에 끌려왔다.] 소녀들은 옷을 벗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아니면 벗기겠다고 했다. 그 중 3명이 말을 안 듣거나 두려움으로 주춤거렸다. 그러자 칼로 그들의 옷을 찢어버렸다. 세르비아 군인들은 소녀들에게 원을 만들어 천천히 '퍼레이드'를 하라고 했다. 군인들은 원 밖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며 이들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여학생의 증언에 따르면 '퍼레이드'는 약 15분 정도 계속됐다. 그 후 군인 세 명이 소녀 한 명씩을 차지하고 교대로 한 명이 강간하는 동안 나머지 두 사람은 그녀를 누르고 있었다. 한 군인이 그 여학생에게 오더니 전에 그녀를 본 적이 있다며 놀렸다. 그녀는 그가 누군지 기억이 안 났지만 그는 여학생이 19살짜리 무슬림 남자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을 꺼내 보여주고는 그 남자친구가 보스니아 군에 있다며 욕을 했다. 사진을 갖고 있던 군인이 제일 먼전 그녀를 강간했다. 여학생은 저항하며 그의 머리를 잡아당겼다. 그는 그녀를 물어뜯고 얼굴을 때렸다. 입술이 터져 피가 흘렀다. 그가 총대로 그녀의 뺨을 세게 내리쳐 엄청나게 아팠다. 또 다른 군인은 마치 피부를 벗겨내겠다는 듯이 칼로 그녀의 젖가슴을 가로 그어 피가 흐르는 생채기를 남겼다. 그 후 기절할 때가지 그녀는 여덟 명의 군인들에게 더 강간을 당했다.

보고서는 포르노그라피가 돼 버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역겨움을 느끼지만 일부는 흥분을 맛보는 그런 종류의 포르노그라피가.

- 위의 책, pp. 90-95

지금 이라크에서는 어떤 포르노그라피가 벌어지고 있을까. 오늘 뉴스에는, 이라크인들을 고문한 그 여군을 다른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미군이 기소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기가 차다. 차라리 미군이 그 여군을 감싸고 보호했더라도 이렇게 나의 조소를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순박하고 몽매한 미국 시골의 어린 처녀를 거대한 시스템 차원에서 꼬드겨서 전장터 포로 수용소에 배치해놓고, 그러니까 한 무지한 처녀가 자신도 모르는 내면의 악마성을 발휘할만 한 충분한 조건을 조성해주고서 정작 그 악마성을 발휘했다고 기소를 했다니, 원... 기가 차다. 날이 갈수록 위대함을 상실해가는 미제국의 시스템에 애도를 표한다.

나는 지구를 정복하려는 외계의 알렉터 일당을 쳐부수기 위해 출동한 독수리 오형제를 도와주기 위해 군대를 일으키는 경우를 제외한 어떤 전쟁에도 반대한다. 전쟁으로 어떤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언제나 위정자의 허위 선전에 불과하며, 그 어떤 전쟁도 결국에는 인간성을 말살시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