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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책의 지혜'에 올린 에픽테토스의
가르침은
우리가 자신 앞에 벌어진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하는 자세가 중요함을
말해주며, 보다 차원 높은 '나'로서 그 일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그 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것을 권고하고 있다. 내 앞에 벌어진 일에
대한 나의 반응은 그 일과 관계된 나의 욕망이나 기대의 정도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본다. 이를 인간 관계에서 볼 때, 이 일 속에
나와 함께 포함이 된 상대방에 대하여 내가 지니고 있는 애정이나
기대가 크면 클수록 그 일에 대한 나의 반응과 태도가 민감해질 것이다.
상거래 때문에 처음 만난 어떤 사람이 나에게 베푼 친절 보다는, 내가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베푼 친절이 훨씬 더 기분 좋고, 그
상인의 나에 대한 불친절 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의 나에 대한 불친절이
훨씬 속상할 테니까. 어쩌다 스치고 지난 인연의 타인에 대해서는 무심코
별 반응 없이 넘길 수 있는 것도, 나와 소중한 인연을 맺고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심각하게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을 나 자신에게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하루는, 평소에 나의 삶에 대한 자세를 비판적으로 지적하던 나의
소중한 한 친구가 내 마음의 변화를 바라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들었던 순간에는 어찌 반응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서
그냥 말없이 넘겼지만, 시간이 좀 지나니 속이 많이 상하는 것이었다.
나의 변화를 바라는 이가 어쩌다 만난 타인이었다면, '아, 댁은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하고 의견의 다양성을 존중하며 넘어가거나, 아니면
그가 맘에 안 든다면 앞으로 그와 만나지 않으면 그만일 것이다. 하지만
소중한 친구의 의견이 맘에 안든다 하여 그를 안 보고 살 수도
없는 일이거니와, 그가 내 자존심에 상처를 주었다 하여 그를 원망만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서로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 없이 친구와 언제나
고귀한 우정을 나누고 사는 것이 나의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는 것 보다는
훨씬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나는 나의 속상해 함을 반성해보기로 했다.
나의
자존심이 상한 것은, 친구의 그 말 때문이 아니라, 그 말에 대한 나의
태도 때문이다. 그는 나를 아끼고 위하는 친구이고, 그가 나에게 한
그 말도 그런 친구이기에 한 말이다. 그것을 나는 긍정적인 태도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부정적인 태도로 받아들이기로 반응했던 것이다.
그것이 나의 자존심을 손상시키고 나에게 수모를 주는 말로 받아들이기로
내 태도를 정했던 것이다. 에픽테토스가 꾸짖었듯이, 조건반사적인 반응이었다.
반성을
통하여, 스스로 손상시킨 자존심 때문에 속상해 했던 어리석음에서 빠져나와
에픽테토스의 충고를 떠올렸다. '있는 그대로 보아라.' 있는 그대로.
나에게 일어난 일에 대한 나 - 에고 - 의 해석이라는 좁은 경계를 뛰어넘어서
그 일을 있는 그대로 보기로 했다. 나와 그는 서로를 위하고, 존중하며, 소중하게
여기는 좋은 친구인 채로 그대로 있고, 그날 그는 자신의 한 견해를
내게 전달해준 것이 전부이다. 우리는 앞으로도 서로와 계속 연락을
주고 받고, 서로가 필요하면 만나서 서로에게 도움을 주며 사이 좋게
살 것이다. 그것이 있는 그대로이다.
나의 에고에만 집중해있던
순간, 나는 나의 얄팍한 에고 - 가짜 나 - 가 상처받았다고 편협하게
해석하여 어리석게도 마음 아파했던 것이며, 그래서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은 축복 그 자체일 뿐인데도.
내게
주어진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해본다. 있는 그대로. 나는 나를 미워하거나
존중하지 않는 이를 내 주변에서 찾을 수가 없다. 나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모두 나를 아끼고 위해준다. 그들이 때로
나의 어떤 면에 대하여 나와는 조금 다른 견해를 갖고 있을 뿐, 그렇다고
하여 내가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덜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있는 그대로 보면, 나는 과분하게 복이 많은 인간이다. 주변으로부터
사랑을 너무 많이 받아 버릇만 나빠지는 것을 반성한다.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 자체가 고통인 사람들도 아주 많을 것이다. 나는 작년에
그러했다. 그때에는 자신에게 주어진 소중한 것들을 망각했으며, 따라서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했다. 힘들수록 더 있는 그대로를 보기 위해 애써야
하는 것을.
하늘에
태양은 밝게 빛나고, 그 빛을 머금은 내 방의 화초들은 녹색 그림자를
드리워주고 있으며, 나는 그 곁의 안락한 의자에 앉아 따뜻한 방에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나는 모든 것을 갖고 있고 부족한 것
없이 살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내가 할 일을 하며 산다. 이것이
있는 그대로이다. 있는 그대로가 크나큰 은총이다. 에고에 휘둘려 은총을
망각함이 나의 주님 앞에서 부끄러워 할 일이다.
물론, 내가
변할 것을 바란 그 친구를 위하여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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