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

타인의 실수 (2005/10/31)

신약 성경에 "어찌하여 너는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제 눈 속에 들어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는 구절이 있다. 십대 후반에 이 구절을 읽고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제길, 바로 내 얘기 아냐... 어린 시절의 나를 자아 성찰로 이끌어준 강력한 문구였다. 내가 자신에게는 얼마나 관대하며, 동시에 타인에게는 얼마나 엄격한가를 깨달았다. 그후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그런 불완전한 인간적 습성은 여전히 나한테 들러붙어 있다.

타인을 판단하지 않으려 지속적으로 노력해왔다. 최소한 남의 험담은 안 하고 산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타인들에게 신랄하다.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도 그러하다. 제 잘못은 까맣게 잊고 가족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꾸짖기도 한다. 집 밖의 일상 생활 속에서도 그러하다. 차를 운전할 때, 나보다 느리게 가는 이들은 죄다 민폐 끼치는 굼벵이들이고, 나보다 빨리 가는 이들은 전부 미친 폭주족들이다. 남의 글을 읽거나 텔레비전 프로를 볼 때, 내 지식에 못 미치는 이들은 죄다 바보고, 내 지식 수준으로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는 이들은 전부 쓸모없는 현학자들이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내가 여전히 제 눈 속의 대들보는 까맣게 잊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는 점.

가족 동반 등산을 마치고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 도중, 첫째가 내게 물었다: "아빠, 예수 안 믿으면 지옥 가?" 첫째 시시는 초등학생들의 하교 길을 가로막고 공격적 영업 활동을 벌이는 '교회 아줌마들'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경우가 잦다. 그들을 대충 피하지만, 어찌하여 이번엔 이러한 경고를 접하게 되었고, 지옥에 가는 것이 내심 걱정이 되어 애비에게 자문을 구한 것이었다.

철없고 순진한 판단력 없는 아이들에게 그런 몰지각한 말을 해대다니, 구제불능의 환자들 같으니라구. 나는 열이 뻗쳤다. 삶과 우주에 대한 꿈과 사랑의 마음을 갖고 있어도 성장하며 마주치게 되는 온갖 장애물들 극복하기가 쉬운 일이 아닌데, 자라나는 어린 아이에게 두려움의 씨앗을 뿌리려 들다니, 제 자식한테나 그럴 것이지 왜 애꿎은 내 새끼한테 감히 발광이야. 열리려는 뚜껑을 겨우 닫고 아이에게 대답을 해줬지만, 애비의 뚜껑이 간신히 닫혀 있음을 아이도 눈치 챈 듯 했다. 평소 하교길의 교회 아줌마들을 피하는 테크닉에 대하여 점잖게 자문해줄 때와는 달리 내 언어가 거칠어졌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그런 "멍청한 어른들"은 아무 것도 모르면서 "바보같이" 그러는 거니까 무시하라고 말해줬다, 결코 지옥 안 가니까 걱정말라며. 그런 사람들 아빠한테 "걸리면" 경찰에 신고해서 전부 잡아가게 하겠다며(협박에 의한 종교 자유권 침해 혐의로). 으... 열 받는다. 자기들이나 잘 하면 되지 왜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아이들을 건드려! 머리가 텅빈 신도들로 가득 찬 교회보다는 텅빈 교회가 훨씬 낫다시던, 존경하는 종교학자 분의 신랄한 말씀이 떠올랐다.

배가 고파 성질이 난폭해졌었는가 보다. 위장에 밥을 채워놓고 나니 뚜껑이 닫힌 것 같았다. 딸에게 보충 설명을 해줬다. 교회 다니는 좋은 사람들도 많은데, 때로는 그런 바보 같은 어른들도 있는 거라고.

결국 '예수천당 불신지옥' 수준의 기독교 신자들은 나에게는 '바보'인 셈이다. 이것을 부인한다면 나는 부정직한 것이다. 지난 주에는 교육철학 수업 시간에 서양 교육사상의 정수에 관해서 설명할 때에, 한국에 잘못 수입된 후에 질이 떨어져버린 우리나라 개신교의 편협성에 대하여 언급했다. 강의하는 나의 언설은 점잖고 학문적이었을지 모르나, 마음 속으로는 '머리가 텅빈,' 바보같은' 개신교 신자 무리를 떠올리고 있었다.

허나, 다시금 나의 내면에 울리는 강력한 그 한마디, "너나 잘하세요."

마태오 복음서의 제 눈의 들보를 깨달으라는 구절 조금 앞에는 다음과 같은 예수님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사람은 누구나 재판을 받아야 하며 자기 형제를 가리켜 바보라고 욕하는 사람은 중앙법정에 넘겨질 것이다. 또 자기 형제더러 미친놈이라고 하는 사람은 불붙는 지옥에 던져질 것이다."

나 자신이 "중앙법정에 넘겨질 것"과 "지옥에 던져질 것"이 진짜로 두렵다는 말을 하려 함이 아니다. 아무리 뚜껑이 열린다 하여도, 나 자신이나 잘하며, 타인의 과오를 욕하고 비웃지는 않는 것이 수행자의 반응이어야 하리라는 것을 나도 알고 있었다. 예수님 말씀이 백퍼센트 옳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그런다. 내 눈 속의 들보는 까맣게 잊고 일부 개신교 신자들의 과오에 분노했다. 그러한 신자들은 단지 실수하고 있는 것이다 - 무지하므로. 그런 실수가 어린 아이의 영혼에 끼칠 해악의 가능성에 대하여 내가 분노하기는 했지만, 그런 분노함이 타인의 실수에 대하여 결코 효과적인 반응일 수는 없다. 수행자로서 내가 가져야 할 자세는 그런 타인의 실수, 또는 과오가 유발시킬 부정적인 효과를 무효화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타인의 실수에 대해 분노하는 것은 실수의 치유에 전혀 도움이 안되기 때문이다. 또한 나도 늘 실수하며 사는 인간이고, 그들도 그러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나도 과거에는 가히 '예수교' 환자였던 시절이 있었고, 기독교 '복음화'가 미진한 사회에는 하느님의 징벌이 내릴 것으로 진심으로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했던 나 자신은 관대하게 용서해주었으면서도, 나와 똑같은 과오를 범하고 있는 타인들에 대해서는 이다지도 신랄한가. 삶 속에서 때로는 어처구니 없을 정도의 한심한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 사람인 것을.

사람은 누구나 다 실수를 저지르니까 타인의 실수에 대해서 눈감아 주는 게 좋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타인의 실수를 욕하고 비웃는 것이 나에게나 그들에게나 백해무익하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실수에 으르렁 성을 내며 덤벼들기만 한다면, 계속 헤매고만 있는 그들의 인도는 누가 해줄 것인며 - 물론 이런 건 개신교단 내의 양식있는 지도자들 몫이겠지만 -, 그들의 실수로 상처입은 이들의 치유는 또 누가 해줄 것인가? 예수님께서?

'타인'의 치유는커녕, 내 딸 하나 제대로 키우기 위해서도 분노의 수준으로는 될 일이 없다. 이건 일종의 반성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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