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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같은
형편없는 '수행자'도 평소에는 수행을 잘도 한다. 문제는 '경계'에 이르렀을
때다. 평소에는 명상도 하고, 경전을 읽고 외는 둥, 평상심을 유지하며
그런대로 성실하게 생활하다가도, 경계에 이르렀을 때는 경전의 말씀
같은 건 그만 까맣게 잊어버리고 만다.
나에게 '경계'란, '참된
나'가 드러나는 것을 방해하는 상황들이다. 두려움, 분노, 증오, 적개심,
시기, 질투, 물욕, 육욕, 애욕, 근심, 원망, 서운함, 집착, 피해의식,
망상, 우월의식, 컴플렉스, 배신감과 같은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에 의하여
지배받는 상황들이다. 이러한 경계와 맞닥뜨렸을 때, 평소의 착실한
수행은 순식간에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만다.
궁리 끝에, 다음과
같은 '공식,' 또는 행동 매뉴얼을 작성해보기로 한다.
(1) 경계에
이르렀음을 자각한다('아,
내 꼭지가 돌아가려는 상황이구나!').
(2)
그 순간 지혜의 가르침을 내 실존에 되살려 적용함이 어려움을 솔직하게
스스로에게 인정한다('제기랄,
아무 것도 생각 안나고 열만 받고 있군, 이러다간 뚜껑이 열리고 말지').
(3)
경계를 벗어나지 않기 위하여 강한 의지로써 억지로 인내하며 기다린다('무조건
지금 이 순간만 꾹 참고 넘기자').
(4)
의지와 인내로써 자신이 드러낼 수 있는 최상을 필사적으로 드러내며
시간의 치유의 힘에 자신을 내맡긴다('열받아서
입 주위 근육이 부들부들 떨리지만 허벅지를 찌르며 참고, 웃음을 띄어보자').
(5)
시간이 흘러 다시금 경전 앞에 고요히 앉아있을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경계'를 반성해본다. 그리고 평정심으로 되돌아온다('휴-
뚜껑 안 열리고 겨우 넘겼네').
능력은
한참 떨어지는 주제에도 수행이란 걸 해보겠다고 기를 쓰고 있는 나같은
덜 된 인간은 이런 매뉴얼이라도 부적처럼 수중에 품고 다니지 않고서는
수행 클래스 낙제를 면할 길이 없을 것 같다. 예전에는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를 품고 다닌 적이 있었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건 마치
유치원생이 의욕만 넘쳐서 대학교 교재를 품고 다닌 것이나 마찬가지였다는
생각이 든다. 제 주제를 잘 깨쳐서 수준에 맞는 교재를 택할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낀다.
얼마 전에도 나는 내가 경계에 이르렀음을
직감했다. 여직껏 그와 유사한 경우, 경계를 침범해버려 숱하게 실책을
범해왔음을 명료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와 같은 순간에는 요즈음 매일
달달 외고 있는 '말씀'들이 하나도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래서, 아,
지금은 안되는구나 하고 내 한계를 스스로 인정한 다음, 무조건 인내하였다.
시간이 흐를 때까지. 그 흐르는 시간은 내가 다다른 경계의 성격에 따라
단 몇 분이 될 수도 있고, 때로는 며칠이 걸릴 수도 있다. 그 시간의
길이는 사람의 내면을 마구 헝클어 놓으며 괴롭힌다. 그걸 버텨야만
한다. 그래서 의지가 필요하다. 이번엔 인내의 힘을 믿고 하루가 넘게
버텨봤다. 그리고 나서 나도 모르게 나를 말씀 앞에 정좌시켰다. 다시금
말씀의 힘이 내면으로 스며들어왔고, 그 경계의 실상이 객관적으로 내
마음의 눈에 비춰졌다. 그리고는 평정심을 되찾았다.
유사한
성격의 경계에 반복적으로 부딛치게 된다는 것은 그 경계가 지금 내가
극복해야할 삶의 과제로서 영적인 차원에서 주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 내 생각이 아니라 여러 성현들의 가르침을 볼 때. 부끄러운 말이지만
과거에 내가 어느 정도 극복했던 경계들이 있었는데, 그것들을 뛰어넘고
난 지금 과거를 돌이켜보면, '참 불쌍하고 한심하게도 살았구나'하는
느낌이 든다. 아마 지금 내가 체험하고 있는 경계를 극복한 이후에도
지금을 돌이켜보며 똑같은 느낌을 가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헌데,
주어진 삶의 과제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것은 죽을 때까지 되풀이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지금 죽을똥 살똥
아둥바둥거려서라도 그것을 뛰어넘고, 그래서 할 수 있는 한 조금씩이라도
더 나아지고 커지려 하다가 죽고 싶다. 그렇게 살 수 있음으로 하여,
영적인 차원에서 신께서 내게 전해주시는 - 실은 누구에게나 전해주시는
- 메시지들을 내게 주어진 개성과 재능에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표현하여
좀 더 넓은 세상에 퍼뜨릴 수 있기를 간구한다. 그러하기 위해서는 내가
깨닫는 경계들을 하나, 둘씩 뛰어넘어야만 한다. 우리 삶에서 '해야만
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가르침을 알고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해야만 할 것이 있다는 것 또한 안다.
(대체 몇 년째
똑같은 소리 지껄이고 있는 거지? 여기까지 와서 읽는 사람들도 이젠 지겹겠다.
하지만 그들도 나처럼 자주 까먹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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