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의 대화(1) (2005/11/1)
 

© Suk Hoon Han                                                                                                                                                                                        
 
 

큰 딸 시시가 어제 애비에게서 들은 교회의 전도 광증(狂症)에 대한 비평과 관련하여 보충 설명이 필요했는가 보다. 엄마가 외출하고 아빠와 함께 있는 저녁 시간에 질문 공세를 펼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아빠, '예수를 믿는다'는 게 무슨 말이야? '예수의 뭐를 믿는다'고 해야 말이 되지 않아? 그냥 예수를 뭘 믿어?"

예수 안 믿으면 지옥 간다는 교회 아줌마들의 발언은 초등학생 수준에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 분명하다. 지옥 가기 싫으면 예수를 믿어야 한다는 말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도대체 예수를 믿는다는 게 무슨 말인지.

"예수를 믿으라는 말은, 예수님이 가르쳐준 말을 믿으라는 말이야. 근데, 예수님이 가르쳐준 말은, 자기를 안 믿으면 지옥 간다는 게 아니고, 너희들끼리 사이좋게 사랑하며 살라는 말이었어. 바보 어른들은 예수를 안 믿으면 지옥 간다고 믿으면 되는 줄 알고 있는데, 그건 잘못 된 거야.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한테 서로 사랑하며 살면 천국 간다고 말 한 거를 믿으면 되는 거야."

시시는 알아듣는 눈치였다. 시시는 일단 제 애비가 무지하게 공부를 많이 한 똑똑한 사람인 줄로 알고 있기 때문에, 엥간해선 애비가 가르쳐주는 걸 신뢰한다. 아이의 질문은 이어졌다.

"그러면, 지옥은 있어?"

"없어."

"천국은 있어?"

"있어."

"아빤 그걸 어떻게 알아?"

"그, 그건 말이지....."

마치 유도 심문에 걸린 듯한 낭패감. 그러나 먹물 들은 지식인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합리화 기도를 포기하지 않는다. '타임'을 부르고 잠시 답변을 추스렸다. 내가 그런 걸 어찌 아냐구? 글세... 비교 종교학, 현대 기독교 신학, 유대교와 기독교 비의, 신과 나눈 이야기, 유란시아서, 티벳 사자의 서, 뉴에이지 메시지들, 요가 마스터들의 가르침... 그런 것들 통틀어서 추출한 천국과 지옥에 대한 나의 결론(또는 믿음)이 교회 아줌마들의 그것에 비해 우월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더 개방적이고, 포괄적이고, 세련되었으며, 정교하기 때문에? 그건 다양성이 단일성 보다 진리에 더 근접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빈약한 논리 아닌가? 현상에 대한 보다 온전한 이해를 위해서는 다수의 참고인들의 진술을 종합하는 편이 단 한 명의 진술에만 의존하는 것 보다 당연히 더 진실에 근접하는 것이겠지만, 신앙은 현상을 다루는 사회과학이 아니다.

결국, 천국과 지옥에 대한 나의 결론적 믿음이란 것은, 이러한 모든 참고 자료들을 일관되게 꿰뚫는 나의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의 뿌리가 되는 나의 신앙심인데, 그 신앙심이란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그러한 개인적인 나의 신앙심에 근거한 나의 내세관이 특정 종파의 폐쇄적인 내세관에 비하여 더 진리에 근접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주로 실천(praxis)의 차원에 - 그리고 그 실천과 신앙심 사이의 지속적인 상호보강 메커니즘에 - 터하고 있다. 즉, 나와 같은 내세관을 공유하고 있는 이들이 저쪽 내세관의 수용자들에 비할 때 훨씬 "좋은 열매"임을 믿기 때문이다. 전자가 분리 없는 공생과 인류애의 실현을 위해 묵묵히 간디처럼 제 갈 길을 가고 있음에 비해, 후자의 상당 부분이 분리를 외치며 팻 라벗슨[Pat Robertson, 부시를 지지하는 미국의 대표적인 근본주의 기독교 리더]처럼 선민의식, 헤게모니, 응징 등을 노골적으로 내세우고 있음을 목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헌데 나의 이런 결론을 아이에게 전한다는 것은 고역이다. 세상에는 하느님이 전해준 말씀을 기록해놓은 '경전'이라는 것들이 많이 있는데, 그것들을 읽어보고 알게 되었노라고 대강 답해줬다. 아빠의 대답을 들은 아이는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하느님이 사람한테 말을 해줘?!"

"응, 그럴 때도 가끔 있어."

"그럼, 아빠한테도 하느님이 말해줬어?"

"응."

적지 않이 놀란 시시는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더 어려운 논의를 던지는 것이었다.

"그럼, 아빠가 아는 그런 것들을 교회 아줌마들한테 가르쳐주면 되잖아."

"으... 얘야,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란다..."

나는 어른들의 마음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에 관해 이런 저런 예를 들며 겨우 답해줬다. 결론은, 앞으로도 교회 아줌마들 만나면 핑계를 대고 빠져나오라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아이는 언젠가 교회 아줌마에게 20분인가 붙들려 있느라고 왕짜증 났었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참, 이 대책없는 어른들도 골치 거리다. 아예 내가 하교길에 따라 나서야 되나? 일단은 대충 타협하고 살기로 딸과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그날의 아이의 질문 공세는 여기서 멈춘 것이 아니었다. 싼타클로스의 실재 여부에 대한 질문에서 비롯된 신비세계에 대한 아이의 궁금증을 만족시켜주기 위하여, 나는 3차원과 4차원 세계의 개념에서부터 시작해서 해리포터, 피터팬, 반지의 제왕 등등의 예를 동원하여 겨우 아이의 호기심에 응해줄 수 있었다. 아직 언니와 아빠 사이의 이런 대화에 끼어들기에는 자신의 지적 수준이 조금 떨어진다는 것을 직감한 영악한 둘째 나나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혼자 열심히 책 읽는 척 시치미 뚝 뗀 채 계속 경청하고 있었다. 딸과의 긴 대화는 나름대로의 보람이 있었다. 시시는 어른이 되어서 책 쓰는 사람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리고 화가도 되고, 작곡가도 되고, 또 제일 존경하는 마더 테레사처럼 다른 사람들도 도와주는 사람이 되겠다고 하였다. 너는 그것 전부 다 될 수 있다고 나는 답해줬다. 아이는 4차원 세계에 대한 꿈을 꾸겠다며 잠자리에 들었다.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감동적인 이탈리아 영화에서는 유태인 아빠가 나찌 수용소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함께 수감된 아들에게 오직 밝고 아름다운 희망만을 심어주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 하는 모습이 나온다. 그 영화를 보고 가슴 속의 눈물을 흘린 부모들은, 그것이 바로 부모가 자식의 인생을 위하여 해줘야 할 일이라는 것에 공감하였을 것이다. 즉, 세상과 삶에 대한 두려움 보다는, 꿈과 사랑과 희망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것들이 아이가 삶에 대하여 당당하게 나아갈 수 있는 진짜 힘을 길러준다는 것을. '교회 아줌마들'은 두려움을 무기로 철없는 아이들에게 교화(indoctrination) 영업을 벌이고 있는 자신 내면의 두려움에 대해서 성찰해봐야 할 텐데, 그걸 이끌어주는 교회 지도자들의 수가 너무 적은 것 같다. 아무래도 '영업적' 필요성이 너무 급박한 관건이라 그런 것인지...

아무튼, 하루 이틀에 될 일은 아닐 성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