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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다원론자'라는
꼬리표는 왠지 부담스럽다. 그것의 본래 의미가 무엇이든 간에, 마치
'이 종교도 저 종교도 다 좋다'는 안일한 정신 상태의 소유자인양 오해받는
것이 싫고, '~주의자(~ist)'라는 도식화에 포함되는 것을 매우
꺼려하는 성미라서 또한 싫다. 그러나 나는 기독교나 불교나 힌두교와
같은 모든 존경스러운 종교들이 결국은 하나의 정점, 즉 우주의 창조자이고
주관자인 신으로 향하는 여러 다른 갈래의 길임을 인정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을 뿐이다. 그저 그것이 나의 가장 솔직한 결론일 뿐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나의 신의 이름을 모른 채, 그저 '나의 주님'이라고만
그 분을 부르며 나의 삶 속에서 그 분을 구하며 살고 있을 뿐이다.
오년
전이었던가, 닐 도날드 월쉬가 쓴 '신과
나눈 이야기'를
탐독하며, 내가 직접 대면했던 그 '신'이 바로 이 '신'임을 확신하였고,
그 책의 말씀들을 나의 신앙 생활의 지표로 삼았다. 그 책은 나에겐
'성경'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책을 숭배한 일도 없고, 그 책에서 신께서
말씀해주신 대로, 그러한 '성경'들 또한 단지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도구에 불과할 뿐임을 절감하며, 그저 그 말씀을 생활 속에서 구현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던 중, 그 방대한 책 속의 보석과도 같은 말씀들을
엑기스만 모아서 늘 곁에 두고 다시 읽고 싶어, 주요 내용들만 타이핑해서
108 페이지에 이르는 문서 파일을 만들었고, 이를 포켓본으로 출력한
후 철해서 늘 들고 다닐 수 있는 나만의 작은 문고판을 만들게
되었다. 이제는 그 문고판 겉표지가 너덜너덜해졌다.
얼마 전,
그 개인적인 문고판을 본 친구가 그것이 무엇이냐 묻기에, 이러이러한
책을 이런저런 연유로 이렇게 만들어서 들고 다니며 읽는다고 설명해주었다.
그 책에 대한 설명을 들은 그 친구는 자신에게도 그 파일을 출력해서
달라고 청하는 것이었다. 헌데 그 청을 받은 나는 내심 좀 난처했다.
이유는, 그 친구가 매주 일요일마다 열심히 교회를 나가는 진실한 크리스찬이기
때문이었다. 교회만 꼬박꼬박 나가는 것이 아니라, 주위의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서 도움도 많이 주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삶 속에서 실천하고자
늘 애쓰는 '진실한' 크리스찬이다. 자신에게 악행을 저지른 이들도 용서하고
품을 줄 아는 큰 마음을 가진 존경스러운 크리스찬이다. 나는 그런 귀한
친구가 '종교다원론'을 수용하는 나 같은 땡중에게 물드는 것이 조금
염려가 되었던 것이다. 그냥 지금 그대로의 교회의 가르침에 만족하며
성실하게 신앙의 길을 가는 친구를 '신과 나눈 이야기'와 같은 책을
읽힘으로써 '헷갈리게' 만드는 것이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우려를 간접적으로 표명하는 나에게 그 친구는, 괜찮다고 했다.
우리는 생각이 같은데 그런 게 무슨 상관이냐고 했다. 기독교는 나를
'이단'으로 볼 것이라고까지 말했지만, 과연 이단이라는 것이 무슨 뜻이냐고
내게 되묻는 것이었다. 그런 시시비비 가리기와 패거리 나누기가 진실한
신앙 생활과 무슨 상관이 있냐는 그런 태도가 강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결국 그 친구에게 '신과 나눈 이야기' 1권을 선물로 주었고, 그에게
줄 나의 '문고판'도 출력하였다.
'문고판'을 출력하며 무심코
한 장, 두 장 넘기던 중, 다음의 구절이 딱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하리니." 이것이 비극을 직면한 사람들에게
읊어야 할 시이다. 나는 너희의 가장 어두운 시기에 너희의 빛이 되고,
너희의 가장 암울한 시기에 너희의 위안이 되며, 너희의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 너희의 힘이 될 것이다. 그러니 믿음을 가져라! 나는
너희의 목자이니, 너희는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너희를 풀밭에
누일 것이며, 너희를 조용한 물가로 데려갈 것이다. 나는 너희의 영혼을
되찾아줄 것이며, 내 이름을 걸고 너희를 올바른 길로 이끌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죽음의 그림자’ 계곡을 지나간다 하더라도, 너희는
어떤 악도 두렵지 않을 것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리니, 내 지팡이와
내 막대가 너희를 편안케 할 것이다. 나는 네 적들의 면전에서 네 앞에
식탁을 차리고 있다. 나는 네 머리에 향유를 발라줄 것이고, 네 컵은
넘쳐흐를 것이다. 단언하노니, 선과 자비가 평생 너희를 따를 것이고,
너희는 내 집과 내 가슴속에서 영원히 살 것이다. [II-253]
요즘
열심히 성실하게 살며 나의 수행과 공부에만 집중하느라 감정도 고요해진
상태인데, 이 글을 읽고는 그만 울음이 터져나오는 것이었다. 이상하게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으나, 내면의 감정이 복받쳐오르는 듯한 그런 울음이
터져나왔다. 그래서 눈물도 없이 잠시 그냥 흐느꼈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나를 이토록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어떤 문화권의
어떤 명칭을 갖고 계시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가 그분을
알고, 그분이 나와 함께 하시는 그것만이 진실인데. 이름 같은 게 무슨
소용인가? 셰익스피어가 말했듯이, "What's in a name?"
한
진실한 크리스찬인 길벗님께서, 나의 '종교다원주의적'인 성향을 비판하며,
예수님의 품으로 되돌아오라고 일갈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의 비판에
감사했고, 그런 나의 감사를 그 길벗님도 감사의 말로 되돌려주었다.
어떻게 보자면, 나는 종교 그 자체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나에게
종교는 그저 '길'일 뿐이다. 내가 생명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는 대상은
오직 '신'일 뿐. 그리고 그분의 존함이 예수님인지 크리슈나인지 다르마인지에
관해서는 나는 전혀 모르겠다고 대답할 뿐. 모르는 걸 어쩌겠는가. 그걸
꼭 알아야만 했다면 벌써 내게 가르쳐주셨을 테지...
때로는
벗과 지인이 내게 물어온다.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하였는데, 그럼 그 말씀은 거짓말이냐고. 나의 대답은: '나 따위가
대체 그런 걸 무슨 수로 알겠나?' 그저 예수님을 받아들이면 되는 것
아닌가?
이 작은 머리로 알 수 없는 것들을 가지고 평생 이러쿵
저러쿵 갑론을박하며 사는 것에 나는 조금도 흥미가 없다. 그냥 그 말씀대로
사는 것만으로도 바쁘고 힘겹다.
나와 생각이 같기 때문에 '이단적인'
책의 내용을 출력해서 달라고 청한 그 친구가 고맙다. 진실로, What's
in a 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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