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gle
Earth (2005/9/11)
©
Suk Hoon Han, My Village
소문을
듣고 호기심이 땡겨 구글 어쓰(Google Earth)를 찾아가 봤다. 프로그램을
다운로드 받고, 실행시키고는, 곧바로 지구 탐색에 나섰다. 할
일이 산더미인데 그만 두 시간을 그 안에서 돌아다니다 나왔다. 도끼자루
다 썩어버렸다.
참으로 놀라운 기술의 진보다. 비록 내가 살고
있는 경기도 남부는 상세히 나오지 않았지만, 서울 시내를 찾아들어가
보니 광화문 거리의 택시들까지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상세한
천상의 시각을 체험할 수가 있었다. 주변의 내 벗들이 일하고 생활하고
있을 동네들과 빌딩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수십 년 전 다니던 고등학교도,
그 학교로 올라가는 언덕길도 찾아낼 수 있었고, 어릴 적 살던 동네도
찾아갈 수 있었다.
시야를 확 넓혀서 지구를 반 바퀴 돌아 북미
대륙엘 가봤다. 전에 다니던 대학 캠퍼스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고,
학위 논문 쓰느라 1년 동안 틀어박혀 있었던 연구실 건물도, 도서관도,
책방도 다 찾아가 봤다. 아아, 그러며 다니다 보니, 우리 첫 애가 아장아장
걸음마 겨우 할 때 손잡고 데리고 다니던 연못가도 그대로 있고, 그
애를 유모차에 태우고 마실 다니던 공원의 오솔길도 빤히 다 보였다.
빨리 박사 학위 받고 귀국하여 교수 될 생각 밖엔 없었던 그때의 황폐한
내 영혼이 그 오솔길 위에 그대로 보이는 듯 했다. 갓난 아기를
데리고 아내와 함께 살던 아파트 건물에 가보니, 늘 시장보러 다녀와서는
차를 세워 두던 주차장으로부터 양손에 기저귀와 식료품 꾸러미 잔뜩
들고 낑낑대며 걸어서 아파트 현관까지 가던 그 길이 거짓말같이 그대로
나타난다. 잠시 추억에 잠겨보았다. 어쩌면 내가 죽어서 이승을 뜰 때, 이번
생을 총정리하는 순간에, 이런 식으로 내 과거를 다 한 번 훑어보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작은 공간 속에서 아웅다웅
살던 그 과거들에 다 고개가 끄덕여지고, 그 모든 것들이 용서가 되고,
사랑스럽기까지 했다 - 아직까지도 용서하지 못한 나의 과거의 기억이
남아 있지는 않은 것 같지만...
과거에 계속 머물러 있을 수
없어 다시금 대기권으로 휙 수퍼맨처럼 날아올라, 그 다음에는 한 번
가보고 싶었던 지구의 이곳 저곳을 구경다녀 봤다. 대서양을 건너 아프리카
밀림으로, 이집트로, 지중해를 넘어 안달루시아로, 파리로... 결국 노르웨이
피요르드 해안의 경승지에 죽 늘어선 관광버스들 틈에 끼여 북대서양을
구경하다 도끼 자루가 완전히 썩어나갈까 겁이 나서 프로그램을 닫고
일상으로 복귀해버렸다. 아이슬란드까지 가보려 했었는데.
사람이
주거지를 이리저리 옮기면서 살다보면, 과거라는 시간 속의 한 조각이
특정 공간과 동일시 된다. 시간이 공간인 것 같고, 공간이 곧 시간인
것만 같다. 이것이 과연 헷갈림인지, 아니면 물리 세계의
진실인지조차 구분이 잘 안 된다. 자신이 태어난 고향에서만 쭉
살아간다는 건 어떤 느낌일지... 자신의 마을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안 나가고 평생을 살았다는 칸트라는 인물의 이론이 그다지도 정합성이
높은 것은, 어쩌면 떠돌아다니는 영혼의 센티멘탈리즘의 세례를 못 받았기에
획득할 수 있었던 보상은 아니었을런지...
칸트같은 위대한 철인에
비하면, 나는 구글 어쓰의 대기권에서 부유하며 떠돌아 다니는 게 그저
재미있는 '날나리' 같이 가벼운 영혼인지 모르겠다. 가상 세계
속의 그러한 공간 여행이 실로 내게 안겨다 준 경험은 시간 여행이었다.
과거로 가는 타임 머쉰은 이렇게 만드는 것이로구나. 며칠 전, 오랜만에
만난 귀한 길벗님께서 이야기 도중에 과거에 잠시 다녀오시더니, 자식과
관련된 어려웠던 옛 일이 되살아나 눈물을 흘렸다. 나는 길벗님의 눈물이,
과거의 어려움 속의 자신의 모습을 이제는 용서하고, 끌어안아 주고,
그래서 자유로이 놓아줄 준비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표시라고
짐작했다. 나도 구글 어쓰의 여행으로 나 자신의 과거의 어려움을 좀
더 풀어놓아줄 수 있었듯이.
삶이라는 것을 완전히 이해하려
하기 보다는, 삶의 신비로움을 수용하는 편이 이 삶 속에 놓여진 '나'의
숙제를 온전히 감당하는 길이 아닐까 싶다. 물론, 아님 말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