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 심판하기 (2005/12/10)
 

© Suk Hoon Han                                                                                                                                                                                       
 
 

1. 황우석 논란

나는 한 인간에 대한 제3자의 심판 가능성을 믿지 않는다. 내가 '신앙생활' 초기에 써놓은 '판단'에 관한 글들에 그 이유가 적혀있다. 나는 인간의 '판단' 기능이 언제나 불완전하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러한 나의 이성적인 믿음은 타인에 대한 심판을 경고한 예수의 말씀으로부터 '신과 나눈 이야기'의 조언에 이르기까지, 여러 영적 교설들에 의해 지지받고 있다. 이러한 교설들은 최근의 박찬욱 감독 영화에서, '너나 잘하세요'라는 금언으로 잘 표현된 바 있다. 그러나 나는 지난 주에 타인을 심판했다. 그리고 이를 공공연히 표명했다, 다음과 같이:

PD수첩이 엮은 황우석 교수팀의 난자 세포 확보 과정에 대한 추궁까지는 '진실 추구'라는 명분이 미약하나마 있을 수 있다고 내키진 않아도 인정했습니다만, 황교수팀의 연구 내용 자체를 사기로 몰아가는 작금의 행태는 저는 도저히 수긍할 수가 없습니다. 언제부터 매스컴이 과학 연구의 심사위원 권한을 행사하게 되었나요? 과학자들의 공동체에서 인정하는 성과를 비전문인으로 이루어진 언론 집단이 인정 못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그것도, 줄기세포 연구의 주도권을 둘러싼 치열한 국제 경쟁이 암약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하필이면 자국의 언론이 헌신적인 과학자들의 발목을 잡고 늘어진다는 것은 개탄할 일입니다. (저는 개인 차원의 민족주의를 좋아하지 않지만, 국가 차원에서 국익을 위하여 타국과 경쟁구도를 이루고 있음을 부정할만큼 비현실적이지는 않습니다.) 다수 군중의 편에 서는 것을 항상 경계하며, 타자에 대한 비판을 가능한 한 삼가는 것을 신조로 삼는 저이지만, 현재의 MBC 방송국의 태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봅니다. 국익 차원에서 뿐만이 아닙니다. 아직 드러난 것은 없지만, 그 배후에는 힘 있는 세력의 음모가 작용하고 있음을 합리적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유전자 복제 인간이 출현하면 마치 지구가 멸망이라도 할 듯이 법석을 하는 '율법학자'들과 이익과 충동만 좇는 소인배들로 인하여 상처입는 군자의 모습을 보고만 있자니 심히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영웅은 늘 이런 시련을 극복하는 과정을 겪어야 하는 것이 섭리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서 고초를 겪는 황교수 보다는, 이 생에서 反영웅의 역할을 떠맡게 된 불행한 PD수첩 제작진을 애도합니다. 불멸의 이순신은 추모하되, 원균을 애도하듯이.

이러한 '심판'을 내린지 꼭 하루만에 PD수첩 제작진의 불법적인 취재 행각이 YTN 뉴스에서 폭로되었고, 곧 '황우석 사태'는 친황우석파의 승리 쪽으로 가닥을 잡은 듯 했다. 다수의 승리다. 그 다수 중에는 물론 맹목적인 지지자들, 보수 대 진보의 이념 구도를 끼워넣는 말 많은 이들, 그리고 그냥 누군가를 욕하고 짓밟고 싶어 MBC를 타겟으로 삼은 듯한 이들도 많이 끼어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이 논란은 한 주일이 경과하도록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다. 우리 사회 속의 갈등이 정신없이 분출된 난장 한 판이었던 것 같다. 나는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난장판에 끼어 들어가서 '아이러브 황우석 카페'에 멤버 가입까지 하고 특정인들의 비판에 가담한 나의 행동은 현명한 것이었나? 양측 진영의 어느 한 쪽이 옳고 그른가의 문제를 떠나서, 때로는 현실적으로 타인에 대한 심판이 불가피하다는 나의 결정이 정당한지 짚고 넘어가야만 했다. 왜냐하면 나는 타인이 '죄인'인지 아닌지 도저히 알 수가 없고, 따라서 그 누구에게도 돌을 던질 수도 없다는 것을 영성의 차원에서 알고 또, 믿기 때문이다. 위의 '심판' 구절 아래에 다음과 같이 나의 딜레마를 표현해 놓았었다:

요즘 들어 '심판'이란 걸 자꾸 하게 됩니다. 삶에서 심판은 불가피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심판한 것을 반성하며 갑니다; 또는, 심판한 것을 반성하지만, 그럼에도 심판을 하기로 선택합니다.

'황우석 죽이기'를 감행한 PD수첩 제작진의 행동 배후에 있음직한 음모론이라든가, 그 적합성이 지지받기 어려운 이념적 공방 등등까지 예의주시하며, 과연 '진실'이란 무엇인지, 인간이 진실을 손에 넣을 수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우리 눈 앞의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참으로,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이 가히 불가능에 가까운 듯 하다. MBC의 PD들은 '진실'을 끝까지 규명하겠다고 했다. 언론이 '진실'을 찾아낼 수가 있는가? 언론이 '사실'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은 알겠는데, 사실과 진실은 같은 것인가? 현실 속에서 사실을 찾기만도 지극히 어려운 일인데, 그 사실들의 총체인 '진실'을 규명한다는 것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2. 베텔하임이라는 학자의 케이스

요즘 브루노 베텔하임의 '옛이야기의 매력'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베텔하임은 미국의 나의 모교의 교수였으며 - 내가 입학하기 전에 은퇴한 -, 프로이드 정신분석학에 근거하여 자폐 아동에 관한 연구 및 치유에 평생을 바친 스타 학자이다. 지금 읽고 있는 그의 책은 한 마디로 매혹적이다. 구전 설화가 아동의 무의식과 전의식 차원의 성장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설득력 있고도 흥미롭게 보여주며, 아동의 발달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참된 자신의 모색에 있음을 강력하게 예증해주는 명저이다. 이 멋진 책만큼이나 베텔하임의 커리어는 화려했으며, 생존시의 그는 미국을 대표할 만한 현자이자 권위 있는 학자로서 일대를 풍미하였다. 황우석 교수를 둘러싼 논란을 얘기하다 느닷없이 낯선 외국 학자를 끌어들인 데에는 이유가 있다. 베텔하임이 사후에 거의 사회적으로 매장 당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나는 베텔하임의 책에서 주장된 논지를 나 자신의 책의 주장을 견고히 만드는 데 써먹을 요량으로 그에 대한 자료를 모아보았다. 인터넷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가장 손쉽게 입수할 수 있었던 자료는, 그의 사후에 그를 사회적으로 거의 매장시킨 한 전기(傳記)에 관한 내용들이었다. 이 전기는, 과거에 베텔하임에 대하여 깊은 반감과 의혹을 품은 한 사람이 그의 경력과 행적을 낱낱이 조사한 끝에, 사회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던 이 학자가 실은 형편없는 위선자였음을 주장한 폭로성 책이었다. 이 전기의 내용을 읽으면 베텔하임은 경력 위조자, 병적인 거짓말쟁이, 폭력적이고 독재적인 교수, 인간관계에만 능하고 실력은 없는 엉터리 학자, 그리고 궁극적인 인생의 실패자임에 틀림이 없어 보인다. 이 전기로 말미암아, 그렇지 않아도 자살로 생을 마감한 한 '대학자'의 명성은 땅에 떨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베텔하임이 미국 사회에서 형편없는 야바위꾼으로 폄훼된 이후에도, 인간이자 학자이자 심리 치료자로서의 베텔하임을 변론하는 시도들은 꾸준히 이어져 왔고, 충성스러운 그의 옹호자들은 베텔하임을 비난한 그 전기의 '사실'에 근거하였다는 주장들을 비판해왔다. 급기야 올해 5월에는 일종의 '베사모(베텔하임을 사랑하는 이들의 모임)'의 회합이 시카고에서 이루어졌고, 이 모임에 참석한 약 90여 명의 지지자들은 자신들이 존경하는 베텔하임의 업적을 기리고 칭송하였다.

베텔하임 관련 자료를 미국 웹에서 오후 내내 찾아 읽은 후의 나의 결론은, 나는 베텔하임에 대한 심판을 내릴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나로서는 그를 심판할 필요가 있었다. 그 이유는, 내가 탐독한 그의 책이, 억압되지 않은 풍부한 상상의 세계를 거친 아이들이 얼마나 튼튼하게 성장하고 결국 참된 의미에서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는 성인이 되는가를 역설하였으며, 그의 이러한 주장은 단순히 학술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영성'의 영역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을 펼친 저자 자신의 삶 또한 모범적인 자아실현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되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베텔하임은 자살로 삶을 마감하였다. 그리고 사후에 엄청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이 학자가 자신의 책에서 그토록 유려하게 표현한 참된 자아의 발견이란 것이 과연 믿을만 한 것일까?

결론은 '나는 그를 심판할 수 없다'였다. 나는 그를 비방하는 전기의 논거가 아무리 명확하여도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기가 보기로 작정한 것을 주로 보기 때문이다. MBC의 PD들도 자신이 보기로 작정한 것의 증거들만 주로 눈에 보였을 것이다. 동시에 나는, 베텔하임의 옹호자들의 주장과 해명이 아무리 설득력 있어도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신의 이권 -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심리적 등등 - 과 연관되어 있는 사안에 대해서 얘기할 때에는 '있는 그대로' 말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MBC의 PD들도 방송국과 자신의 커리어 등등과 관련된 이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진대, 그 이권을 보호하는 자료들을 주로 찾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물론 이는 황우석 교수의 지지자들에게도 공히 적용될 것이다).


3. 한 쪽 편들기라는 선택

비록 내가 베텔하임을 둘러싼 찬반양론 중 어느 한 쪽의 편을 들 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베텔하임에 대한 나만의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가 평생을 연구와 치료에 바친 진실한 한 인간이었다고 결론지었다 - 그가 한 것이 거의 확실한 것으로 보이는 여러 거짓말들과 그의 인격적인 결함에 대한 신빙성 있는 증거에도 불구하고. 왜? 그가 평생 한 가지 일에 몸을 바친 것은 확실하다. 즉, 고통받고 있는 아이들을 도와주고, 아이들의 온전한 성장을 도와주는 그 한 가지 일에 말이다 - 자폐증에 대한 그의 이론적 오류가 사회에 끼친 것으로 믿어지는 피해를 비판자들은 지적하지만, 오류로 밝혀진 어떤 이론적 시도도 당대에는 나름의 역할을 수행했을 것이다. 그 일을 통해서 그가 얼마나 많은 양심의 타협을 했어야 했는지 나는 알 수가 없지만, 그는 그 일만을 평생 했다. 평생을 아동의 심리적 치유에 바친 이가 말년에 자신의 자식 중 하나와 소원한 관계를 만들었음을 비판자들은 지적하나, 이러한 비판은 어리석다. 어디 자식이 맘대로 되는 것인가? 그런 것은 인간적 통제력 밖의 사항이다. 또, 자신의 저술을 통해서 참된 자아실현을 역설한 사람이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는 사실이 그의 저술 속의 지혜를 헛되게 만드는가? 그가 왜 자살 했는지는 그 자신 밖에 모른다. 감히 제3자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자살하면 실패한 인생이라는 것은 과연 타당한 믿음인가? '사랑의 신'을 입에 바르고 사는 나는, 나의 노년에 심신이 쇠락하여 주변에 고통을 안기게 되면 자살을 택하고 싶은데.

베텔하임에게 심한 악감을 품은 것이 확실한 그 전기 작가는 어쩔 수 없이 베텔하임이라는 인간의 삶의 궤적 중에서 최악의 것들에만 시선이 돌려졌을 것이다. 만약에 누군가 나에게 원한을 품고, 나의 삶의 기록에서 최악의 것들만 긁어모아 나의 전기를 쓴다면, 나를 지상의 그 누구보다도 사악하고 음험하며 추악한 인물로 충분히 묘사할 수가 있을 것이다. 아니, 나 자신도 나를 그렇게 묘사할 수 있을만큼의 충분한 기억 자료를 갖고 있다. 그러나 내가 과연 그다지도 사악하고 추악한 인간인가? 그렇지는 않다고 믿는다. 나는 대체로 남들에게 피해 안주고 대체로 성실하게 가족 부양하며 내 할 일 하며 사는 평범하고 선량한 한 인간일 뿐이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MBC의 PD들도 '황우석 죽이기'를 어젠다로 삼았다면, 충분히 그를 죽이고도 남을 만큼의 부정적인 증거들을 수집할 수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사실이고, 진실일 것인가?

베텔하임을, 황우석 교수를, 나 자신을(대가들 옆에 꼽사리..)  비판적 시각으로만 본 것이 진실일까, 아니면 그 반대로 애정어린 시각으로만 본 것이 진실일까? 답은, 그 둘 다가 모두 온전한 진실은 아니라는 것이리라. 그 둘 다를 통합하여야만 진실에 접근할 것이다. 그 양 극단의 엄정한 중간, 즉 중립 위치라는 것은 이론적으로만 존재할 뿐, 사람이 행위로써 이룰 수 있는 것이 못된다. 나는 완전히 객관적인 관찰자는 신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 실체적으로든, 순수한 개념 차원에서든 간에.

완전히 객관적일 수가 없는 나 자신의 황우석 교수에 대한 판단 역시 지극히 제한적이지만, 비판적 시각과 애정어린 시각 양자를 통합하여야만 그 제한성에 발목 잡히지 않을 것임을 안다. 위의 서두에 쓴 내 '심판' 글에서도 보이듯이 나는 그에 대한 애정어린 시각이 훨씬 강한 쪽이다. 허나, 그간의 관찰을 통하여 그에 대한 비판적인 자료들도 다 접하였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나는 베텔하임에게 적용한 나의 논지를 황우석 교수에게도 적용하고자 한다. 황우석 교수는 평생 한 가지 일에 몸을 바친 것이 확실하다. 즉, 고통받고 있는 동물과(수의사로서) 인간들을(과학자로서) 도와주는 그 한 가지 일에 헌신하였다. 그 한 가지 일에 대한 헌신도에 있어서 그가 타의 추종을 불허했음은 부인할 수가 없는 사실이다. 나는 삶 전체의 그 굵은 줄기를 토대로 그를 평가하고자 한다. 그런 몰두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그가 내적인 integrity(정직성, 정합성)가 예외적으로 강한 인간이라고 믿는다. 강한 신념을 갖고 실험실과 교단에서 연구와 교육에 평생을 헌신적으로 바쳐온 사람이 느닷없이 이익과 명성을 위해 양심을 팔아먹었을 가능성은 극도로 낮으리라는 것이 나의 이성적 판단이다.

인간이 어떻게 다른 인간을 심판할 수가 있는가? 그런 일을 자임하여 무거운 짐을 진 이들 - 판사나 PD 수첩 같은 - 이 불쌍할 뿐이다. 인간은 오직 타인의 행위만을 평가해야 할 터인데, 언제나 행위가 아니라 타인 그 자체를 심판하려 한다. 다른 인간을 심판하는 것은 인간 능력 밖의 것이다. 따라서 나는 황우석 교수도, PD 수첩도 심판할 의도가 전혀 없다. 다만, 황우석 교수의 편을 들기로 선택할 뿐이다. 설사 황우석 교수에 대한 나의 판단이 완전히 잘못 된 것으로 드러난다 하여도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삶 속의 모든 선택은 후회를 수반하기 마련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떤 것엔가 자신을 바칠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선택의 동인(動因)이 오로지 '규명'이나 '심판'일 경우, 내 영혼은 아파한다; 용서나 애정이 함께 녹아들어 있어야 영혼이 편안해 한다. 용서와 애정 같은 '감정'이 배제된 규명이나 심판이 과연 가장 진실에 가까운 것일까? 나는 그것을 회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