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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
수행' 하던 중 쓰레기통 옆 구석의 어둑한 곳을 치우다 종이 조각
같은 게 있어 집어들었는데 촉감이 이상하다. 대개 사람은 시각으로 파악할
수 없는 물체를 여타 감각기관을 사용하여 감지하려 할 때 두려움에 빠지기
쉬운데, 이는 시각적 정보의 부재 때문이라기 보다는 아무 근거없이
피어오른
상상 때문이 아닐까 싶다 - 내부가 보이지 않는 상자 속에 손을 집어넣고 그 안의 물체를 촉감만으로
식별해야 하는 경우, 그런데 만약 그 물체가 꿈틀거렸을 경우를
상상해보라. 내가 집어든 물체, 그냥 쓰레기통에 집어 넣어버리면
되건만, 호기심 때문에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 살펴보니, 번데기
껍질처럼 생긴 것이 아마도 나방 따위의 허물인 듯 하였다. 그걸 깨달은
순간 느닷없이 진저리가 쳐지며, 손으로 잡고 있던 그 물체가
징그럽다는 듯이 반사적으로 내던져 버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징그러웠다기 보다는, 찰나였으나 미묘한 공포감 때문에
그랬던 것이다. 그것을 시체로 감지했기에. 정확히 말하자면 그 미묘한
공포감은 생명이 깃들어 있어야 할 물체에 생명이 없다는 그 부조리에
대한 반사적 반응이었고, 공포란 경외감의 다른 얼굴이었을 뿐이었다.
평소 의식하지는 않았어도, 나는 살아있는 나방 몸통을 경외의
대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생명의 유, 무는 인간의 손끝만으로 판정
내리기에는
지나치게 숭고한 존재 상태가 아닐까?
수년
전, '공원묘지'에 모셔둔 집안의 묘를 관리하는
데 문제가 많아, 화장을 거쳐 재이장하기로 집안 어른들끼리 합의가
되었고, 내가 그 절차에 참여하게 된 적이 있었다.
묻히신지 십 년 이상 된 한 어르신의 시신을 흙속에서 파내어 화장용
관에 옮겨 넣어야 했는데, 시신이 예상 밖으로 건재한 채여서 작은 크기의
관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 것이었다. '이것은 시체다'라는 관념을
갖고 시신을 대하던 당시 유물론자였던 나는 별다른 느낌도 감흥도 없이 그
시신을 장갑 낀 손으로 들고 있었는데, 그 어르신의 아들로서, 철저한
기독교 신자이자 의사인 어르신 한 분이 시신을 받아 드시더니만 완력으로
다리 뼈 께의 관절을 구부러뜨리는 것이었다. 아, 그러면 되겠구나, 하는
게 나의 반응이었는데, 그때 이장 작업에 참여하고 있던 묘지의 인부들에게는
그것이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묘지 인부'가 갖추어야 마땅할 법한 '터프함'을 언행을 통하여 서슴없이 과시하며
땅 파기 작업을 하던 세 명의 중년 인부들은, 그러나 시신을 구부러뜨리는
장면 앞에서는 경악과 공포에 질린 듯한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그 모습에 당황한 집안
어른 한 분이, 아아 괜찮습니다, 이 사람이 친아들이고 의사예요 라며
설명을 해주었건만, 그들은 더 이상 우리 일행을 인간의 부류로 취급하지
않는 듯한 눈초리로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마도 그들에게는 시신을 훼손한다는
것이 심중한 금기 사항이었던가 보다. 생명의 숨결이 빠져나간지 이미
오래인 시신에 대한 두려움이나 경외감이 한 번 생명을 담고 있었던
물체는 단순한 물체일 수만은 없다는 인식에 근거하고 있다면, 결국
시체에 대한 경외감이 생명에 대한 경외감과 동일한 것은 아닐런지.
평소에
아무리 일이 많고 바빠 밥먹을 시간마저 없을지라도 때맞춰 연구실의 화분에
물주는 것을 빼먹지는 않는다. 이유는 물론, 생명 있는 것을 돌보는
것이 최우선이기 때문인데, 이는 생명 존중이라는 추상적 가치관을
철저히 내면화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생명은 돌보지 않으면
없어져버리고 만다는 구체적인 인식으로부터 기인한 것이라 하겠다.
하긴, 그러고 보면 생명이 소중한 절대적인 이유 같은 것이 과연
있는가? - '신'께서 주신 것이라는 종교적인 도그마 이외에는? 기독교에도
육신의 생명 보다 더 중요한 영생의 개념이 있듯이, 영혼이 현상계에서
잠시 빌어 쓰고 있는 육신의 생명이 지고의 가치를 가진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결국 생명이 소중한 이유는 그것이 금세 가버리는 것이기 때문일
게다. 좀 있다 가버려서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일 게다.
생명은 순간적이고, 스쳐지나가는 것이고, 마침내 사라져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소중하다. 덧없고 하찮기 때문에 소중하다. 그래서 그것이 잠시
머물다 간 몸뚱아리마저 가벼이 대할 수가 없는 것일 게다.
한적한 길을
가다가 도로 저쪽 편을 천천히 걷고 있는 내 또래의 남성이 시야에 들어왔다.
곤색 정장에 넥타이를 맨 차림새, 회사원 아니면 공무원일 듯한 모습,
전형적인 '현실'의 중년남자의 모습. 신호등 앞에서 멈춰선 그가 길가에
자라난 나무의 잎사귀를 조심스레 만지는 것이었다. 나뭇잎 속의 생명을
느껴보기라도 하려는 듯. 아- 저 사람도 나와 다르지 않구나, 지금 이
순간도 어김없이 소멸과 죽음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는 모든 생명 깃든
물체들의 허망한 소중함을 저 사람도 손끝으로나마 느껴보려 하는가
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보이지 않게 합장하여 목례를 보냈다:
우리는 다 허망할만큼 소중한 존재들이군요.
늦은 오후, 야간
강의 하려고 올라가는 언덕 위의 강의실, 노트북 컴퓨터와 교재들 잔뜩
짊어지고 경사진 계단을 오르니 숨이 차다. 다 올라와서 고개를 쳐드니,
내 눈 앞에 진분홍색 꽃나무가 화알짝 인사를 하며 서있다. 문학적 표현이
아니라, 나는 실제로 그 꽃나무가 나에게 해맑은 인사를 해주고 있는
것으로 느꼈다. 서녘으로 기우는 햇살을 담뿍 받아 반짝거리고 있는
그 꽃들은 너무도 밝게 웃고 있는 것 같았다. 꽃나무 속의 생명이 나에게
사랑을 전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같은 생명 갖고 있는 것 끼리의 교감이었을까?
나는 마음 속으로 그 나무에게 '안녕'하고 인사했다. 마치 교정에서
마주치는 제자의 인사에 답하듯이.
얼마 전 만난 분이 높은 차원의
존재로부터 메시지를 전해들었다 하였다. 만물에는 정령이 깃들어 있다는
메시지라 하였다. 깊이 묵상해봐야 할 메시지라고 생각했다. 생명
있고 없음에 대한 개체 차원의 관리 주체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추정을
단순히 황당하다고만 여길 정도로 내 마음이 닫혀 있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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