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2) (2005/6/26)
 

1. 벌레들

서해안 고속도로를 서울서 출발해 질주하다보면, 충남 당진 정도를 지나가면서 교통량이 급격히 줄어들고 전라남도에 이르러서는 거의 나홀로 드넓은 벌판을 달리는 느낌을 맛볼 수 있다. 주위에 아무도 없이 홀로 뻥 뚫린 고속도로를 달릴 때에는 시속 160km가 넘게 액셀러레이터를 밟아보기도 했다. 그 길을 여름철에 여러 번 왕복해본 후에야 알게 된 것이 있으니 바로, 차의 속도와 차의 전면부에 충돌하여 죽는 벌레들의 수는 정확히 정비례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시속 80km 정도로는 차창에 부딛혀 죽는 벌레들이 몇 마리 되지 않는데, 150km로 달리고 나면 한 시간 만에 앞 유리창이 벌레들 시체로 도배가 되어버린다. 지금껏 그 시체들을 아무렇지 않게 물을 끼얹어 닦아내버리곤 해왔다. 그러다 한 번은 그 시체들을 닦아내다 문득 '벌레도 중생'이라는 불교적 생각이 떠올랐다. 부처께서는 모든 중생의 고통을 벗겨주기 위해 이 현상계로 돌아오셨다는데 나는 아직도 중생들을 무심코 죽이며 살고 있구나. 자연의 세계 속에는 시속 60km 이상으로 장시간 달릴 수 있는 거대한 생명체는 없다. 그 정도 속도로 달리는 물체까지는 벌레들이 알아서 피할 수 있는 능력이 자연적으로 주어졌다. 하지만 시속 150km라는 비자연적인 고속으로 질주하는 거대한 자동차를 피할 능력은 날쌘 벌레들에게도 주어지지 않았다. 나의 무자비한 고속질주로 과속 벌금 딱지를 받을 가능성만 증가한 것이 아니라 숱한 '중생'들의 생명을 앗아가버린 셈이 되는 것이다. 생명은 소중한 것인데. 인간의 손으로는 날파리 한 마리에도 생명의 숨길을 불어넣을 수가 없다. 생명의 숨길은 우주가, 신이 친히 불어넣어 주시는 것인 만큼.

벌레로 태어난 중생들은 거대한 차를 폭력적으로 몰아대는 인간의 횡포 앞에 무방비 상태로 놓여야 하는 카르마를 안고 태어난 게고, 인간으로 태어난 중생들은 쓰나미와 화산 폭발 등을 예측불허의 방식으로 선사하는 가이아 신의 횡포 앞에 무력하게 휩쓸려야 하는 카르마를 안고 태어난 게지. "Death is a natural part of life." 생명의 소실이란 삶의 자연스러운 한 부분일 뿐이라는 제다이 마스터 요다님의 말씀이 한 줄기 위안을 안겨준다. 생명의 오고 감은 중생의 실존을 절대적으로 사로잡지만, 그 사로잡힘을 뛰어넘는 것이 중생의 존재 의미겠지.

언젠가 여름에 아이들을 데리고 집 뒤의 관악산 계곡에 놀러간 적이 있다. 우리가 찻길을 건너려 하고 있을 때, 도로 한 복판에 꽤 큰 두꺼비 한 마리가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두꺼비 보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어서 나는 아이들에게 두꺼비 보라고 소리쳤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차 한 대가 그 길로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저 두꺼비를 어쩌면 좋나?' 하는 우려에 대한 이성적인 답안을 내놓기도 전에 그 차의 바퀴는 두꺼비를 깔아 뭉개고 지나쳐버렸다. 두꺼비가 차바퀴에 깔리는 순간 '퍽'하는 소리와 함께 배속에서 오렌지 빛 내장이 선명하게 튀어나와 도로 위에 퍼졌다. 내 딸들은 그 광경을 고스란히 보고 있었다. 오렌지 빛 내장이 튀어나오는 광경을 본 아이들은 얼떨결에 깔깔거리며 웃는 것이었다. '시체'를 아이들에게 보이기 싫다는 단순한 생각에 나는 아이들의 손을 잡아끌고 그 자리를 떠났다. 당시 너댓 살에 불과했던 나나는 그 이후로도 이따금씩 그 광경에 대해 내게 말하곤 한다. "아빠, 두꺼비가 차에 깔려서 노오란 게 배속에서 푹 튀어나왔었지?"

그 날은 살생의 날이었던지, 관악산에서 제비나비 한 마리와 매미 한 마리를 잡아 곤충 채집통에 함께 집어넣었는데, 매미가 미친 듯이 발광을 하는 바람에 제비나비의 고운 날개가 갈갈이 찢겨져 나갔다. 그 참상마저도 아이들은 보았다. 병신이 된 제비나비를 채집통에서 꺼내 풀밭에 던져줄 수밖에 없었다. 그 찬란하게 아름다운 나비는 아마도 개미들의 먹이가 되었을 것이다.

생명 발현의 아름다움과 처참함은 지극히 구체적이다. 나에게는 추상적인 가치로서의 '생명의 소중함'은 커다란 호소력이 없다 - 마치 독수리 오형제가 인류의 생명을 지키기 위하여 필사적인 전투를 벌이는 것이 그저 재미있는 만화의 얘기로만 느껴지듯이; 마치 소말리아의 백만 명의 생명이 내 앞의 어린 아이 한 명의 목숨의 무게만도 안 되는 것처럼 느껴지듯이. 나에게는 생명이 소중한 소이연이 생명의 개체 각각의 구체적인 발현 양상과 관련되어 있다. 그 생명체가 벌레가 됐든, 짐승이 됐든, 인간이 됐든, 그 한 개체의 숨길, 몸 움직임, 체온, 끈적끈적함, 또는 보드라움, 징그러움, 또는 귀여움, 그런 것들이 생명의 소중함과 더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추상 보다는 구체가, 이상 보다는 현실이, 성역 보다는 일상이, 영원 보다는 순간이 더 나의 실존에 어필한다. 전자들이 덜 중요하다는 말이 아니다. 몸뚱아리 갖고 숨쉬고 있는 나에게는 후자들이 더 소중히 '느껴진다는 것'이 나의 솔직한 결론이라는 말일 뿐이다. 그것 이상은 나는 잘 모르겠다.


2. 줄기세포

황우석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둘러싸고 종교계의 윤리적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생명이 소중하기 때문에 생명으로 '간주해야 할' 배아를 이용하는 실험을 허용할 수 없다는 근본주의 기독교도인 미국의 부시 대통령의 논리에 대해, 그러면 이라크를 침략해서 수많은 사람을 살생한 것은 왜 허용했냐는 냉소섞인 비난도 들린다. 하긴, '세계 평화'라는 추상적인 이상을 위하여 전쟁의 포화 속에 스러져야 할 구체적인 생명들은 불가피한 희생으로 차치하는 위정자들이 어찌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 감히 자신의 입지를 펼 수가 있겠는가. 특정 종교의 논리를 깔아뭉개고자 함은 아니다. 다만 나에게는 종교계의 논리보다는 줄기세포 연구의 진전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 불치병 환자와 그 가족들의 논리가 더 강력하게 들릴 뿐이다. 난치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또 다른 사람의 생명인 배아를 희생해도 된다고 할 수 있느냐는 종교계의 논리에 별 오류가 있다고 보지는 않으나, 배아를 생명을 '간주하느냐' 마느냐는 내게는 추상적인 논의다. 내게는 지금 이 순간 고통 받고 있는 인간의 생명이 '더' 소중하다. 이와 같은 구체성의 존중이 잔인한가? 현실은 잔인하다. 인간은 현실의 일에 있어서 잔인하게 - 또는 냉정하게, 일들의 우선순위를 결정할 수밖에 없다. 구체성을 더 존중하는 내가 더 옳다는 말이 아니다. 나는 냉정하게 우선순위를 구체성에 둘 뿐이라는 말이다. (또는, 불치병 환자들의 희구를 애써 외면하는 윤리학자들이 더 잔인한가?)

만약 배아가 생명 있는 것이라면, 자신의 상대적으로 미성숙한 생명이 타인의 고통을 덜어주고 타인의 삶을 충만하게 도와주는 데 쓰이는 것을 '본성'의 차원에서 기뻐하지 않을까? 이것은 잔인함과 자비심 양면이 공존하는 생각이다. (어떤 영적인 스승들은 심지어는 낙태로 인하여 온전한 인간으로 꽃피우지 못하고 사라져 버리는 생명들도 이미 다 그러한 카르마를 안고 그 수준만의 생명으로 존재하다 갈 뿐이며, 나름대로 존재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이러한 생각까지도 인간중심적인 '인간적인 관념'에 불과한데, 나는 이런 인간적인 관념과 기독교계의 생명윤리관이 범주적으로 동일하다고 본다: 즉, 추상적이다.

이런 문제가 어디 '이성'과 논리로써 해결될 성질의 문제인가? 도그마로 해결될 일이 아닌가? 아니면 정치적 결정으로 일단락 될 일이 아닐까? 아니면, 단순히 우리 인간의 영적인 '진화' 단계에서의 혼란상을 보여주고 있을 뿐인가? 우린 아직 답을 모르고, 그렇기 때문에 도그마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 단계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꾸준한 토의, 성찰,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단, 그러고 있는 와중에도 우리의 존재의 방식을 결정해야만 하는데, 그런 임시적 존재 방식에 있어서 나는 우선순위를 살아 있는 생명체인 인간의 고통을 덜어주는 자비심 쪽에 두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뿐이다.

(나와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는 의학 전문가의 칼럼 링크)


3. 답 없는 질문

하버드 대 과학자들과의 대담에서 유전공학에 대하여 보여준 달라이 라마의 반응이 흥미롭다. 한 유물론자인 세포 과학자의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포터: 나는 나에 대한 자신감 그리고 뇌 과학과 컴퓨터로 인간 지능을 흉내내는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의욕을 바탕으로 마지막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의 지식이 진보한 미래의 어느 시점에, 유전자 공학에 의한 단백질과 아미노산 혹은 공학에 의한 칩과 구리선을 재료로 사용하여 우리의 좋은 성질을 모두 가진, 그리고 나쁜 성질은 전혀 가지지 않은 생물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이건 흥미로운 모습의 환생이 되지 않을까요?

달라이 라마: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고 하면 가장 반겨야 할 일이지요. 많은 수고를 덜어줄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은 기독교의 신약 성경 루가복음 20장에 나오는 구절이다:

어느 날 예수께서 성전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고 계실 때에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이 원로들과 함께 와서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그런 일들을 합니까? 누가 그런 권한을 주었습니까? 말해 보시오" 하고 따졌다. 예수께서 "그러면 나도 한 가지 물어 보겠다. 어서 대답해 보아라. 요한이 세례를 베푼 것은 그 권한이 하느님에게서 난 것이냐? 사람에게서 난 것이냐?" 하고 반문하시자 그들은 자기들끼리 "하느님에게서 났다고 하면 왜 요한을 믿지 않았느냐고 할 것이고 사람에게서 났다고 하면 사람들이 모두 요한을 예언자로 믿고 있으니 우리를 돌로 칠 것이 아니겠소?" 하며 서로 의논한 끝에 "어디서 났는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께서는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들을 하는지 말하지 않겠다"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님 보다는 달라이 라마께서 더 친절하게 대답해준 것 같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적도 있다고 한다: "너희 율법교사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렸고 자기도 들어 가지 않으면서 들어 가려는 사람마저 들어 가지 못하게 하였다." [루가 11:52]


4. 삼성민국

내가 살고 있는 과천에는 재건축 바람이 불고 있다. 나라의 농민들을 경제구조 속의 노예화로 내몬 '조국 근대화,' 그 과정의 결실을 주로 차지한 대기업들의 수장인 삼성물산이 재건축 책임을 맡았다. 재건축이라는 광풍에 얼마나 어마어마한 금전적 이권이 걸려있을지 나같은 멍청한 인간은 짐작도 할 수 없다. 그 이권 때문에 인근 초등학교 아이들의 건강에 대해서는 일말의 고려도 하지 않는 것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삼성은 어느 날 갑자기 예고 한 마디 안하고 - 철거 예정일을 훨씬 앞당겨 - 재건축 단지 철거작업을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치명적인 미세먼지는 고스란히 인근 초등학교를 습격했고, 학교는 창문을 꼭꼭 닫고 수업을 할 수밖에 없었으며, 예정된 운동회를 비롯한 모든 실외 행사가 취소되었다. 이에 항의하는 학부모들은 삼성과 과천시의 무시와 냉대를 당해야 했고, 재건축의 이권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람들의 적대 행위를 경험해야 했다.

나는 삼성이 돈을 많이 벌어서 그 직원들이 월급을 많이 타가는 것이 한국 경제를 위해서 아주 좋은 일일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는다. 그러나 한 번도 삼성의 '기업 윤리' 같은 것을 신뢰해본 적은 없다 - 미디어가 어떻게 미화해왔건 간에; 내가 구독하는 중앙일보는 여전히 삼성의 홍보지 성격이 강하다. 그래서 삼성이 이런 식으로 살아 있는 초등학생의 생명을 경시하는 행위를 보인 것에 그다지 놀라지 않는다. 또한 삼성과 손잡고 일하는 과천시 행정부가 기관지를 통하여 '친환경적인' 재건축 공사에 대한 찬사로 침이 마를 틈 없는 것 역시 새삼스러울 게 없다. 그것이 우리의 수준이므로. 우리의 수준이란, 생명 보호 따위 보다는 돈이 중요한 바로 그 수준이다. 그런 우리를 '최고 기업' 삼성과 전국 최우수 지자체 중 하나인 과천시가 대표하고 있을 뿐.

배아줄기세포 논란과 과천의 야만적인 재건축은 아무 관련 없는 일일 터. 그러나 과연 그런가? 내게는 생명체로 인정해줘야 하는 배아의 성장 시점에 대한 테크니컬한 논의 보다는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는 생명체의 고통을 덜어주어 그 생명체의 온전한 삶 영위를 돕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내게는 미래에 친환경적인 - 따라서 부동산 가치가 극대화된 - 과천시를 건설하는 것 보다 지금 우리 아이들이라는 생명체에게 심각한 위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건 그저 극히 사적인 견해일 뿐이지만.

몇 달 전부터 나의 아침 기도에 추가된 항목이 있다: '소중한 어린 생명에 위해를 가해야 하는 불행한 업보를 타고난 삼성물산의 재건축 책임자들의 회개를 위해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