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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학기, 전에 없이 수강생 수가 많은 대형 클래스들을 맡고 보니,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학생들의 행동이 눈에 띈다 - 그것도 보기 싫은 행동들이.
출석 체크를 한 후에 슬그머니 빠져나가는 친구들, 선생이 얼굴을 외우지
못하리라 믿고 대리출석 해주는 녀석들, 엎어져서 자는 녀석들 등등.
내가 아무리 성심성의껏 수업 준비를 해가서, 강사료 따위는 아예 염두에
두지도 않고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애써도, 그런 것에는 콧방귀나 뀌는
듯, 제멋대로인 어린 학생들의 수가 그리 적지만은 않다. 철이
없는 게다. 나이 조금 더 먹은, 적어도 이십대 중반 이후의 친구들은
그러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보건대, 어린 학생들이 철이
없는 게다. 그런 철없는 꼴들이 보기는 싫지만, 심히 불쾌하거나
화가 나지도 않는다. '들을 귀가 있는 이는 들으라'는 태도를 갖고 있어서.
강제나 강요로 하는 어떤 일의 효과성도 신뢰하지 않는 편이라서.
그렇다
하여도 봐줄 수 있는 한계는 있는 법, 중간시험을 대리출석으로
때운 학생이 내게 '걸렸다.' 대리를 들여보낸 '주범' 학생은 당연히
괘씸하지만, 대리로 들어온 녀석도 내게 뻔뻔하게 거짓말을 했다.
이들의 '죄'를 색출해낸 나는 사실 상당히 화가 났다. 두 녀석 다 불러다가
따끔하게 야단을 치고 응분의 처벌을 받으라고 학생처로 넘겨버릴까
하는 생각까지 치밀었다. 그런데 문득, 나의 학부 시절 일이 떠올랐다.
미국의 대학의 미국사 시험에서 '부정 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간주되어
교수에게 크게 야단 맞았던 일이 있었다. 헌데, 실은 그것이 '과실'이었음은
인정해도 결코 고의적으로 내가 교재의 문장을 '베낀' 것은 아니었기에
- 일종의 '인용' 방식에 대한 문화적 차이 때문이었기에, 질책을 당하면서도
억울함을 느꼈었고, 죄의식 같은 건 느끼지 못했으며, 그 이후로도 그
교수를 전혀 좋아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물론, 지금 내 앞에서
부정행위를 저지른 이 학생의 행동은 엄연한 고의적 부정행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만 더 높은 수준의 나로서 반응하고자, 아니 이 사태를
이끌고자 마음 먹은 것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반성하도록 돕는 것이
- 그것의 가능성 유무는 차치하고라도 - 교육자로서 더 중요한
책무임을 느꼈기 때문이다. 결국, 엄중하지만 진심으로 학생을 위하는
선생의 마음이 담긴 이메일을 그 학생에게 보냈다. 그리고 그의 변명과
사죄를 듣고, 그를 무조건 믿어주기로 선택했다. 나의 이성은, 그가
내게 진심을 고백하고 진심으로 반성했는지 판단할 수 있기 위해서는
아직은 정보가 부족하다고 말해준다. 그러나 나는 이성을
반(反)하면서라도 그를 믿어주기로 선택했다. 즉, 기꺼이 너를 위해서
속아주겠다는 심정으로. 나는 그의 등을 따뜻이 두드려 주고 벌칙으로
부과했던 과제물을 받아주었다. 이러는 선생의 마음은 몰라줘도 좋으니,
앞으로는 자신에게 정직하게 살아가기만을 바라는 나의 마음을 그
학생이 이해할 수 있을까? 난 사회정의를 위해 일하는 법관이 될
자질은 없는 것 같다.
늙은 선생은 밤잠 줄여서 열심히 수업
준비해 갔는데 학생이 되어서 이에 콧방귀나 뀌고 있는 분별 없는 친구들은,
아무리 클래스 싸이즈가 크다 해도 한 학기가 끝나갈 때 쯤 되어선 다
파악이 된다. 괘씸한 요 녀석들 학점을 확 깎아버릴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것이 성적부과자인 선생으로서의 '권력'을 활용코자 하는 나라는 인간의
평균 수준의 반응이다. 하지만 권력 활용 보다 조금 더 높은 수준의
나는 어찌 할 것인가? 아마도 '응징'이나 '처벌'과 같은 원시적 대응의
효용 없음을 냉정한 이성으로 수용하고, '교육적으로' 유의미한 생산적
방안을 강구해내지 않을까...
'조금만 더 높이'를 자꾸 연습하고
있다. '초월'까지는 못 가도, 그저 조금만이라도 더 높은 나로서 살
수는 없을까. 왜 '있음(being)'은 좀 더 높은 수준에서 '나'를 지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얼마 전에 존경하는 벗님이 일을 의뢰하였고,
나는 그 벗을 위하는 마음으로 정성들여 그 일을 수행한 후 그 결과물을
보내줬다. 평소의 일들 보다 정성을 들여야 했던 일이었어도,
'벗'이라는 프리미엄을 중시하는 나는 적정가에서 조금 깎은 가격의
노임을 청구했는데, 산출물을 받아본 벗은 오히려 적정가 보다 높은
수준의 보수를 지불하게 해달라는 요청을 해오는 것이었다. 웃음이 나왔다.
살다보니 별 일도 다 있군, 노임 받을 놈은 제 스스로 깎아주고
싶어 하고, 돈 줄 이는 스스로 더 주고 싶어하다니. 그처럼 바보
같은 일은 겪어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다. 톨스토이 동화에 나오는
바보 나라 주민들 같은 셈 법이다. 벗이 그 정도로 바보 같은 수준으로
나오니, 나도 그에 맞추어 조금 더 높은 '나'로서 대응할 수밖에,
그리하여, 돈을 굳이 더 받아달라고 한다면 벗을 기쁘게 해주기
위한 마음으로, 더 받겠다 답하였다. 이러한 일이 그 벗님에게는 일상과도
같은 평소의 모습일지 모르나, 돈 몇 만 원에 시시비비를 가리며 지독하게 '수금'
다니며 살고 있는 '프리랜서' 나에게서는 평소에 전혀 찾을 수
없었던 모습이다. 타인이 내게 높은 수준으로 대해주니, 나 또한
그에 맞추어 보려 애쓰지 않을 도리가 없다.
평소의 자신 모습보다
'조금만 더 높이' 존재한다는 것, 말은 간단하지만 이것이 바로 '초월'이
아니고 무엇일까.
나를 지극히 존대해주시는 길벗님들과의 관계는
그야말로 '고결함'의 향기로 충만해 있다. 그 고결함의 매혹과 그것이
안겨주는 예외적인 자부심은 토마스 머튼의 말대로 강력한 중독성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고결함에 대한 자부심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역시 '조금 더 높이' 존재하는 방식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길벗님들을 만나더라도 낮은 데 퍼질러 앉아 질펀하게 술잔 나누며 즐길 일이다.
헌데 이런 것도 '조금 더 높이'일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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