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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수행'이란 매 순간을 의식하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매 순간 내가
무얼 하고 있는지를 알면서 살고자 한다. 그래서 내가 지금 여기에
- 본질로서 - 있음을 알고자 한다. 나는 매 순간 아픔을 피하고
즐거움을 구하는 생물체로서 존재하고 있음을 의식한다. 그러나 이는
밑바닥에 깔려있는 기본 프로그램일 뿐, 나는 고통을 피하고 쾌락을
추구하는 것 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일상에서 하고 있음을 안다. 생물체로서의
나의 속성이 나의 본질의 전부가 아님은 자명하다. 정신적 존재로서
나는 나의 성격이라는 운용 프로그램(OS)을 활용하여 일상에서
주어지는 크고 작은 온갖 도전들에 대응한다. 일상에서 나의 성격의
어떤 특정 측면이 작용하고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것도 삶의 매
순간을 의식하는 한 방도이다.
'나'라는 자아가 생물체를 뛰어넘는 존재임을
알게 되는 데만도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이젠 성격 - 또는 '개성'
- 마저도 뛰어넘는
존재임을 알고자 한다 - 아니, 알기는 이미 알고 있으나, '앎'과 실천이
일치하는 경지에 이르고자 애쓰고 있는 중이라고나 할까. 삶의 다양한
순간들 속에서 성격은 손쉽게 '나'를 정의해버리곤 한다. 그러나 성격마저도
OS일 뿐이다. 이걸 알기 때문에 성격에 의하여 지배되는 순간 순간들을
의식하려 하고 있다.
며칠 전의 여행길에서 둘째 딸 나나가
식당에서 갈치조림을 먹다 목에 가시가 걸려버렸다. 아이들 한두 해 키워본
것도 아니고, 애비 에미가 알고 있는 민간요법 다 동원해서 가시를
넘기게 해주려 해도 도무지 되지를 않고, 아이는 급기야 울음을 터뜨렸다. 이번
봄이 수난의 계절인 듯한 나나를 들쳐 업고, 식사도 제대로 못 마친
우리 가족은 가까운 동네 병원을 수소문하여 찾아갔다. 폭우 속에 찾아간
병원은 공휴일인데도 마침 문을 열고 있었고, 잠시 기다린 뒤에 나타난 사람
좋아 보이는 의사 분이 친절하게 아이를 구슬려서 식도를 벌려 간단히
가시를 꺼내주었다. 의사에게 고마웠다. 아이는 언제 울고불고 했냐는
듯 금세 까르륵대며 제 언니와 장난질이다.
이 간단한 에피소드의
진행 내내, 나는 내가 무얼 하고 있는지 의식하고자 했다. 식당에서
아이를 자력으로 구제해보기 위해 이런저런 방도를 일러주는 도중에도,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고 통증을 호소했을 때 내 속이 답답해옴을 느끼는
도중에도, 아이를 데리고 식당을 떠나기로 결정을 내리는 순간에도,
외딴 섬마을에서 휴일에 의료시설을 찾아나서는 순간에도, 놀랍게도
가까운 곳에서 문을 연 병원을 찾아내는 순간에도, 의사가 아이를 치료하는
도중에도 나는 내가 무얼 하고 있는지 의식하고 있었다. 그런
자각 상태가 반드시 나에게 예외적인 내면의 평화를 준 것 같지는 않았다. 또한, 나는
그리 길지 않은 이 에피소드의 진행 내내, 조바심, 성마름, 화남,
근심, 막막함, 기쁨, 안도감, 고마워 함 등등 다양한 감정의 연이은
공세 앞에 별다른 방어자세도 취하지 않은 채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이렇듯 난 그곳에 있으며, 그곳으로부터 유리되어 있지도 않았고,
그 감정들을 고스란히 겪어내고 있었지만, 내가 그런 과정 속에 처해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었고, 그 때문인지 몰라도 깊은 내면의 차원에서 부정적이고
암울한 상태를 겪고 있지는 않고 있었음을 기억한다. 꽤 막막할 수도 있는
처지였지만, '잘 될 거야'라는 막연한 낙관 속에서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주저없이 착착 해냈으며, 나의 그런 행동에 대한 현실의 반응이
효과적으로 척척 일어났다.
뭐랄까, 내가 게임 속에 있음을 앎으로
인하여 게임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고 주어진 과제를 효과적으로
처리해나가는 듯한 이 느낌. 이건 전에도 몇 번인가 체험해본 느낌이다. 많은 사람들이
관련된 복잡한 행사 같은 상황에서 몇 번인가 체험해봤다. 평소 성격대로
보자면 배짱도, 추진력도, 통솔력도
없이 얌전한 타입인 나라는 인간이, 거리낌 없이 주어진 상황에 적합한 해결방식을
강구해내고, 이를
강력히 추진해나가며 주위 인물들을 이끌어서, 당면한 과제를 성공적으로
완수해냈던 그런 이상한 일들이 몇 번인가 있었는데, 그때와 비슷한
느낌을 이번에도 가졌다. 시간이 흐르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랬던
순간들 속의 공통분모 하나를 파악해낼 수 있었다: 즉, 내가 내
성격에 지배당하지 않고, 내 성격의 강점을 살리며, 내 앞에 주어진
상황 속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던 것이다.
반대로, 내가 나에게
주어진 상황 - 또는 영적인 과제 - 에 매우 비효과적으로 반응하여 참담한
좌절이나 실패를 맛보았던 수많은 케이스들을 어렵지 않게 회상해볼 수 있는데,
이런 케이스들의 공통분모는 내가 내 성격에 지배당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내 성격에 지배당했을 때, 내 성격의 강점들은 망각되어버리고
내 성격의 약점들만이 겉으로 튀어나와 감정과 심리를 적절하게 조절하지
못하여 사태를 그르쳤던 것을 알 수 있다. 성격은 OS이기 때문에 나에
의하여 부림을 당해야 한다. 성격이 나를 부릴 때 나는 주어진
도전에 효과적으로 반응할 수가 없다. 지금까지는 나의 자아가
자신의 성격에 의하여 휘둘렸던 경우가 성격을 활용했던 경우보다 훨씬
많은 것 같다. 한심하다. 그 성격을 능수능란하게 길들이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얼까? 내 생각으로는 매 순간을 의식하는 수행도 하나의
좋은 전략이 아닐까 싶다.
다섯 돌도 채 안된 나나의 경우에는,
주어진 삶의 역경(식도에 굵직한 생선가시가 걸리는 것)에 대응하는
성격의 한계가 울음을 터뜨리는 것일 게다. 물론 유치원생 아이에게는
언제나 돌봐주고 보호해주는 엄마, 아빠가 있으니 상관없다. 아이의
성격의 실용성에 근육이 붙는 나이가 될 때까지는 울음을 터뜨린들
뭐라 할 사람 없다. 문제는 성인들이다. 주어진 삶의 역경에 대해서 자신의
성격의 좁은 테두리 속에만 갇혀서 반응하다 보면 해결책이 나오기 어렵다.
성격의 벽에 부딛칠 경우 어른은 분노를 터뜨리거나, 타인에 대한 폭력성을
드러내거나, 자포자기하거나, 자학하거나, 극심하게 나태해지기도
한다. 이것들 전부 바람직하지 못하다. 앞으로의 나의 삶 속에서 이러한
경우들의 발생빈도를 현저히 감소시키고 싶다. 그러기 위하여 내 성격의
어둡고 밝은 양쪽 스펙트럼의 끝을 의식하고 살며, 삶의 도전에 대하여
내 성격의 밝은 쪽 극단으로써 대응하고 싶다. 나는 그래서 매
순간을 의식하는 수행을 놓아버릴 수가 없다.
이 싸이트를 운영하다보니,
종종 길벗님이나 스치고 지나는 님들로부터 삶의 어두움에 대한 하소연
섞인 상담을 요청받곤 한다. 사연을 보내온 님을 내가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는 경우에는 내가 그를 보다 객관적으로 대하는 것이 가능한데,
이러한 객관적 시야를 통해서 그의 글 속에 숨어있는 그의 성격이
조금이나마 포착된다. 그래서 많은 경우, '아-, 이 사람이 겪고 있는
어려움과 이 사람의 성격이 아무 관련없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짐작이 들기도 한다. 성격은 내면이 드러나는 일종의 프레임이므로 그
자체로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으나, 그 프레임을 어떤 자세로 쓰느냐에
따라 자신을 제한할 수도 있고 해방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성격에
의해 제한받고 있는 듯한 느낌을 그 사람의 글에서 느낄 때, 나는 그
사람 속에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하곤 한다.
요즘에 에니어그램이라는
성격유형론을 탐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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