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수행, 길 (2006/5/13)
©
Suk Hoon Han
꿈속에서
무언가, 또는 누군가를 찾아 한참 동안 길을 갔다. 지향점은 있었으나
왜 그리로 향하고 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그저 계속 가야만 했고,
기꺼이 어떤 장애물도 뛰어 넘으며 전진해 나아갔다. 도중에 버스들이
세차게 질주하는 널찍한 도로를 횡단하는 등, 위험을 무릅쓰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지만, 목적지를 눈앞에 두고는 사소한 인간적 친절함을
포기하기 싫어 더 나아가지 못하고 머뭇거렸다(호의적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술집에서 의자 등으로 내 앞길을 막고 앉아 있었는데 비켜달라 하지
않고 멈춰섰다). 그러나 곧 내 앞 길이 열리고, 그래서 나는 목적지에
도달했는데, 거기에는 둘째 딸 나나가 앉아 있는 것이었다. 딸을 보니
내가 왜 도중에 위험을 무릅쓰면서도 기를 쓰고 왔는지 다 설명이 되었다.
나는 술집에 혼자 있는 딸을 데리러 와야 했던 것이었다. 딸을 품에
안는 순간 나는 완전해졌다(She completes me).
며칠 후 꿈에서는
아버지가 나오시더니, 큰 결심을 하신듯이 내게 컴퓨터를 장만해야겠다
하셨다. (과거에 몇 차례, 아버지께 컴퓨터를 사드릴까 여쭌 일이 있었으나
그때마다 아버지는 손사래를 치시며 거절하셨던 일이 있었다. 물론 완벽한
컴맹이시다.) 아무래도 안되겠다는 말씀이다, 이 시대에 컴퓨터를 모르고
산다는 것이. 그래서 잘됐다 싶은 마음에 - 홀몸이신 아버지께 무어라도
마음 쏟을 데가 생기는 것이 좋으니까 -, PC에 대하여 많은 것을 설명해드렸다.
결국에는 노트북 컴퓨터를 사시는 게 좋겠다는 쪽으로 결론이 났는데,
그때까지 아버지는 여느 때와 다르게 나를 매우 존중하며 모든 말을
경청하고 계셨다. 그 과정을 통하여 내가 느낀 것은, 내가 컴퓨터에
대하여 아주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며, 컴퓨터를 처음 배우는 사람에게는
컴퓨터에 관한 모든 것을 다 가르쳐 줄 수 있을 정도로 컴퓨터 도사라는
점이었다(이는 현실과 일치하지는 않음).
여전히 꿈 분석 배우러
다니는 아내에게 해몽을 청했다. 첫째 꿈의 딸이 나의 여성성인 아니마를
나타냄은 별 의심할 여지가 없는 듯 했다. 아니마가 왜 나를 끈질기게
부르는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그곳이 어딘지는 잘 모르지만
그곳으로 줄기차게 꿋꿋하게 가고는 있는 것 같은데, 사소한 인간관계로
인하여 때로 걸음을 멈추게 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불친절해진다 하더라도 온전해지기 위해서는 그냥 내 길을 밀고 나아가야
한다는 메시지인가?
둘째 꿈의 아버지는 나의 또 다른 면을 나타낸다는
것이 아내의 해석이었다. 즉, 내가 오랫동안 완고하고 완강하게 사용하지
않으려던 어떤 유용한 도구, 또는 분야가 있는데, 실은 그 도구나 분야에
대하여 내가 높은 전문성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자면,
아주 잘 할 수 있는 일을 내가 고집스럽게 안해오고 있다는 말이다.
과연 그게 무엇일까? 그게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은 내가 해야 할 일이다.
나는 그것을 알아내서 써먹어야 한다는 게 이 꿈의 메시지일지...
꿈에서
메시지를 받느니 어쩌니 하는 것을 미신 같다고 여기는 이도 있던데,
그 메시지라는 것도 다 내가 나에게 보내는 것일 게다. 내가 지금 불완전한
상태이니 자신을 온전히 만들어 제대로 살라고 내면의 내가 표면의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라는 말이다.
이즈음 내게 특히 부족한 부분이나
문제가 되고 있는 점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지금 나를 온전치(complete)
못하게 하고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삶 자체를 수행의 장으로
받아들이는 수행자는 모든 문제의 원인을 자신의 내면에서 찾아본다.
외부, 사회, 환경 등에 대하여 눈을 감는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이성이라는
태생적 역량을 무시하는 것이므로. 다만, 외부 세계와 내가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인식하에서는 모든 일의 근원으로서의 나를 따져보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이다. 어떤 문제의 근원이 된 나의 내면의 그것 - 대체로
두려움과 같은 부정적 의식 - 을 밝혀내는 것이 그 문제 해결의 첩경이다;
또는, 문제 해결의 유일한 길이거나.
수행이란 결국 매일 수많은
반성을 거듭하는 과정이므로 - 그 '반성'이라는 것에 죄의식 따위는
개입되어 있지 않아 스트레스 요인도 없음 - 나는 내가 어떤 부분에서
특히 약하고 부족한지를 잘 알고 있는 편이다. 나의 약점들은 수행의
해가 거듭되어도 여전히 남아있다. 그래도 나는 개의치 않는다. 그래도
나는 그 약점들이 반드시 극복되고 초월되어질 나의 속성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끈질기게 따라오는 약점이라 하여 그것이 나의 본성이며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이라 믿는다면, 아마도 그 약점이 내 본성처럼 남게 되리라.
그러나 나는 그리 될 것을 거부한다, 지금 내가 아무리 약점 투성이
인간이어도. 내가 약점 투성이임이 부끄럽지도 않다; 당연한 일이므로.
올해
전반기는 전에 없이 많은 수업을 맡아 아주 바쁘다. 전에는 학생들 이름을
거의 다 외웠는데 이번 학기에는 그걸 못하겠다. 200명이 넘는 학생을
1주일에 한 번씩만 만나니 영 메모리가 따라가지 못한다. 내 역량을
넘어서는 분량의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수업 준비로 1주일이 다
가버리고 돈벌이 일도 따로 하자니, 원래 벌여놓았던 프로젝트는 아무
진전이 없다. 삶의 현실이 아무리 나의 발목을 묶고 있든 말든 내가
아는 것은 이것 하나이다: 내가 해야 할 유일한 일이 신께서 내게 선사한
'사명'에 몰두하는 것임을 내가 원하고 알 때, 나는 다른 일이나 돈벌이
등을 뛰어넘고 그 유일한 일에만 몰두하게 되리라는 것; 현실이 변화해야
내가 내 본래의 일에 몰두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즉 내게 가르칠
의무도 없고 내가 돈도 아주 많아 다른 생각없이 내 일에만 몰두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져야 내 본래의 일에 몰두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자각하여 내 본래의 일에 몰두하게 되면 현실이 따라서
변한다는 것, 즉 내가 진정으로 몰두할 수 있을 때 내 앞의 현실이 내
뜻을 따르리라는 것; 앎이, 자각이, 의식이, 있음(being)이 행위(doing)에
앞선다는 것 - 요즈음 방문객님들께서 얘기하고 있는 '신과 나눈
이야기'의 핵심적 메시지가 이것이기도 하고. 지금 바쁘고, 해몽하고,
반성하며 살고 있는 게 다 그럴만 하여 그리하고 있다는 말이다. 주어지는
그대로에, 있는 그대로에 감사한다.
이성을 통한 사유의
가치를 존중하는 '신앙인'인 나는, 앞날을 내다보려는 시도가 인간적
역량을 추월한다는 결론을 내린지 오래이다. 지금 있는 그대로에 집중하여
최선을 다할 뿐이다, 나의 미래에 대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예측이
어떻든 신경쓰지 않고. 이제는 다행히도 제 멋대로 살고 있는 내 꼴에
대해 뭐라고 걱정해주는 이도 없다. 미래는 지금이라는 순간의 축적의
귀결일 뿐이다. 지금을 최상으로 사는 게 미래에 대한 최상의 대비이다.
주식투자 하는 이에게 이런 말은 어리석기 짝이 없게 들릴런지 모르겠다.
자전거 타고 다니는 나에게는 그러하지 않다. 저 앞 사거리의 신호등
변화에 신경 쓰며 달리다 보면, 지금 이 순간 내가 어디를 달리고
있는지 망각해버린다. 저 앞에 대한 전망을 멈추고 지금 내가 달리고
있는 공간에 몰두할 때 나는 하찮은 자전거 타기에서 최상을 건져낼
수가 있을 뿐 아니라, 신호등에 걸리지 않으려 무리하게 페달을 밟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순리대로 나아갈 수 있다. 꿈도 헤아려보고 반성도
하는 것, 모두 지금 이 순간을 최고로 잘 살아있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터무니
없는 오해일 수도 있는 해몽을 끄집어 들고 재미있는 상상을 펼쳐본다:
여직껏 내가 제대로 발휘하지 않고 있는 아주 뛰어난 능력이 나한테
잠재되어 있다는 말이지? 그게 뭘까? 혹시 떼돈 버는 재주는 아닐까?
난
아마도 떼돈 번다면 당장 돈벌이 집어치우고 머나먼 곳으로 훌훌 여행이나
떠나버릴 게 뻔하기 때문에, 나같이 게으르고 놀기 좋아하는 인간 보다는,
진실로 공부에만 몰입하는 수행자에게 그런 혜택이 돌아가야 공평할
것이다. 물론 우주는 인간의 좁은 시야로는 불공평함 투성이로
보이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