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싫어하는이

나를 싫어하다니 (2006/11/19)

내 생각으로는 내가 삶의 중대사에 대해서 완고하게 내 입장을 고수하는 점과 조직사회에 순응하지 않는 점 등등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타인들의 스타일에 나를 맞추어주는 온화한 인간이리라고 추측하고, 또 대체로 세상살이에서 사람들로부터 욕을 먹고 배척당하는 편은 아니었다고 짐작한다 - 물론 주관적 착각일 수 있으나. 그래서인지 간혹 드러나게 비난을 먹거나 배척을 당하거나 하면, 그 일로 인해 심히 괴로워하지는 않지만, 그에 대한 기억은 선명하게 남는 편이다. 기억이 선명한 이유는 모처럼 경험한 배척의 연유를 알아내지 못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도대체 내가 왜 저 사람으로부터 배척을 당했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나의 이해불능은 나의 사람됨의 수준을 드러내준다 - 제 눈으로만 타인과 세상을 볼 뿐인 덜된 인간이란 말이다.

나는 식당이나 주점을 보통 단골로 정해놓고 다니는 편이다. 비록 음식의 맛을 추구하는 편이 아니어서 늘 대충 아무렇게나 먹고 때우며 살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각 자체가 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꼽아놓은 그 단골집들은 모두 내가 미국에서 돌아온 이래로 5년 넘게 출입을 해온 곳이고, 그곳들의 '사장님'인 주인 아주머니들로부터는 언제나 환영받고 좋은 대접을 받는다. 헌데 최근들어 새로이 단골삼으려던 두 집으로부터 박대를 당하는 초유의 경험을 하게 되었다. 다수의 단골 업소들로부터 언제나 환대만 받던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나를 박대한 두 업소 다 장사가 꽤 잘되는 솜씨있는 집들이다. 한 곳은 점심 때 가끔 가서 간단히 요기하는 곳이고, 또 한 곳은 저녁 때 연구실로 찾아준 손님들 모시고 어쩌다 가는 주점이다. 두 업소에서 공히 나는, 주문이나 요청이 무시당하는 노골적인 불친적을 당했고, 확연히 드러나는 적의가 담긴 냉대를 맛보았는데, 이러한 경우들이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라, 나라는 한 인간에 대한 주인의 반감이 지속적이고 의도적으로 노출된 것이었다는 점을 수 차례 되풀이하여 겪다보니 알 수가 있었다. 왜 그런 일을 당하게 되었을까? 나를 박대하는 곳에는 안 가면 그만이지만, 그 연유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매상 올려주고 시끄럽지도 않은 손님을 왜 박대해서 발을 끊게 만든 것일까?

혹시 내가 좀 '튀어서' 그런 것일까. 점심에 들르는 자그마한 식당은 언제나 주변 샐러리맨들이 주 고객인데, 나는 그곳에 항상 혼자 가기 때문에 음식 주문하고 나서는 가져간 책을 펴들고 읽는다(혼자 밥먹으로 오는 이들은 나 말고도 늘 많다). 멍하니 밥을 먹는 것보다는 책이라도 읽으며 먹는 편이 더 낫기도 하다. 저녁에 들르는 주점에서는 언제나 함께 간 방문객들께서 나와 더불어 고상하고 학문적인 대화를 나누며, '교수님,' '박사님'이라고 나를 호칭한다. 주변의 모든 객들이 고단한 밥벌이의 삶 속에서 현실적인 대화를 나누며 밥을 먹고 술잔을 기울이는 와중에, 웬 제 잘난 척하는 놈이 와서 고고한 듯이 글이나 읽고 어려운 대화나 중얼거리고 있으니, 이런 것이 어렵게 식당 꾸리며 살고 있는 그곳의 주인들에게는 꼴보기 싫은 요인이 될 수 있었을까? 이것은 오직 추측에 불과하지만, 그밖에는 다른 이유를 생각해낼 수가 없다. 아무튼 최소한, 유독 그 주인들이 유독 나를 싫어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다른 곳에서는 그런 박대를 받아본 일도 거의 없고, 나를 박대하는 그 두집의 주인장들이 여타 손님들에게는 친근함과 친절함을 보이는 동시에 나에게는 냉랭함과 불쾌감을 드러냈음을 목격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를 쓰고 있는 이유는 내가 품게 된 그 주인들에 대한 악감을 해소시키기 위해서가 전혀 아니다 - 남아있는 악감 따위도 없고, 발 끊은지도 이미 오래이다. 그게 아니라, 혹 그들의 박대와 배척의 연유가 혹시 객관적 타당성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어서이다. 혹 나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꽤나 밥맛없는 인간이지는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서이다. 이 의문에 대해서 한동안 생각을 해보니, 이런 의문을 아예 갖지 않는 것이 오히려 문제임을 알 수 있었다. 애시당초에, 세상에 나를 밥맛없어 하는 이가 없으리라 믿는다는 것 자체가 지극히 자기중심적이고 우물안 개구리식의 착각이거니와, 최근의 나의 삶의 행보는 내 스스로 보기에도 밥맛없는 점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몇 년전, 처음으로 오피스텔에 연구실을 차리고 책상머리에 앉았을 때부터 느껴온 것이 있다. 나는 왜 이다지도 복을 많이 받고 사는 것일까? 복에 겨움과 안락함, 미안함과 찔림, 그리고 그런 모순된 감정을 느끼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우려스러움. 사업하는 내 친구는 내 연구실의 1/4도 안되는 공간에서 네 명의 장정이 부대끼며 매일 근무하고 있다. 그 어느 대학의 교수도 개인 화장실 딸린 연구실 가진 이는 없으리라. 이런 사치스러운 공간에서 내가 매일 하고 있다는 공부와 일에는 과연 얼마만한 가치가 있을 것인가. 지금도 나는 연구실의 너른 창 너머로 석양이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나에게 주어진 복락에 어찌 제대로 감사해야 할지를 표현하지도 못한 채 살고 있다.

요즘 온 나라가 부동산 광풍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몇 달간 나의 아파트 가격은 말도 안될 정도로 치솟았다. 처음에는 그에 대해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내집 한채 없는 동포들의 한숨소리가 온 나라에 그득한 것도 같았다. 그러나 내 재산이 불어났다는 것에 기뻐하지 않을 인간이 과연 예수와 부처 빼놓고 몇이나 되랴. 간헐적으로, 이 고가의 아파트를 어떻게 재테크 차원에서 활용하면 좋을까 하는 생각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도 몇 억쯤 챙겨놓은다면, 지금처럼 밤도 주말도 없이 일감에 매달려서 살아야 하는 피곤함은 좀 덜을 수 있을 텐데... 나의 이기적인 이성은 내 아파트의 급등한 가격이 결코 거품이 아니라는 점을 다각도로 예증해주기까지 한다. 강남이 거품일지라도 내 아파트는 그렇지 않아, 그저 예전부터 이렇게 되리라 내가 예측해온대로 된 것일 뿐이야...

비록 내가 부동산 재테크까지 하는 경지에 들어서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는 있으나, 동포들의 눈물과 한숨 속에서도 내 재산 가치가 불어난 것을 애석해 하는 양 위선을 떨 것까지는 없겠다. 나에게 돈이란 명백히 多多益善. 물욕 거의 없노라고 자평은 하지만, 실제로 돈 쓸 일은 하나 둘이 아니다. 에라, 나도 한 번 돈 쓸 데 쓰고 살아보자. 급기야, 근검절약 정신으로 끈질기게 신고 다니던 밑창 뚫어진 감색과 검은색 구두 두 켤레 다 미련없이 버리고, 빤짝거리는 새 구두를 두 켤레나 사버리기에 이르렀다. 몸치장에까지 이렇게 호기를 부려본 일은 일찌기 없었다.

나는 처자식 먹여살릴 생활비만 벌면 된다 - 이런 환상적인 현실 조건을 누리고 있는 '가장'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는가. 집도 있고 일도 있다. 아니, 오히려 일은 내가 튕기며 사양하는 처지이다. 강의도 사양하고, 번역도 사양하고, 프로젝트도 사양하고, 그저 생활비만 충당할 수 있다면 내가 하고 싶은 일에만 집중하려 한다. 그리하여 책 읽고, 공부하고, 산에 가고, 자전거 타고, 딸내미 데리고 놀아주고, 종종 여행도 간다. 이 정도의 풍요로운 생활을 영위하게 해주는 일을 밤도 주말도 없이 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기는커녕 피곤하다고 투덜댄다. 은밀히 불한당(땀흘려 일하지 않고 소득 올리는 인간) 흉내를 내보고 싶은 욕심마저 꿈틀댄다. 그러면서 학교에 가서는 젊은이들에게 꿈을 갖고, 이상을 잃지 말고, 참된 자신을 찾아내라고 떠든다. 이런 나를 밥맛없어 할 사람들이 이 땅에 없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 아닌가?

십대에 읽은 일본 소설 '빙점'에는 천사에 근접하는 주인공 소녀가 인간의 악업(惡業) 생성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근절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괴로워 한다. 나는 천사 닮은 십대 소녀가 아니므로 그딴 일로 괴로워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런 괴로움이라는 것이 있다는 기억 자체가 날로 희미해져감을 알아채릴 뿐이다. 나의 예외적인 복락으로 인하여 세파에 발도 안 담그고 글과 말이나 부려먹으며 제 잘난 맛에 산다는 것이 알게 모르게 주변에 증오나 질시와 같은 부정적 감정의 근거를 제공해줄 수 있다는 점을 알아채릴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진정한 교양(참자아의 구동에 필요한 지혜와 지식)'을 추구하라는 이른바 지성인들의 요구가 이 시대에는 사치가 아니냐고 되묻는 젊고 어여쁜 나의 학생들에게, 제발 그런 사치를 누려달라고 간청하고만 싶다. 내가 아무리 밥맛없는 인간일 수 있다 하여도, 나의 학생들이 오로지 현실적 생존에만 함몰되어 메마른 어른이 되어버리지 않기를, 그들의 반짝이는 눈빛이 자명하게 드러내주고 있는 참된 자신의 영광의 빛에 손을 내밀어보기를 바라는 이 마음은 거짓이 아니다.

뭐, 거짓이면 또 어떻겠는가마는.

지하철 오가며 읽은 아름다운 구절 하나 베껴놓음으로써 나의 밥맛없음을 무마해보고자 한다.

당신은 왜 불행한가?
왜냐하면, 당신이 생각하고,
당신이 행하는 것 중 99.9%가
당신 자신을 위한 것이지만
그런 자신이란 것은 없기 때문이다.

- Ask the Awakened [깨달은 분께 묻다], p. 1; 켄 윌버, 『무경계』, 무우수, 2005, pp. 95-96 에 재인용.

있지도 않은 '나 자신'을 위하여 99.9%의 행위를 바치는 '나'가 감지하는 것은 '저들'이 '나'를 밥맛없어 한다는 허구적인 정보에 지나지 않는 반면, 행, 불행의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일 뿐인 '나' 라는 독립된 개체는 없다는 것을 앎으로써 내어놓게 되는 나의 마음 한 조각은 나의 학생들이 내가 알고 있는 그 '나'를 알기를 바라는 투명한 소망이다.

'수행일상 2006'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