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에
관한 잡설 (2006/3/5)
©
Suk Hoon Han
1.
아침마다
정형(定形)적인 명상을 한다. 나의 주된 명상 수행은 온 종일 스쳐가는
평범한 일상 속에 있는 '나'를 바라보는 것이지만, 아침의 자세를 갖춘
명상도 나름대로 특별하다. 헌데 삶이 분주하다 보니 종종 아침 명상과
기도를 빨리 '때워버리려는' 심리가 작동하기도 한다. 안 하고 하루를
시작하자니 왠지 좀 찜찜하고, 그렇다고 시간이 촉박한데 퍼질러 앉아
장시간 하기엔 엉덩짝이 근질근질하고, 그런 심리이다. 이럴 때마다
나의 내면으로부터
떠오르는 음성이 있다:
'명상은 삶의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다.'
바꿔
말하자면, '내가 오늘 하루 잘 살아보자고 아침에 명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침에 명상을 잘 하기 위해 오늘 하루를 사는 것이다'가
되겠다.
이게 미친 소리인가?
나의 존재, 나의 삶 그
자체가 바로 명상이라는 인식에서는 이게 미친 소리가 아니다. 내 몸뚱아리
즉, 내 아랫도리에 근원을 두고 있는 리비도라든가, 감각적 정보를
주로 두려움과 피해의식에 기반하여 처리하는 뇌라든가, 또는 변덕이 죽 끓듯 하여
천상과 지옥을 뻔질나게 오가는 감정이 담긴 마음 그릇
등등 말고, 그것들 전부를 다 주관하고 통합하는 진짜 나, 참된 나가
이번 생에서 하고 있는 일의 본 정체가 바로 명상이라고 생각해본다면,
그러한 본질적 나에 맞추어 현상적 나를 '튠업'해주는 아침 명상과 같은
작용이 실은 내가 오늘 해야 할 가장 본질적인 일이라고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이런 시각에서는 명상은 어떤 활동이나 행위가 아니라
그냥 그대로 있음이다. 나의 참된 본질이 명상이라고 할 때, 그 본질을
드러내는 것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실은 그대로 있는 것이므로,
'나'로서 그대로 있는 것이 바로 명상이므로, 인위적으로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이 명상일 수는 없다. 명상은 내가 이미 명상하고 있음을 아는
것인가 보다. 삶 그 자체가 명상임을 아는 것인가 보다.
이런
인식의 단초를 얼마 전 만난 길벗님께서 일러주셨는데, 그 말씀 들은
이후로 나는 계속 '명상'의 참뜻에 매달려 있는 기분이다.
2.
서구적인
현대 문명이 안고 있는 근원적인 문제 하나는 나와 우주의 분리라고
볼 수 있다. 주체인 나는 객체인 우주, 세계, 또는 자연과 분리되어
그것들을 관찰하고, 조작하고, 또 개발 - 또는 파괴 - 한다. 이런 인식과,
삶이 곧 명상이라는 인식 사이에는 건너기 힘들 정도의 큰 골이 존재한다.
후자의 인식에서는 나와 우주가 분리되어 있지 않다. 내가 곧 우주이다.
그런 나 자신을 명상하는 것이 나라는 존재가 존재하는 방식이다. 근대
서구의 기계론적 자연관과는 달리 '나'는 우주와 함께 씽크로되어(synchronized)
작동한다. 따라서 우주, 세계, 또는 자연을 나와 분리하여 취급하는
것은 간단히 말이 되지 않으며, 나의 내면의 작용과 우주의 작용은 항상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나와 우주가 분리되어 있지 않으므로 나의 상승이
우주의 상승이고, 나의 하강이 우주의 하강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아는 분들을 몇 분 만나긴 했지만 실은 나는 아직 그걸 개념적으로나
이해할 뿐 진짜로 알지는 못한다). 바꿔 말해서,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우주의 행복을 도모해야 하고, 나의 행복을 위해서 나와 우주가
함께 작동하며, 내가 불행해지는 것도 내가 우주와 정당한 관계를 맺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어떤 이들은 이런 사고방식을 신비주의라고
부른다. 나는 현대문명에서 신비주의가 누락되었다는 사실과 현대문명이
지구의 생명체들에게 심각한 폐해들을 야기시켜왔다는 사실 사이에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신비주의자로서.
세상이
점점 위태로워지고 있는 마당에, 세상과 학계가 신비주의자를 무시하거나
말거나, 그깟 일에 신경 쓸 여유는 없다. 신비스럽건 과학적이건, 평가가
나중에 어떻게 내려지든 말든 간에, 일단은 세상의 마음을 구하는
것이 급선무일 수밖에 없다.
3.
이와 같은
생각을 일으키고 있는 '나'를 바라보는 것이 명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