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 (2006/2/4)
©
Suk Hoon Han
나는
과거에 비염을 앓느라 후각 기능을 여러 해 동안 잃은 적이 있었다.
이런 저런 치료 끝에 어느 날 갑자기 후각이 돌아왔던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때 몇 해만에 처음으로 냄새를 맡을 수 있게 되었다는
나의 말을 곁에서 들은 이가, 그럼 빨리 멋진 식당에 가서 최고의
요리를 시켜 먹으라 권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러고 보니 그 당시에는
내가 수년 간 먹는 데 흥미를 잃었던 탓이었는지 몸도 많이 말랐었다.
후각적 요소가 제외된 미각은 참으로 무미건조한 맛일 수밖에 없다.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 된장찌개의 맛이란 것은 참 밋밋하다. 나는 지금도
후각이 결코 예민한 편은 못되지만, 과거의 '기능 상실' 경험
탓인지 후각의 작동 유무에 대해서는 꽤 민감한 편이다. 즉, 어떤 체험에
'냄새'라는 감각적 요소가 개입되어 있는지 아닌지의 여부를 예민하게
따진다는 말이다. 그러다 보니 기억에 강하게 남은 체험들에는 냄새가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헤르만 헤세도
어느 책에선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 소년기에 풋풋한 어린 나뭇가지를 꺾었을
때 맡았던 강렬한 냄새를 떠올리면 그 순간의 체험이 온전하게 되살아난다는.
누구나 그런 강렬한 냄새의 추억을 갖고 있지 않을까? 봄철 국민학교
소풍 길에 맡았던 비맞은 풀잎들의 냄새, 어릴 적 치고 박고 싸우다가
땅에 뒹굴며 맡았던 흙냄새, 타국 공항에 도착하여 처음 맡아 본 형언할
수 없는 이국적 냄새, 돈 벌어서 처음으로 산 새 차의 시트 냄새, 등등.
나는 지금도 비에 젖은 풀잎 내음을 맡으면 어릴 적 소풍 날, 비때문에 재미가
반감되어서 울적했던 기분이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마른 땅의 흙 냄새를
맡으면, 그 누구도 나를 도와줄 수 없고 내 힘으로 극복해야만 하는
냉엄한 현실의 기억에 정신이 번쩍 든다. 미국의 공항에서 처음
맡았던 것과 똑같은 냄새를 이십 년이 지나 용산의 미군 부대 안
호텔 로비에서 맡았을 때, 젊은 시절에 느꼈던 이질감과 도전 의식이
그대로 기억났다. 오랜 희구 끝에 미니밴을 사서 처음 타봤을 때, 과거에
샀던 첫 차의 그 냄새와 똑같은 냄새가 나는 것이 너무 좋아, 그 '새차
냄새' 보존하려고 창문도 안 열고 다니고 방향제도 달지 않았다.
어떤
체험에 냄새가 포함되어 있을 경우, 그 체험이 더 강하게 뇌리에 남는
것 같다. 즉, 우리가 현실을 인식하고, 그 현실과 상호작용함에 있어서
후각을 통하여 수집한 정보의 역할이 독특하다는 말이다. 분명히 전반적으로는
시각적 정보만큼 강력하지는 않겠지만, 어떤 경험에 대한 우리의 감정적이거나
정서적인 반응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는 후각적 정보의 역할이 깊고,
예리하고, 침투 효과가 강하다는 말이다.
나는 우리가 이런 후각적
정보가 극도로 교란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한다. 작은 아파트에서 아침마다 온 식구가 한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번갈아 똥을 누는 일상 속에서 문득 한 인류학자의 말이 떠올랐다. 몇
년전 서울대 인류학과의 정경수 교수는 한 일간지 투고란에서 환경친화적인
도시 건설을 위해 과거의 농촌에서와 같은 '푸세식' 화장실을 만들어
사용해야 하며, 이제 우리는 세련된 도시 생활 속에서 그런 똥간의 냄새
정도는 향기롭게 여기고 감수해야 한다는 요지의 주장을 펼친 적이 있다.
나는 그가 제주도의 화장실을 다년 간 연구하고 쓴 책도 흥미롭게 읽은
적이 있었기에 그의 그러한 생경한 주장의 무게와 깊이를 느낄 수는
있었지만, 이 시대의 이 사회에서 그런 주장은, 한 마디로 봉창
두드리는 소리일 수밖에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의 연구의 결론이
옳다면, 우리는 아마도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을 한참 더 망가뜨린 다음에야
정신을 차리고 푸세식 변소를 만들게 될지도 모르겠다. 허나 지금은
씨알도 안 먹힐 소리라고 본다.
우리는 자연스러운 냄새를 갈수록
멀리하고 혐오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는 우리가 자본주의 시대의
제왕인 미국의 문화를 그대로 따라감으로 인하여 불가피하게 습득하게
된 현대 문명인의 습성일지 모르겠다. 미국 문화는 냄새 없애기에 강박적으로
집착한다. 인간 몸의 각 부위에서 생성되는 냄새들 전부를 철저하게
없애기 위해 미국인들이 기울이는 노력은 눈물 겨우며, 그 과정에서
그들이 퍼붓는 돈의 액수는 어마어마하다. 이제는 그런
미국 문화의 습성을 한국의 도시인들도 거의 체득한 듯 싶다. 목욕탕
다녀와서 비누 냄새 폴폴 풍기는 정도의 자연체취 제거는 순박한 산골
소녀 수준의 청순함으로 다가오지 않는가. 이제는 위생을 위한 청결의
수준을 넘어서서 우리 몸의 모든 냄새를 지워버려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미 오래 전에 텔레비전에서 방영되었던 '클로즈업 치약' 광고, 당시에는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서양 미녀가 연인과 입을 맞추려 하나 연인이 불쾌한 표정과 함께
고개를 돌려 버린다; 미녀가 클로즈업 치약으로 이를 닦아 정결해진
후 다시 연인에게 다가가자, 연인은 그제서 그녀를 미소로 반기며 입맞추려
한다. 이런, 우리의 입구멍에서 이렇게 하수도같은 악취가 풀풀 풍기고
있었구나! 반만 년 동안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자신의 냄새의 고약함을 깨닫게
해준 서양의 메시지에 쇼크 받은 우리는 그 후로 꾸준히 체취 지우기
노력을 업그레이드 해온 결과, 이제는 구취 제거용 가그린, 겨드랑이
냄새 제거용 디오더런트, 옷냄새 제거용 패브리즈 등등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문명인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나라고 어디 덜 할까,
그 본산지 미국에서 사회 생활 때문에 마늘이나 김치도 함부로 못먹으며
십년 넘게 살았었는데. 귀국 후 향수를 선물 받고 나서는 이젠 향수도
습관적으로 뿌리고 출근한다. 깔끔하고 청결하고 향내 풍기는 게 뭐가
문제일까 의아할 수도 있으나, 내게는 여러가지의 문제가 느껴진다:
개인 차원의 강박증적 행동, 문명 차원의 위선, 그리고 자연스러운
감각 기능의 교란 등.
좋은 향기 풍기겠다는데 뭐라 할 말은
없지만, 이를 강박적으로 추구할 때 마음이 비틀어지고, 따라서 냄새가
나쁜 인간은 후진 인간으로 취급하게 된다; 마치 외모지상주의 문화에서
수많은 평범한 외모의 여성들이 성형수술을 받지 않고는 자아자존의식을
소유할 수 없게 되는 것처럼. 또 이보다는, 문명 자체가 갈수록 위선적이
되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일 것이다. 미국 문화는 인간의 체내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거의 모든 것을 병적으로 혐오한다. 똥은 말할 것도 없고,
방귀, 침, 입안 음식물까지. 이런 것들이 마치 존재하지 않기라도 한 듯이
감추는 것이 미국 사회의 에티켓의 주된 원칙이다. 미국인들은
심지어 '똥,' '방귀'라는 용어 자체도 우리처럼 자유롭게 쓰지 못한다.
인간의 몸이 만들어내는 것들을 금기시 하는 문화가 이끌어가는 문명의
문제는 무엇일까? 따져봐야 할 게 너무 많아 일일이 언급할 수가 없지만,
그러한 문명이 안고 가는 위선이 깊고도 다양한 인간성의 총체적
발현에 장애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복잡한 미국문화론을
펼칠 역량은 부족하니, 전술한 세 번째의 문제점인 '자연스러운 감각
기능의 교란'만 짚어 보자. 현대 문명인인 우리가 얄팍한 자아의
보호에만 집착하여 자신의 모든 자연스러운 냄새를 병적으로 제거하고
그것을 인공적인 화학 약품의 내음으로 덮어 씌울 때, 우리가 자연의
원래의 냄새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기가 점점 어려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본주의 문명은 이러한 우리의 얄팍한 취향을 디오더런트와 같은 오만
가지의 상품을 가지고 새로운 소비를 창출함으로써 더욱 부추겨줄
뿐이고, 우리는 갈수록 자연의 내음으로부터 멀어지게 되고, 결국 우리가
우리 자신의 몸으로 만들어 낸 똥 냄새를 과도하게 혐오하게 된다. 우리가
가공처리된 인공 냄새만을 선호하게 될 때, 우리가 삶 속에서 수집하는
후각적 정보들은 자연의 실체로부터 얼마나 유리될 것인가? 디지털화
된 정보만을 다루게 될 때 아날로그적일 수밖에 없는 세상의 참 내음을
맡기 어렵게 되는 것처럼, 가공된 후각적 정보에 의해 교란된 우리의
감각이 삶의 참 내음을 맡기 어렵게 되지 않겠는가? 정경수 교수가 주장한
자연친화적 똥간 같은 것은 용납될 수가 없다. 즉, 문명의 '발전'을
통하여 인간의 존재 방식의 폭을 확장시키기는커녕 점점 더 축소시키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도시 속에서 살다보니 자연에 근접한 환경의
냄새가 갈수록 낯설어진다. 얼었던 겨울 땅이 녹고 춘풍이 불기 시작할 무렵,
교외의 한적한 길을 걷다보면 거름 냄새가 코를 찌른다. 거름 냄새에
거부감을 느끼는 나의 서구화된 반응의 타당성을 의심한다. 영성의
스승들은
이 현상계 자체가 가짜라고들 하시던데, 그 가짜 위에 우리 스스로 덫칠한
헛 껍질이 갈수록 많아지는 게 문제다. 우리는 이제 있는 그대로의 냄새도
맡지 못하게 되어버리는 것 아닐까? 스승들의 일관된 가르침은 있는
그대로 보라(감지하라)는 것인데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