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주절
반성문 (2007/4/29)
©
Suk Hoon Han
못된
성질머리 그럭저럭 잘 다스리며 애들에게 착한 아빠로 꽤 오랜 기간
동안 잘 지내왔는데, 어젯 밤에는 첫째를 호되게 야단치고 말았다. 아이가
두어 번 내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행동을 했고 나의 꾸지람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으로 애비에게 불만섞인 반응을 보이자, 급기야 내
뚜껑이 열렸던 것이다. 나는 소리를 버럭지르며 분노를 폭발시켰는데,
그 순간 분노의 도화선이 내 목줄기로, 식도로, 그리고 심장으로 타들어가고
있음을 명확히 느낄 수 있었다. 오로지 착하고 순해야만 했던 첫째가
불만과 반항섞인 눈초리로 애비를 째려보며 '그럼 어쩌라구'라고 대드는
것이 그렇게도 참을 수 없게 화가 날 일이었을까. 첫째는 엉엉
울며 제 방으로 들어갔고, 둘째는 눈치만 살피며 엉금엉금 엄마를 찾아가
숨었다. 폭발한 야수같은 애비는 거실에서 밤늦도록 씩씩거리고 앉아
있었다.
십년 공부 도로아미타불. 평소에 애들이 엄마한테 야단맞으면
토닥이며 달래주는 친구같은 아빠로 몇 해 동안 함께 잘 딩굴며 놀았다고
자평했건만, 한 번의 폭발로 그 공든 탑을 무너뜨려버렸다. 집도 있고,
일도 있고, 돈도 있는 내가 제 자식한테 이렇게 분노를 폭발시키고 있는
꼴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의 아동학대의 대부분을 제 부모가 저지른다는
조사 결과가 놀랍지 않다.
한 국제 구호기관의 뉴스레터에 파키스탄의
'어린 낙타기수의 고백'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네 살 때 낙타기수로
팔려갔다가 간신히 구출된 살림 야 칸이라는, 내 딸 만한 12세 소년의
보고다:
제
다리는 라티프라는 낙타농장 감독한테 맞아서 부러진 거예요. 어느 날
아침 저는 몸 상태가 안 좋아 감독인 라티프에게 오늘은 일을 할 수
없다고 말을 했어요. 하지만 라티프는 저에게 일을 해야 한다고 소리를
질렀죠. 제가 계속 사정하자 그는 고무호스로 나를 때렸어요. 그러다가
마침내 쇠파이프를 가지고 오더니 내 다리가 부러질 때까지 마구 두들겨
팼어요. 그 다음에는 쇠침을 가져와 내 다리에 구멍을 냈고 그 안으로
쇠침을 마구 쑤셔 넣었지요. 저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고 이틀 동안
피를 흘리며 그 뜨거운 모래 위에 방치되어 있었어요,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죠. 그러다가 의식을 완전히 잃어 버렸어요 ....
네 살 어린
나이에 낙타를 처음 타던 때를 기억해요. 마구 달리는 낙타 등에 타는
일이 얼마나 두려웠던지 집에 가고 싶어 매일 울기만 했어요. 그러다가
4년쯤 지나자 체중이 불어 낙타를 더 이상 탈 수 없게 되었죠. 그 때부터는
낙타를 훈련시키고 먹이를 주는 새로운 일을 했어요. 아침 일찍 일이
시작되기 때문에 아침을 먹는 일은 꿈도 못 꾸었어요. 점심도 쌀 한
줌 정도 먹었을까요? 밤 늦게서야 빵으로 저녁 한 끼를 먹을 수 있었어요.
-
유니세프 소식, 2007.2~4, p. 7
이웃 사는 네 살 짜리 꼬마가 어쩌다 우리집 현관에 한 번 들어선
적이 있었는데, 녀석은 신발장에 걸려있는 길다란 내 구두주걱을
보더니만, "왜 맴매가 여기 있어?"라며 긴장했다 한다. 그
모습을 보고 우리 애들이 배꼽을 잡고 웃었단다. 애들은, "아빠,
걔는 집에서 구두주걱으로 매맞나봐"라며 깔깔댔었다. 지난 세기에
나는, 첫째 딸의 손바닥을 플라스틱 자로 약간 따끔할 만큼 한
대 때린 적이 있었다. 그때, 아이로서도 울만큼 아프게 맞은 것도
아니고 하여 상만 찌푸렸던 기억이 나지만, 때린 나로서는 기분이 매우
처참하여, 그 이후로는 애들에게 매를 든 일이 없다. 애들은 워낙 연약하여
조금만 아프게 해도 내 가슴 속이 후벼지듯 아픈 것이다.
낙타몰이
감독 라티프는 어떤 인간일까? 네 살에 부모 품에서 떨궈져 나와 혹독한
노예 생활에 시달리는 어린 아이에게 그토록 잔인무도한 폭력을 휘두를 정도로, 측은지심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기능이 완전히 마비된 존재인 라티프는 대체
어떤 인간일까? 아마도 그는 그 자신이 어린 시절에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누구로부터도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인간일
것이다. 사랑과 연민을 느낄 수 있는 가슴이 시멘트처럼 완전히 굳어버린
지극히 불쌍한 인간.
폭력은 상처를 남긴다. 라티프의 지독한
폭력은 아이에게 지독한 상처를 남겼다. 애비의 호된 꾸지람도 아이에게
상처를 남겼을 것이다. 가해자가 된 애비는 제 딸 마음에 입힌 상처를
저 자신이 아파하며 하루를 보낸다. 아파할 역량도 가지고 있지
못했을 라티프의 인생이 정말로 불쌍하다. 나는 악귀와도 같은 라티프와
나 자신이 엄청나게 다른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위치에
나를 넣어주지 않으신 관대한 운명의 신께 감사할 따름이다. 나는 살림이라는
불행한 아이를 동정하는만큼이나 악귀같은 라티프를 동정한다.
무슨
뜻이나 가르침 같은 것이 있어서 쓴 일기가 아니다. 주절주절댐으로써
형편없는 나 자신을 또 한 번 용서해주려고 끄적거렸을 뿐이다.
곧 어린이 날이다. 나는 직업적으로 금전적으로 큰 희생을 감수하며
내 딸들을 위한 특별한 계획을 잡아놓았다. 이 또한 오직 부끄러운 일일
따름이다. '직업적, 금전적 희생' 따위가 아니라, 진정한 마음의 희생을
베풀 줄 아는 애비가 못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제 자식에게만
큰 돈을 써대며 파키스탄의 불쌍한 아동들은 외면하는 부모가 되는
것 역시 부끄러운 일이다. 부끄러우니 술은 먹지 말아야겠다. 술
마시고 있는 제 모습이 부끄러워 술을 마신다는, 어린왕자에 나오는
바보 어른이 될 수는 없으니.
반성문 다 썼다. 물론 딸에게
제출할 것은 아니다. 나의 신께서 읽어주실 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