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

운전행태 진단 (2007/6/10)

젊은 시절 나의 운전 행태를 두고 아내는, '마치 컴퓨터 게임하듯이 운전을 한다'며 힐난했었다. 과연, 나는 차를 매우 빨리 몬다. 이십대 중반까지는 사고도 여러 번 냈었다. 자동차 운전대를 미국에서 처음 잡아본 이십대 초반에는 스피드에 매혹돼서, 카 레이서들을 흠모하기도 했었다. 카 액션을 다루는 영화는 빼놓치 않고 봐왔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스포츠카를 가졌었다면 옛날에 저 세상에 갔을 거야." 포르셰의 엔진 소리를 들으면 심장이 쿵쿵 뛰었었다 - 한 번도 몰아보지는 못한 차지만.

그러나 이제는 나이를 먹어가며 더 이상 스포츠카 같은 걸 동경하지 않게 됐고, 내가 지금 몰고 다니는 차는 미국에서는 가족주의의 대명사처럼 불리우는 '미니 밴'이다. 이제는 '패스트 앤 퓨리어스 도쿄 드리프트'와 같은 십대용 영화나 보면서 스피드 레이싱에 대한 욕구를 해소하곤 한다. 또는 '니드 포 스피드' 같은 컴퓨터 게임을 몇 달에 한 번씩 즐기기도 한다.

그런데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나는 지금도 결코 운전을 얌전하게 하는 인간이 못됀다. 둔중한 미니밴을 쏜살같이 몰고 다닌다. 처음 장만했을 때부터 애지중지 길을 잘 들인 탓인지 몰라도, 점잖아 보이는 미니밴이 웬만한 세단들보다 더 빠르다. 물론 평균 속도는 이삼십대 때에 비해서는 많이 떨어졌다. 또 거의 이십 년 가까이 무사고 운전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나의 방정맞은 운전 습관이 사라져버린 것은 아니다.

운전을 전자오락하듯이 한다는 표현은 적확하다. 요즘 테레비전에 나오는 한 자동차 광고에는, 거대한 영웅의 풍모를 지닌 선 굵은 배우 송일국이 남의 스포츠카에게 추월 한 번 당한 것에 대한 보복이나 하는 밴댕이 소갈딱지로 변신한, 유치하기 짝이 없는 스토리가 등장한다. 그 광고 보며 혀를 끌끌 차고 앉아 있는 나 자신이 바로 그렇게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라는 점을 자각하기까지에는 매우 오랜 시간이 소요됐다. 나도 차를 몰고 다니며 남들과 경주를 벌인다. 항상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때때로 그러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다. 머리털이 희끗희끗해진 나이에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인간이 육중한 미니밴을 몰면서 스포츠카들과 도로에서 경주를 벌인다. 때로는 '이기고' 기뻐한다. 때로는 '지고선' 분해한다. 이 철없는 인간이 언제나 진정으로 성숙할 것인지...

차를 모는 것의 목적은 목적지에 다다르는 데 있다. 안전하게. 죽거나 불구자가 돼서 다다르는 것은 차를 모는 것의 본질적인 목적에 포함돼있지 않다. 그러나 나는 그 본래의 목적을 때때로 망각하고는, 마치 카레이스에서 이기는 것이 목적인 양 착각에 빠져버린다. 규정 속도를 훨씬 뛰어넘어서 차선을 이리저리 바꾸며 내달린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제는 그래도 좀 늙은 까닭에 자신이 착각에 빠져있음을 알아차리는 때도 있다는 점이다. '이크,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야!' 때로 이런 내면의 경고가 들리면, 꾹 밟고 있던 액셀러레이터에서 발을 슬그머니 떼고 추월 차선에서 주행 차선으로 물러남으로써 경쟁차에게 승리의 자리를 내준다.

나의 이런 한심한 문제아적 운전행태가 실은, 우리네 인생살이에서는 매우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많은 사람들이 경주하듯이 살고 있다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이라는 레이스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남들보다 앞서 나아가서 우승 트로피를 타기 위해서 삶을 질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그러니 우리의 교육이 이 모양 이 꼴인 것이 당연하지. 그런 삶의 경쟁적 레이스가 인생의 본래의 목적이었던가? 이곳에 태어나서 살다 가는 우리네 삶의 본래의 목적이 남들과의 경쟁에서 이겨서 1등을 차지하는 것이었던가? 그 경쟁이란 생존 경쟁인가, 탐욕의 경쟁인가? 나는 기껏 그런 경주에서 이기기 위해 태어났던가? 인생의 본래 목적 같은 건 아무 상관이 없다, 난폭한 레이스에서 사고를 당해 불구가 돼건 말건, 중요한 건 이기고 보는 것이다. 남보다 더 많이 벌고, 더 큰 집에서 살고, 더 좋은 차를 몰며, 더 인정받으며 살기 위해서 이겨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인생의 본래의 목적이었던가? 본래 목적 같은 건 이미 잊은지 오래다.

인생의 본래의 목적은 무엇이었던가? 정녕코 그것이 타인들과의 생존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었던가? 혹시 경쟁, 또는 경주라는 것은 삶의 본래의 목적에 기여하기는커녕, 그것에 위배되는 것은 아닌가? 내가 치열한 경주 속에서 나 자신을 잃고, 악귀와 같이 변모하고, 또는 속도를 못이겨 전복돼거나 남과 충돌해서 치명상을 입는다면, 그런 경주가 삶의 본래의 목적에 기여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아니,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 경쟁이라는 것은 진짜로 있는 것인가, 아니면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어지러운 나의 마음이 만들어낸 가짜인가? 삶의 본래의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간주되는 소수의 인물들은 그런 타인과의 경쟁에서 이긴 이들인가, 아니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이들인가? 타인과의 경쟁은 과연 얼마나 진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일까?

도대체 삶의 본래의 목적이란 게 무엇인가? (이 해답은 스스로 찾아내야만 하는 것!)

이 중대한 질문을 까맣게 잊은 채 그저 남들보다 더 잘나가기 위해 매 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은, 운전의 본질적 목적은 까맣게 잊고는 자동차 경주나 벌이고 있는 한심한 한석훈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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