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위기

인류, 그리고 나 (2007/4/7)
© Suk Hoon Han
작년 봄, 황사가 심했던 어느 날 강의 때, 학생들에게 혹시 이 심한 황사 현상과 나라는 개인 사이에 어떤 관련성이 있겠느냐고 질문했다. 엉뚱한 선생의 질문에 어리둥절해 하는 학생들에게 혹시 나의 소비 욕구와 황사가 관련이 있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더욱 더 어리둥절해 하는 학생들에게 내가 제시한 가설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자본주의 경제 속의 소비자로서 더 많은 재화에 대한 욕심을 많이 가지게 되면 될수록, 그 수요의 큰 부분을 2차산업의 공장에서 공급하는 상품으로 채우게 될 텐데, 그렇다면 지금 '지구의 공장'을 자임하고 있는 중국의 산업화와 도시화 및 '개발'은 더더욱 가속화될 테고, 그 결과 중국이라는 땅덩어리의 황폐화로 인하여 갈수록 산림의 면적은 축소되는 반면에 사막의 면적은 확장되어, 더 많은 사막의 모래먼지가 우리나라로 날아오게 되지 않을까? 즉, 지금 우리가 황사로 인해 고통받는 데에는 우리 탓도 어느 정도 있는 것 아닐까? 이런 가설을 제시한 바로 며칠 뒤, 한 과학자가 신문에다 중국의 황사 현상을 인간이 초래한 것으로 규정짓는 것은 뭘 모르는 소리고, 사막화라는 것은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자연 현상으로 봐야 한다는 글을 기고했다. 참 내, 그 양반 내 강의를 엿들었을 리도 없고(헌데, 내가 강의했던 바로 그 대학의 교수이시기는 하다), 선생 체면 한 방에 구기게 만드는구만... 하고 투덜대며 나는 그 다음 주 수업 때 학생들에게 그 과학자 선생의 견해를 전해주고, 지난 번 내 말은 그저 하나의 가정으로나 여겨달라고 변명했다. 교육 사상이나 가르치는 내가 생태 전문가도 아니고, 문외한이 공상의 나래를 한 번 펼쳐본 것에 불과한 에피소드였다. 전문가에게 한 방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생태위기에 대한 개인의 책임론을 견지하고 있다. 지금 세상이 돌아가는 정황을 봐서는 나 하나라도 잘하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는 생각에서다. 미국은 쿄토 의정서 합의를 끈질기게 거부하고 있고, 지구 온난화로 인한 환경 대재앙에 대한 UN의 경고 역시 미국과 중국은 애써 외면하려 하며, 우리나라도 별 수 없이 경제발전의 논리로 '선진국'과 강대국들의 노선을 좇고 있는 작금의 정황을 볼 때, 인류의 이성의 힘이 집약된 과학자들의 UN 선언은 폭주 기관차와도 같은 기업자본의 확장 욕구와 그것을 충실히 대변하는 정부들의 독주를 멈출 수 있는 힘을 지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녹색 이념의 기치를 들고 활발하고도 양심적으로 정부와 기업을 비판하는 단체들을 현명한 안목을 가지고 지지하는 것은 생태 파괴를 막기 위하여 개인이 할 수 있는 중요한 일일 것이다. 나는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우리의 의식을 바꾸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생태계에 대한 우리의 의식을 바꾼다는 말은, 우리가 생태계를, 나무와 풀과 꽃과 짐승들을 구체적인 생명체로 느낄 수 있도록 변화돼야 함을 뜻한다. 구체적인 생명체로 느낀다 함은 예컨대, 나뭇가지 하나를 꺾을 때 아픔을 느낀다는 말이다. 숲을 불도우저로 밀어붙이고 '개발'하는 것을 볼 때 구체적으로 심장에 통증을 느끼고 슬퍼한다는 말이다. 내 관찰로는, 많은 이들이 이렇게 느끼는 능력을 상실했다고 본다. 인간을 생태계의 일부로 여기고, 후자의 파괴가 자동적으로 전자의 파멸을 초래함을 인식할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동물과 식물의 존귀함을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하는데, 현 지구의 많은 이들은 자본주의적 경제발전과 추상적 과학주의 정신에 함몰되어, 그렇게 느낄 수 있는 선천적인 능력을 상실했다고 본다. 현대인은 느끼고 볼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한다. 느낄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을 때, 경제 논리는 우리로 하여금 자연을 개발의 대상으로만 바라보게 하고, 과학 지상주의는 자연을 존경과 애정이 결여된 '객관적'이고 차가운 시선으로만 분석하게 만든다. 'All that glitters,' 세상의 번쩍거리는 모든 것들, 그것들이 다 황금은 아니다. 진짜 보물인 진실로 가치있는 삶은 전혀 번쩍거리지도 않는다. 경제지향적 과학과 자본이 인간의 눈과 귀를 멀게 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가짜 황금을 좇게 만들고 있다. 우리가 좇게 된 것은 돈, 경쟁력, 탐욕이고, 그것들을 움켜쥐기 위한 투쟁을 위하여 기꺼이 우리의 영혼은 저당잡혔다. 현대인의 삶에서 행복을 발견하기가 그토록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제는 인간의 눈먼 탐욕이 점점 켜져 급기야 영혼은 고사하고 육신마저 제대로 보전하기 어려운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우리의 탐욕을 대변하는 우리의 자동차들과 공장과 상품들이 내뿜는 열기가 어머니 지구의 표면을 점점 달구어, 온갖 기상이변이 속출하고 수많은 생물이 사라질 위기에 봉착했음을 우리의 가장 밝은 눈인 과학자 집단이 손가락으로 딱 꼬집어서 가리키고 있음에도, 우리는 우리의 삶의 방식을 양보하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잡지 타임의 이번 주 특집 기사는 생태계 회복을 위하여 개인이 할 수 있는 51가지의 구체적 방법을 다루고 있는데, 그 제목은 '지구 온난화 생존 가이드'이다. 아마도 이런 구체적인 방법을 실천하는 것이 가치있는 일일 테지만, 나는 근본적으로 삶에 대한 인간의 의식이 변화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가 삶에서 지향하는 바가 물신(物神)이나, 권력, 또는 남보다 더 잘 먹고 잘 사는 것 등등이 아니고, 우리에게 주어진 지구와 지구의 생명체들을 은총으로 감사히 받아들이고 그것과 평화로이 공존하는 동시에,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되기 위해서는, 행위에 앞서 의식이 변화해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우리의 의식의 변화를 위하여 일단, '나 하나만이라도 잘 하는' 것이	© Time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잘 하는 사람의 수가 많아져야 함은 당연지사다. 하버드 대학 학부의 'Global Values 101'이라는 강의에 초빙된 법학자 마사 미노가 한 다음의 말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질문: 이 세계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선생을 따라서 법학 학위를 따야 할까요? 마사 미노: 제가 드리는 조언은 법대에 가지 말라는 겁니다. 법대는, 제 경우처럼 시간을 들여 씨름하고 싶은 대상이 법적인 것들일 때만 의미가 있습니다. [중략] 그러나 당신이 이런 쟁점들에 입각해서 세상에 변화를 가져올 길을 찾고 있다면 훨씬 즉각적이고 크게 필요한 것은 사람들 의식에 영향을 끼치는 겁니다. 법은 이런 일을 하는 데는 제한된 수단입니다. 영화 극본을 쓰거나 초등학교 교과 과정에 관여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겁니다. 스스로에게 물으세요. 이 세계와 폭력 그리고 인간 존엄성에 관한 여러분의 생각을 형성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경험이 무엇이었는가? 당신이 지니고 있는 이미지는 무엇인가? 당신이 지닌 생각은 무엇인가? 역사에서 펼쳐지는 사건들은 아마도 사람의 정신에서 가장 지울 수 없는 것일 겁니다. 그러나 이에 못지 않게 영향력 있는 것이 대중매체가 전하는 이미지입니다. 여기서 제가 생각하는 건 뉴스와 함께 영화와 텔레비전입니다. 영화 극본을 쓰려고 법대에서 학점을 딴 학생들을 몇 명 아는데, 그 가운데 한명은 이미 극본을 팔기도 했습니다. 희곡을 쓰세요. 소설을 쓰세요. 기사를 쓰세요. 록 비디오를 제작하고요. 사람들의 의식에 영향을 끼칠 방법들을 알아내세요. - 브라이언 파머 외 엮음, 『오늘의 세계적 가치』 (문예출판사, 2006), pp. 216-217 수많은 수재들이 고시 패스해서 법관이 되고 관리가 되려 앞만 보고 질주하고 있는 이 세상에다 대고, 밥줄도 보장 못해줄 희곡과 소설이나 쓰고 앉아 있으라고? 굉장한 드리머, 이상주의자 법학자이시다. 그러나 알아내야만 한다, "사람들의 의식에 영향을 끼칠 방법들"을. 인류를 살리고, 생태계를 살리기 위해서는. 왜 꼭 다 살려야 하는가? 필연적으로 소멸하는 세상의 모든 존재들은 슬픔을 품고 있고, 슬프게도 우리 모두는 지상에서 스러질 것이지만, 지상에서 부여받은 은총의 순간만큼은 우리의 본성인 사랑처럼 밝고, 빛나고, 활기차고, 아름답게 있기 위하여, 우리가 살아 숨쉬는 동안 최선을 다해서 생명을 가꿔야 하니까. 저 위에 써놓은 제목, '인류, 그리고 나'는 너무 추상적으로 들린다. 허나 딸들을 키우기 시작한 이래로 '인류'라는 말은 내게는 더 이상 추상적이지 않게 되었다. 내딸과, 내딸들처럼 귀한 세상의 아이들이 살아갈 21세기 후반은 내게는 절실한 현실일 뿐이다. 그렇다, 나는 삶과 생명에 집착한다. 그것에 대해 초연한 도인이 될 생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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