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수행

일상의 수행 (2007/1/28)

내가 기성 종교들에 등 돌리고 '나 홀로 수행'에 접어든 지도 이미 여러 해가 지나고 있다. 스스로 선택한 길에 대하여 지금껏 일말의 후회도 가져본 일이 없다. 물론, 내가 선택한 독자적 수행이라는 생활 방식이 모든 이에게 적용될 수는 없겠으나, 그것이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될 가능성이 높다고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객관적인 배경으로는 오늘 날, '영적 소비자'들을 기존 '종교 시장'이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나라 종교 신도 수에 대한 조사 결과들은 지속적으로 개신교 인구의 감소를 보고하고 있으며, 불교는 대체로 현상유지하고 있고, 천주교는 증가세를 보이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불교를 전통적 상수로 간주할 경우, 개신교로부터 이탈한 다수 '소비자'들은 천주교 이외에 그다지 구미를 당기는 새 성소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신흥 '영적 소비자'들의 영성 추구에 대한 성향이 크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종교 전통의 고수 보다는,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삶 속에서의 영적 충족을 바라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실은, 그것이 나의 영성 추구의 성향이다. 그래서 나의 방식 같은 것에 흥미를 느낄 '소비자'들도 소수나마 있을 것이라 추측하게 된 것이다.

나는 독자적 수행방법의 선생도 아니고, 전문가도 아니며, 그저 평범한 초보 수행자에 불과하다. 따라서 나의 방식을 타인에게 전파하고자 하는 야심 같은 것은 전혀 없다 - 내가 내 수준을 잘 알고 있으므로. 그러나 나의 방식이 하나의 예가 되어서 다른 이들이 자신만의 방식을 추구하는 데 일말의 통찰이라도 제공해준다면 좋겠다는 생각 정도는 갖고 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또는 신께서 추인해주신 내가 바라는 바는) 내 방식의 전파가 아니라, 보다 많은 이들의 영적인 삶의 추구이므로, 어떤 종교 전통에도 진심으로 귀의하지 못하는 이들 중에서 내 방식을 슬쩍 보고나서 자신만의 영적인 삶을 추구하게 되는 이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또한 '자신만의 영적인 삶의 추구'가 반드시 기존 종교의 바깥에서만 실행되어야 하리라고 믿는 것도 아니다. 실은, 기존 종교 안에서 '자신만의 영적인 삶의 추구'가 뿌리내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까지 믿는다.

나의 독자적인 수행은 일상 속에서의 수행이다. 삶의 모든 조각들과 흐름을 수행으로 간주하고, 일상의 모든 것을 명상하는 방식이라 하겠다. 따라서 일요일에 한 번 하는 것도 아니고, 산 좋고 물 맑은 데 가서 결가부좌 자세를 갖추고 하는 것도 아니다. 나의 삶 전체가 영적 수행이 되도록 노력하는 방식이라 하겠다. 일상 속의 수행, 모든 것을 명상하기에는 특정 우상도, 특정 스승도, 특정 경전도 없다. 바꿔 말해서 삶과 현상 전체가 스승이자 경전인 셈이다. 세속이 성전임을 알아볼 수 있기 위해서 나는 모든 일상을 수행으로 만들어야만 한다.

그것이 가능한가? 실은, 나 자신 그것을 완전히 실천하지도 못하고 있는 주제에 말이다. 그것이 가능함을 나는 100% 믿는다. 믿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나를 좌절시켜도 멈추지 않고 나아갈 수 있다. 나의 믿음의 근원은 이성이 아니라 계시에 터한 신앙이다. 문제는, 이 믿음만큼은 설득으로도, 강요로도 타인에게 전해질 수가 없다는 데 있다. 그래서 나는 그저 나 자신을 예시할 뿐이다. '내 사는 꼴을 좀 보시오, 봐서 괜찮아 보이거든 당신도 한 번 참고해보시오.' 그 이상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 꽤 많은 책을 뒤지고 사람들에 관해 공부해봤지만, 조금도 알게 된 바가 없다. 특히 강권에 가까운 선교 행위는 도움이 되기는커녕 해만 끼친다고 본다. 나는 하나의 보기가 될 수 있을 뿐이다. 그 '보기'가 형편없다면 아무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을 것이다. 나는 실로 형편없는 보기임에도 불구하고(겸허가 아닌 정직한 관찰) 스스로 빛임을 믿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형편없는 보기는 아닐 것이라 짐작해본다.

나는 왜 수행을 하는가? 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수행을 통해 내 본질을 살려내지 않고서는 결코 참된 평화와 행복을 누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실용적(pragmatic)이다, 나의 수행의 목적이란 것은. 삶은 고해이다. 나는 내 본질에 대한 집중없이 그 고해 속에서 건강하고, 평화로우며,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전혀 알지 못한다. 나의 본질에 집중하는 수행 없이는 아무 것도 치유할 수 없고, 고통만 이어질 뿐이다. 본질에 대한 집중은 내적인 변화를 수반한다. 내적인 변화는 때때로 경전을 읽거나 성소에 들른다고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를 삶 전체에 온전히 바치지 않고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를 바쳐 내적인 변화를 이룰 때, 나의 본질, 또는 참된 나에 집중할 수 있을 때, 나의 삶이 '실용적으로' 개선될 뿐 아니라, 필연적인 삶의 요소인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나의 태도가 깊숙한 차원에서 정돈된다. 나는 이러한 변화와 정돈의 맛만 본 정도의 초짜일 뿐이다. 그러나 나같은 초짜도 한 번 맛본 수행의 결실을 온전히 믿고, 또 제대로 알고 있다.

일상 속의 수행이란 어떻게 하는가? 한 마디로, 삶에서 내게 다가오는 모든 것, 모든 사건, 모든 이들을 영적인 차원의 수행의 장치로써 대하는 것이라 하겠다. 영적인 차원이란 육체와 정신을 뛰어넘어, 죽음을 겪고서도 영속될 가장 본질적인 '나'의 차원을 말한다. 그러한 나의 영성은 과학만으로 알기 어렵다. 이성과 지성과 감성 등등 나의 모든 기관들을 총동원하여 알아내려 해야 한다. 자신의 영성을 부인하는 이에게는 수행과 명상을 이야기하기가 어렵다. 내가 육체적 쾌락을 원하고 고통을 회피하는 것이 전부인 존재가 아니라, 쎅스와 돈과 명예나 지적 허영 뿐만이 아니라, 그보다 더 높고 고귀한 무언가를 희구하는 존재임을 감지하는 것이 나의 영성을 식별해내는 첫 걸음일 것이다. 나를 영적인 존재로 인식할 때, 일상에서 내가 조우하는 모든 것들에 영적인 차원의 의미가 부여된다. '이 사건은, 이 인물은, 본질적으로 나에게 금전적 또는 심리적 해를 끼치기 위해서 등장한 것이 아니라, 보다 깊은 하나의 가르침을 주기 위해 다가온 신의 사자, 또는 천사이다'라고 보는 것이 일상을 영적인 차원에서 바라보는 태도이다 - 단기적으로는. 장기적으로는, 내 삶의 여정이 영적인 성숙이라는 지향점을 향하여 나아가는 길임을 알아차리는 것이라 하겠고. 모든 것을, 모든 타인을, 모든 여정을 이런 식으로 바라보는 것은 광인의 행동과도 같이 여겨질 지도 모르나, 실은 그 반대이다. 어떻게 그러한지 구체적으로 논하자면 한이 없다.

일상의 수행이라는 것이, 말이 쉽다. 허나 기성 종교에 귀의하여 복종하고 헌납하는 것에 비하여 결코 더 쉽지는 않다. 내가 스스로 다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3자가 시켜서 하는 것이라면, 이미 더 이상 독자적인 수행인 일상의 수행이 아니다. 그래서 일상의 수행이란, 통념상 '구도'라고 부르는 삶의 방식과 기실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는 점을 조심스레 밝힌다. 결국 나 자신이 그 어마어마하게 성스러워 보이는 단어인 '구도자'가 가리키는 인간이 되는 것이란 말이다. 헌데, 나는 실은 우리 모두가 원래 '구도자'임을 믿는다. 단지 모르고 있을 뿐이지, 일상 속에 파묻혀서 완전히 망각하고 있을 뿐이지.

기독교는 우리가 예수처럼 완벽해질 수 있음을 전제하고 있고, 불교는 우리가 붓다가 될 수 있음을 전제하고 있다. 인간의 신성, 또는 초월성을 긍정한 것이라 하겠다. 이를 보다 현대적 언어로 표현한 나의 애장 참고서, '신과 나눈 이야기'의 한 구절을 예시하고자 한다:

네 감정을 따르라는 것이 네가 얻고 있는 지침이다. 네 영혼에 귀를 기울이고, 너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라. 내가 어떤 선택사항이나 견해나 관점을 네게 제시하더라도, 네가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의무는 전혀 없다. 만일 동의하지 못하겠으면, 동의하지 마라. 바로 이것이 이 훈련의 유일한 목적이다. 다른 것들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네 의존을 통째로 이 책에 대한 의존으로 바꾸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네가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바로 지금 이 순간의 ‘나(神)’다. 나는 생각하는 너다. 나는 소리내어 생각하는 너다 ... [이 책은] ‘가장 높은 출처’에서 왔다. 하지만 네가 아직도 믿지 못하는 한 가지 사실이 있으니, ‘가장 높은 출처’는 바로 너라는 점이다. 그리고 네가 아직도 확실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한 가지 사실이 있으니, 그 모든 걸, 네 삶의 모든 것을, 지금 이 자리에서 창조하는 것도 너라는 점이다 ... 네 현실을 창조하는 것은 언제나 네 새로운 생각임을 잊지 마라. 언제나 그러함을. [II-347~48]

나는 기본적으로 간디와 달라이 라마의 종교관을 공유하고 있다. 즉, 모든 종교는 궁극적으로 하나의 진리를 가리키는 도구이며, 각기 나름대로 자신이 터한 사회문화적 배경에 걸맞는 장점들을 보유하고 있다는. 따라서 어느 종교에도 반대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단지 각 종교가 갈수록 자신의 근원적인 메시지와는 멀어져서, 신도 수 늘이고 헌금 걷기에만 열을 올리거나, '수능합격기원' 기도회 따위로 수십만원씩 챙기는 둥, 지나치게 이기적 기복성이라는 사회문화적인 배경을 이용하게 되는 세태를 못마땅해 할 뿐이다. 아직은 우리 사회의 제반 종교에 회생의 가능성이 엿보이는지, 그것을 나는 잘 모르겠다. 이에 대해 나보다 더 신랄한 의견을 드러내는 '신과 나눈 이야기'의 일부를 예시해본다:

[조직된 종교가] 너희에게 좋지 않기 때문이다. 조직된 종교가 성공하려면, 사람들이 그것을 필요하다고 믿게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다른 어떤 것을 믿으려면, 그들은 먼저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어야 한다. 그러니 조직된 종교의 첫째 가는 과제가 너희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게 만드는 것이다. 두 번 째 과제는 너희가 지니지 않은 대답을 종교가 지니고 있다고 여기게 만드는 것이고, 세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과제는 너희가 그것의 대답을 아무 의문 없이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것이다. 의문스러워 할 때, 너희는 생각하기 시작한다! 생각하기 시작하면 너희는 ‘내면의 원천’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종교는 너희가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둘 수 없다. 자칫하면 종교가 고안해낸 것과 다른 대답에 너희가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II-397]

어쩌면 초기부터 이 싸이트 방문하신 길벗님들께는 새삼스런 이야기를 되풀이한 것일 수도 있겠다. 그저 새로이 방문하시는 님들과 최근에 나를 알게 된, 호기심을 가진 제자님들을 위하여 나의 신앙 생활의 입장을 재정리해본 것 정도로 여겨주시면 좋겠다. 부디 내가 '형편없는 보기'로서 살다 가지 않도록 도와주십사 신께 기도한다. 이러한 두려움, 떨림, 겸양, 비겁, 오만, 희망, 희구 등등의 모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 껴안고 갈 수 있는 것이 수행의 길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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