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
방문기 (2007/12/10)
©
Sukhoon Han
멋쟁이 K, 존경하고 부러워도 하며, '쁘띠' 시시아빠는 인연에 대한 고마움에 고개숙입니다. ('쁘띠'는 쁘띠¹, 시시는 저의 딸 애칭) 25년 전에 서강대에서도 딱히 붙어 논 적도 없던 K, 25년 동안 사실 몇 번 떠올려보지도 않았던 친구, 하지만 이번에 다시 만났을 때 이 친구가 뿜어내던 인연의 포스의 강렬함 때문에 괴산까지 찾아가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이런 현상을 '내가 스승을 만날 때가 되었나보다'라고 제멋대로 해석합니다. 이런 충동에 순종하여 그 부름을 따라가보면 꼭 중요한 가르침을 주시는 스승이 계시더군요.
뭐, K를 스승으로 모신다는 얘기가 아니라, 三人行 必有我師라는, 실은 항상 그러한 상태, 그러나 늘 삶속에서 까맣게 잊고 있는 그 상태를 새삼 자각해보는 귀중한 기회를 얻었다는 차원에서 하는 말입니다만.
벗님들께선 얼마 전에 다녀들 오셨겠지만 이번에 제가 찾아가보니, K가 널따란 뜰이 있는 단독주택에 홀로 입주하셨더군요. K는 이 셋집을 잘 꾸며서 뜰에 바베큐 그릴도 차려놓겠다는 둥, 딴에는 그림같은 전원생활을 꿈꾸고 있는 듯 했습니다만, 현재 상태로는 흉가 호러 관광코스로 적절할 정도여서 과연 언제나 그 꿈이 실현될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하여간, 닭치고, 마을사람들과 정나누며 살고, 음악을 꿈꾸고, 아이들 가르치고, 돈 많이 벌어 학교를 짓겠다는 성스러운 계획까지 품고 살고 있는 이 친구를 보면서, 사람이 한 평생 살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새삼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도 사십줄 들어선 나름대로 열심히 살면서 공부하고 가르치기도 하고 있지만, 그러한 저의 한계와 과오와 위선 등등도 새삼 다시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람이 맑으면 다른 사람들을 비춰주는 거울 역할을 하나봅니다. 역시 마음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가보니 스승이 계시더군요.
한 가지 실망스러웠던 점: 단독주택 내부가 거의 폭격맞은 직후 상황에 가까웠던 탓에, K가 그렇게 광고했던 치킨 요리 맛을 보지 못했다는 것. 어쩌면 이건 K가 제 닭들을 하도 사랑하여 차마 제손으로 잡아먹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 특히 K가 제 닭들을 바라보는 애틋한 시선을 감안해볼 때. 아침에 끓여준 북어국을 봐서 치킨 대접 안해준 것을 용서해주기로 했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K네 바로 옆 동네에 화양구곡도 있고 선유동 계곡도 있습니다. 제가 방문한 덕분에 K도 오랜만에 선유동 계곡엘 한 번 가봤다더군요. 아마 양계장 일이 굉장히 바쁜가 봅니다. (고생하는 벗을 위해 보약 다려서 보내준 S의 마음도 엿보고 왔습니다.) 선경(仙境)을 끼고 사는 멋쟁이 친구가 그리운 벗님들 계시다면, 언젠가 9인승 제 차에 모시고 청천면에 또 한 번 다녀올 수 있으면 좋겠네요. 단, K 새집이 좀 정리도 되고, 심각한 헌집증후군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나야 집주인 포함하여 3인 이상 다리뻗고 누워 잘 공간이 생길 터이니, 상당 기간 경과한 이후여야 하리라고 예상합니다.
K 카메라로 함께 기념 사진도 찍었는데, 앞으로 여기 카페에서 볼 수 있겠죠. 지금은 아마 K 컴퓨터가 인터넷 연결이 안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행기 더 적을 시간이 없군요. 모두들 연말 음주 작작들 하시고 건강한 옥체들 보존하소서. (스스로에게 하는 얘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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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만에 만난 대학동창의 시골 집에 다녀와서 동창회 카페에 적어놓은
감상문입니다.
* ¹ 쁘띠 부르주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