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광수론 (2007/7/1)
 



© Suk Hoon Han                                                                                                                                                                                 
 
 

1. 가짜 나에게 주는 경고

'신과 나눈 이야기'에 나오는 다음 구절을 나는 늘 잊지 않고 살아가려 한다:

눈을 열고 귀를 기울여라. 네가 듣는 노랫말과 네가 읽는 다음 번 신문기사와, 네가 보는 다음 번 영화의 줄거리와, 네가 만나는 다음 번 사람의 우연한 중얼거림에. 혹은 네 귀를 간지럽히는 다음 번 강과 바다와 바람의 속삭임에. 이 모든 장치들이 다 내 것이다. 이 모든 길들이 다 내게로 열려 있다. 네가 귀담아 듣는다면 나는 네게 말할 것이며, 네가 나를 초대하면 나는 네게 갈 것이다.
- 신·나·이 1, p. 100


오늘 아침에 조간을 들춰보다 시조 한 수가 눈에 들어왔다:

검색대를 지나며 - 최병상

반입금지 돌멩이를 가방에 몰래 숨겨
표정 없는 검색대와 맞서는 탐색의 순간
불현듯 불기운이 화끈 명치끝을 때린다.
양파껍질 벗기듯 무채색의 전자파가
샅샅이 훑고 가다 일으키는 경보음
내 삶의 어두운 구석이 곧장 붙들려 나온다


서양 교육철학 강의할 때 소개하는 '우리 내면의 빛과 어둠 사이의 화해'가 떠올랐다. 어린 대학생들은 대체로 이 개념을 어려워 한다. 실은, 나이 먹은 중년에게도 쉬운 개념인 것만은 아니다. 시인은 "내 삶의 어두운 구석"을 늘 의식하고 사는 이인가 보다. 내 삶의 어둠을 검색대에 끄집어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검색대에 올려놓는다 함은 내가 소속된 사회에 내 치부를 공개한다는 것인데, 그렇게 어둠을 끄집어내는 것은 곧 '나'의 사회적 죽음이 될 수도 있다. 헌데, 문제는 '나'를, 사회적으로 형성된 가짜 나를 죽이지 못하고는 참된 나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따라서 수행하는 이에게는 검색대가 필수적이다.

신문을 또 한 장 넘기니, 어떤 책의 다음과 같은 구절이 인용돼있었다:

우리가 악몽의 수렁 속으로 깊이 빠져들어 그것에 사로잡힌 노예가 된다면 삶은 송두리째 지옥이 된다. 그리하여 생명이 떠나버린 그 장소들, 거주의 세월이 마감된 그 해골들은 우리가 가는 길의 경계표지들로 변한다. 우리에게 말없이 주의하라, 정신 차려라, 순간은 지나가고 돌아오지 않는다고 경고하는 경계석들. 그 순간이 덧없이 흘러가도록 버려두어서는 안 될 일이다. - 마르크 드 스메트,『침묵 예찬』


윗글을 쓴 이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참선 수행 전문가"란다. 참선 수행이 "세계적으로 이름"났다는 것이나, 참선 수행의 "전문가"라는 것이나, 둘 다 조금 어울리지 않는 표현인 듯 싶다 - 실은, 깊은 차원에서 서로 어긋나는 범주를(소유론적 세속성과 존재론적 구도수행을) 함께 쓰고 있는 것 같다. 어쨌든, 나는 이 '전문가'님의 경고를 흘려 듣지 않았다. 그가 말하는 "악몽," "지옥," "해골," "경계석" 등은 사람에 따라서 오만 가지의 다른 의미를 내포할 수 있겠다. 나의 경우에는 이 경고를 읽으며, 가짜 나를 영속화하고 싶어하는 욕망에 대한 내 두려움을 읽었다. 이렇게 고의적으로 난해하고도 추상적으로 쓰는 것은, 남들이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기를 바라기 때문일 게다. 가짜인 나는 남들이 내 내면의 어둠을 엿보기를 전혀 바라지 않는다.

진짜인 나도 그러할 것인가?

같은 신문의 옆 장에는 또 다음과 같은 글귀가 실려있었다:

초심(初心)이라는 말을 초심처럼 사용하는 이가 몇이나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현실을 핑계로 내세워 본래 품었던 의로운 용기가 차츰 둔감해져 가고, 그렇게 변질되어가도 도리어 편안해하며, 자신의 몰골이 덩달아 추해지고 있어도 이를 두려워 하고 있기나 한 것일까?” - 김민웅, 『자유인의 풍경』


나의 초심은 거울이 되는 것이었다, 타인의 선함을 비춰주는. 허나 내 거울이 혼탁한데 어찌 타인의 맑음을 비춰줄 수가 있겠는가. 그래도 비춰야 한다는 것이 내가 받은 메시지다; 그것은 나에게 계시이자, 편집증이고 강박증이자, 소명이자, 자유다. 그런데 '검색대'란 기구는 선함과 맑음을 비춰주기 위한 거울이 아니라, 악과 어둠을 탐지해내는 장치다. 우리에게는 이렇게 두 가지의 다른 거울이 필요한 걸까?: 선함을 비추는 거울 하나와 악을 비추는 거울 또 하나. 아니면 진정한 거울은 빛과 선함과 사랑 뿐만 아니라 어둠과 악과 두려움까지도 비춰주게 되는 걸까? 결국은 빛과 어둠의 분리 자체가 환상임을 거울에 비춰보고 깨닫게 되는 걸까?

우리의 선한 빛을 비추는 거울이 분명히 필요하다. 우리의 어두운 그림자를 비추는 거울도 필요하다. 그래야 온전한 나를 볼 수가 있으므로 - 그런 의미에서 내 주변의 모든 이들이 내 거울 역할을 해준다, 나의 사랑도 증오도 다 주변의 사람들에게 투영되니까. 때로는 거울이 비추는 것이 빛인지 어둠인지조차도 분별하기가 어렵다. 작년에 화제가 된 '보랏(Borat)'이라는 가짜 다큐멘터리를 나는 포복절도하며 대단히 재미있게 봤는데, '너무나도' 이국적인 카자흐스탄 출신의 뉴스 앵커가 미국 문화의 여러 단층(斷層)들을 체험하는 과정이 바로 미국이라는 독특한 문화를 거울에 비춰보는 과정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인종적, 성적(性的), 사회계층적, 종교적 단층들을 비춰봄으로써 그 사회의 어마어마한 위선과 가식, 그리고 두려움이나 증오와 같은 부정적 정서들을 표출시키는 이 영화에 감탄하며, 나는 이 영화가 미국이라는 나라의 사회적 차원의 자아성찰을 크게 도울 수 있는 작품이라고 느꼈다. 그러나 어둠을 표출시키는 과정은 많은 이들에게 불쾌감을 유발할 것이다. 이는 개인적 차원의 자아성찰에서도 마찬가지다. 내 안의 어둠을 보는 것은 결코 기분좋은 일이 못된다.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 자체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고통스럽거나 무의미한 일로써 간주되는 이 시대에, 과연 그 누가 자신의 내면을 검색대에다 끄집어낼 수가 있겠나.


2. 마광수

나는 과거에 그를 정신의학상의 문제가 있는 한 개인으로 봤었다. 연세대 교수이자 소설가인 마광수의 작품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즐거운 사라'와 장미여관 운운하는 그의 글들을 지난 세기에 읽어봤었는데, 둘 다 내게 별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내가 마광수를 멀리했던 것은 그의 유별난 성적 취향 때문이 아니라 - '정상적' 성적 취향이란 게 있다고 믿지도 않고 -, 그의 소설이 내게는 별로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몇 해전이었던가, 그가 방송에 출연해서 '예쁜 애들이 공부도 잘하고, 못생기고 공부도 못하는 애들은 게을러서 그러하다'고 직설적으로 말한 것을 접하고는, 같은 교육자 입장에서 심하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나로서는 '못생기고 공부도 못하는' 학생들에게 다가가는 법을 익히는 것이 중요했다. 게다가 작년에는 그가 제자의 시 한 편을 도용한 것이 밝혀져서 세간의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다. 나는 어린 나이에 미국의 대학에서 표절에 관한 혹독한 훈련과정을 겪은 까닭에 그런 비행(非行)에 대해서 관대하지 못한 편이다. 그러나 세간의 험담이 내가 마광수라는 한 인간을 심판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섣불리 심판 않기를 잘했다. 최근에 그가 한 인터뷰에서 보여준 모습은, 마광수라는 한 개인이 우리 사회를 위해 바칠 수 있는 독특한 공헌의 특별한 가치를 여실히 드러내줫다. 나는 자신의 내면을 스스럼없이 까발리는 그의 거대함에 흠칫 놀랐다. 그가 하나의 거대한 거울이었다 - 최소한 내게는. 그 거대한 거울의 고귀함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인터뷰 전문을 여기에 갖다 붙이겠다. 괄호 안의 보라색 글은 나(韓氏)의 코멘트다.


                  


마광수“20살 연하 쫓아다녔는데 딱지 맞아”- 조선일보, 2007.6.20

“‘즐거운 사라’에 이어서 내년에는 ‘발랄한 라라’를 낼 거야. 이번에는 진짜 야한 소설이야. 사라보다 훨씬 야해.”

마광수(56·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야한’ 이란 단어에 힘을 줘서 말했다. 이제는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담배 ‘장미’를 물고 남 얘기하듯 자신의 얘기를 툭툭 던지다가도 작품 얘기만 나오면 목소리가 높아졌다. 다음 달에는 시집, 가을쯤에는 단편집과 문화비평 에세이, 내년에는 장편소설 ‘발랄한 라라’를 내겠다고 했다. [韓: 자신만의 '트레이드마크'를 고수하며, 세파에 굴복하지 않고 '야함'을 추구하는 그의 한결같음에 경의를 표한다.]

1992년 마 교수는 그의 책 ‘즐거운 사라’가 음란성이 짙다는‘혐의’로 검찰에 구속됐고, 그 해 12월 1심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1998년 복권돼 5년 6개월 만에 연세대에 복직된 그는 지난 1월 제자의 시를 도작(盜作·남의 작품을 본떠서 자기가 지은 것처럼 사용하는 것)해 다시 한번 파문을 일으켰다. [韓: 제자 작품의 도작은 명백한 죄다. 사회제도를 통해서 벌을 받고 반성을 했으니 됐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고, 순간적으로 정신나간 짓을 할 수도 있다. 나는 한두 번 그랬던 게 아니다. 내가 워낙 불완전한 인간이라 그런지 몰라도, 나는 뉘우친 그에게 돌을 던질 생각이 조금도 없다. 자신의 지역구에서 성폭력상담소를 운영하는 국회의원이 제 딸만한 여기자를 성추행하고도 세상 앞에 떳떳한 것을 '남자니까'라며 용인해주는 현 세태에 비해볼 때, 마교수의 뉘우침은 차라리 순진무구한 수준이라고 본다.]

당시 자택에서 만난 그는 잠옷 차림에 세수도 안 한 상태로 “학교에서 쫓겨나면 어떡하느냐”고 인터뷰 내내 축 늘어졌었다. 그로부터 5개월 후 자택에서 다시 만났을 때 마 교수는‘발기한 듯’ 대화 내내 활기찼다. 2개월 정직으로 징계는 마무리됐고, 다음 학기 교양 수업‘연극의 이해’를 다시 맡게 될 마 교수는 “변태를 주제로 애들을 들들 볶겠다”고 말했다.

- 5개월 전보다 건강해 보입니다.

“건강은 무슨. 당뇨도 있고, 치주염도 있어. 술은 안 하는데, 담배 때문에 죽겠어. 하루에 3~4갑 태우는데. 줄담배거든. 담배 때문에 위에 구멍 났는데도 눈 뜨자마자 담배를 찾게 되니까.”

- 아무래도 수업을 다시 맡게 돼서 그렇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도작 사건은 내가 실수한 건데, 학교가 고맙지. 그 정도로 끝내줘서. 다음 학기에는 애들을 들들 볶으려고 그래. 변태 성욕에 대해서 다루려고. 변태 성욕이란 말은 이제 성의학자들 사이에서 없어지고 ‘성적 취향’이라고 표현하지. 그래도 변태라는 말이 알아듣기 쉬우니까. 사디즘(sadism)·마조히즘(masochism)·페티시즘(fetishism)·롤리타 콤플렉스(Lolita complex) 등 이런 거 다 가르칠 거야. 옛날에는 연극의 이론도 자세하게 강의했는데, 애들이 너무 재미없어해.”
[韓: 이 정도는 그야말로 고전적인 '변태' 유형에 불과할 뿐, 세상에 변태의 유형이 얼마나 많은데... 문학으로도, 영화로도 여러 번 다뤄져 온 이런 클래시컬한 변태말고, 보다 엽기적인 변태에 관한 연구 조사를 게을리 해오신 게 아닌지. 인간이라는 심연을 더 깊이 파고들어가서 이해하고자 하는 학문이라는 과업에 있어서 변태를 외면하는 건 온당치 않다고 본다.]

- 20년 가까이 학기마다‘에로틱 판타지 쓰기’라는 주제로 학생들에게 과제를 내는 걸로 압니다.

“응. 그런데 20년 전이나 지금 애들이나 수준 차이가 없어. 지금 애들은 무지 포르노를 많이 보는 애들인데도 머리는 안 돌아가. 실망이야. 그때는 포르노 같은 게 많이 없었는데도 아주 우수한 게 나왔거든. 그 이유를 모르겠어. 아니러니 하게도 요즘 대학생은 과거보다 성생활을 많이 하잖아. 다양한 섹스 기교, 다양한 취향 이런 게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 나는 그걸 탐미적 섹스라고 하는데, 남자들은 오직 소유적 섹스만 하지. ‘여자를 내 것으로 하겠다’ 그런 거. 아직도 막혀 있는 애들이 훨씬 많아. 심지어 검열 제도를 옹호하는 애들도 많던데. 젊은 놈들이 아직도 보수적이야.”[韓: '에로틱 판타지'라는 용어도 너무 부드럽다. 난 과거에 총각들끼리 '너의 쎅슈얼 판타지는 무어냐'는 질문을 나누곤 했었는데. 그건 그렇고, "소유적 섹스"를 넘어서서 "탐미적 섹스"를 추구한다는 말에는 깊은 의미가 들어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이 세상의 모든 문제의 기원은, 우리가 모든 걸 죄다 제 걸로 소유하려고만 하는 탐욕에 있지 않겠나, 쎅스까지도 말이다. 그러나 탐미는 과연 소유를 초월하는 것일까? 마광수의 탐미가 나의 신적인 본성의 발현이라면 그러할 수 있으리라. 난 이 '신적인 본성'에 대해 아직 잘 알지는 못한다.]

- 성에 대해서 개방적이지 않다고 해서 보수적인가요.

“그러면 왜 내 욕이 나와. 나에 대한 기사가 나오면 댓글의 70%가 욕이야. 표현에 대한 사고가 트였다면‘내 책을 보면 안 된다’어떻게 이런 게 나올 수가 있겠어. 아직 개방 안 됐어.”

- 학생 성적 매길 때 ‘독창성’을 가장 중요하게 본다고 했는데요,‘도작 파문을 일으킨 교수가 어떻게 독창성을 근거로 점수를 매길 수 있느냐’는 말도 나옵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겠지. 뭐. 학생들에게 할 말 없지. 내가 미쳤지. 그 시가 마광수다운 시도 아니고. 그 시집이 450쪽짜리인데 그 시 때문에 시집이 사장되고 말았어.”[韓: 내가 그의 죄를 용서해주는 이유는, 그가 "할 말 없지. 내가 미쳤지"라고 단순 명료하게 과오를 시인하기 때문이다. 내 보기엔 그 정도의 진실성을 지닌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 새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지요?

“다음 달쯤 시집이 하나 나와.‘발가벗고 몸 하나로 뭉치자’. 표절 사건 때문에 시집을 사장한 게 억울해서. 그 시집에 나왔던 거 다시 쓰는 건 아니고, 올봄부터 쭉 쓴 게 있어. 직접 그린 그림도 같이 들어가. 가을에 단편집이 예약돼 있지. 단편은 처음 내는 거거든. 2005년에 모 신문에‘섹스스토리’라고 연재했는데, 신문윤리위원회 경고 4번 받고 중단됐던 거야. 그걸 보충해서 내는데 제목은‘손톱’으로 정했어. 올 11월에는 문화비평 에세이가 나와.‘이 시대는 개인주의자를 요구한다’라고.”[韓: 이 나라 굴지의 대학의 교수라는 권위있는 사회적 지위의 옷을 입은 이가 이토록 세상 눈치 안보고 끈질기게 그놈의 쎅스 얘기만 해대는 것이 존경스럽지 않은가? 세상의 존경 따위의 허상은 이미 차버린지 오래인, 제 멋대로만 살아가고 있는 고수다.]

- 갈수록 과거보다 수위가 낮아졌다는 말이 나옵니다.

“자꾸 걸리니까 스스로 검열을 해서 그렇지. 그런데 이번에 나올 단편집이 걱정이야. 그건 좀 야하거든. 다음으로 계획하고 있는 게 진짜 야한 소설이야.‘발랄한 라라’. 이제 사라 시대는 지났거든. 사라만 해도 지금 애들은 안 야하다고 그래. 자극이 없다는 거지. 라라는 진짜 야한 여자를 주인공으로 삼아서 구상을 하고 있어. 왜 이름이‘라라’냐고? 발음이 좋아서. ㄹ 발음.”

- 사라하고 라라하고 어떻게 다릅니까.

“라라가 더 적극적이지. 평론가들 반응이 사라도 페미니즘 소설이라서 당했다는 거거든. 한국 소설 역사상 여자가 성을 주도한 경우는 없어요. 남자가 끌고 가고 여자는 상처받고, 자살하고 회개하는 게 우리나라 소설의 기본 구성이지. 사라는 당당하잖아. 즐겁게 섹스한다는 거야. 그런데 사라보다 더 나가려고 그래. 지금은 연상녀 연하남 커플에다 호스트 바가 생겨서 여자가 남자를 돈으로 사고 그렇잖아. 그런 풍속도를 그리려고 해. 라라는 여대생인데, 요새 애 중에 가장 야한 애를 그릴 거야. 프리섹스 실천하고. 사라는 마조히스트라면 라라는 사디스트지. 팜므 파탈(femme fatale). 그런 걸 그리려고 해.”[韓: 어느 구석을 봐도 이 인물을 우리 사회의 보수계층이 이뻐해줄 건덕지가 보이질 않는다.]

-‘발랄한 라라’가 나오면 또 제재를 받지 않을까요.

“어머니나 누님이나 굉장히 뜯어말리지. 또 피 본다고. 한국은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정치 민주화는 됐지만, 문화 민주화는 오히려 악화됐어. 겁이 나긴 하는데 할 건 해야 할 것 같아서 책을 내는 거야.”[韓: 겁없는 이가 일 벌이는 건 일상이지만, 겁많은 이가 그리 하는 건 용기라 하겠다.]

-‘마광수 소설이 이제 안 팔리니까 마 교수가 더 튀어서 책 팔아먹으려고 그런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목소리가 높아졌다)웃기는 얘기하고 있네. 내가 뭐 튀려고 즐거운 사라를 썼나. 절대로 야한 책은 안 팔려요. 내가 제일 듣기 싫은 소리가 ‘팔아먹으려고 야한 거 썼지’야. 우리나라 사람들‘점잔주의’가 굉장하다니까.‘향수(파트리크 쥐스킨트 作)’나‘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밀란 쿤데라 作)’이런 게 베스트셀러야. 이런 거 골 깨지거든. 한국 사람들 유식 자랑을 해서야. 자기 검열을 해. 아주 고상한 걸 좋아해.‘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공지영 作)’,‘남한산성(김훈 作)’도 그런 거고. 이문열 작품도 그래. 실존이니, 종교니, 혹은 애국심이니 전부 거대한 것만 찾으니까. 이런 게 못 썼고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그런 것도 필요하지만 소소한 일이나 섹스와 같은 변두리 문제도 쓰고 인정해 줘야 한다고." [韓: "이런 거 골 깨지거든"! 어떻게 더 골 빠개지는 책을 써볼 수 없을까 '점잔주의'적 흉계를 꾸미고 있는 나같은 인간 들으라고 외치는 소리다. 자기 검열이 전혀 없으면 사회적 자아가 아예 기능을 못하겠지만, 또 그게 너무 심해지면 온 세상이 헛 것이 될 수밖에. 나는 마교수의 "소소한 일이나 섹스와 같은 변두리 문제"에 대한 애호를 옹호한다.]

"‘내 책은 지하철에서 못 읽겠더라’,‘아버지가 뭐라고 하더라’,‘군대에서 압수해 가더라’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이 많은데 내 책을 사가겠어? 안마시술소니, 대딸방·터키탕·룸살롱…. 성이 이렇게 범람하고 있는데 성에 대한 논의만은 절대 안 돼. 이게 되게 웃긴 거야. 내가 성해방은 아직 이르고 표현이라도 해방되어야 한다고 그랬는데, 내 책을 판매금지하고 잡아가고. 언론도 그래. 표현의 자유를 외치면서도 내 욕을 한단 말이야. 모순이야. 나 옹호하면 신문 안 팔릴까 봐. 언론은 전부 장사밖에 생각을 안 하잖아.”[韓: 세상이 음탕한 건가, 마광수가 음탕한 건가? 과연 어느 쪽이 더 건강한 건가? "장사밖에 생각을 안 하"는 부류들이 과연 건강하면서도 안 음탕하기까지 할까? 장사, 또는 돈으로 상징되는 소유욕의 끝없는 추구에 매달려 있는 작금의 세상의 쎅스觀이 과연 마광수의 탐미적 쎅스관에 비해 건전하거나 안 음탕하다 할 수가 있는가.]

- 장사는 생각 안 하세요?

“아니 장사를 생각 안 한다면 거짓말이지. 오히려 나는‘고상한 사람들’에게 묻고 싶어. 논문도 그게 다 상품이고 장사야.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화가 안 되면 뭐가 돼. 제일 웃기는 게 이문열은 자기 소설 안 팔아먹었나.‘성(性)의 상품화’? 점잖은 소설 써서 팔면 상품화 아니고 야한 소설 쓰면 상품화고 그게 말이 돼? 일단 출판 자체가 상품화지. 그래도 나는 그건 초월했어. (많이 파는 것보다)책을 여러 권 내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쭉 배운 게 뭐냐 하면 후세에 평가받는 게 중요하다는 거야. 당대에 유명한 작가가 후대에 유명한 경우는 드물어요. 참 희한하지? 왜냐하면, 천재는 시대를 앞서가기 때문에 당대에는 꼭 욕을 먹지.”[韓: 그렇다면 이문열씨는 시간과 함께 스러지고야 마는 건가? 아무튼 앞뒤 안 가리고 말하는 품새가 꼭 철 덜든 아이들 행동거지 같다. 이를 지극히 긍정적으로 봐주려고 노력해보자면, 천진하다고 해야 할까, 순수하다 해야 할까.]

- 스스로 천재라고 생각하세요?

“물론 내가 그렇다고 보는 건 아니지만 역사적으로 그렇다는 얘기지. 예컨대 스탕달, 멜빌, 에드가 알란 포, 빈센트 반 고흐 뭐 이런 사람들. 당대에는 이해를 못 하는 거야. 특히 성(性)문제는 더 그랬어.‘차타레 부인의 사랑(D.H. 로렌스 作)’가지고 난리를 쳤잖아. 그래도 작가를 잡아가진 않았지. 나는 잡아갔지만. 나는 유명한 작가예요. 어쨌건. 그런데 창작과 비평이니, 문학동네니, 문예중앙 이런 곳에서 절대 원고 청탁을 안 해요. 그것만 해도 알잖아.‘똥 안 묻히겠다’이거야. 얼마나 약아. 예를 들어 이제‘민주화 담론은 가고 성의 시대가 왔다’,‘몸의 담론을 해야 한다’ 이러면서도 마광수를 외면해. 얼마나 웃겨. 또‘성이 화두다’하면서도 마광수를 욕해. 나는 그 심리를 이해를 못 해. 억울하다고. 앞서 간 게 뭐가 좌가 되냐 이거야.”

-‘나는 이지메 당한다’,‘나는 왕따다’ 이런 얘기도 자주 했죠.

“내가 파벌을 아주 싫어하거든. 우리나라는 교제 문화야. 나는 그런 게 싫어. 집단주의가 무서운 거야. 개인을 용납을 못 해. 개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천재가 박대를 받아. 역사를 이끌어가는 건 소수의 천재거든. 아인슈타인, 프로이트, 루소 뭐 이런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다 처세가 서툴러요. 공부하기 바쁜데 언제 사교를 하냔 말이야. 그런데 우리나라는 집단에 안 끼면 왕따를 당하거든. 학생사회나 교수사회나 똑같지. 혼자서 뭐 하려고 하면 ‘이 XX 건방져’ 이런 말이 나오는 거야. 우리나라는 어떻게 된 게 논문의 80~90%가 인용이야. 나는 논문을 써도 인용을 거의 안 하거든. 가장 중요한 게 독창적인 건데, 그러면 ‘네가 뭐가 잘나서 네 소리만 쓰냐’ 이런 얘기가 나와.”[韓: 십분 동의함. '교제 문화,' '사교'에 취약하고, 제 소리만 쓰려 작정하고 있는 나로서는]

- 어떻게 에로티시즘에 빠지게 됐는지요.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해서 운동을 안 했어. 골목에서 놀지도 않고. 책을 많이 읽었지. 초등학교 3학년인가 4학년 때 금병매를 읽었는데, 나는 그게 삼국지 뭐 이런 건 줄 알았어. 읽었더니 너무 충격적인 거야. 어린 나이에 흥분이 되고 막 그러더라고. 그리고 초등학교부터 여자 손톱에 매니큐어 바른 거 보면 흥분했어요. 중학교 2학년 때인가 버스에서 어떤 여자를 봤는데 손톱에 빨간 매니큐어를 바르고 있더라고. 당시 내 나이가 어렸는데도 흥분이 됐어. 그게‘손톱 페티시즘’인지도 모르고 그때부터 금병매니 아라비안나이트니 손톱 부분만 줄을 그어 가면서 읽었어. 고1 때부터 야한 소설을 쓰기 시작했지. 써서 신춘문예 냈는데 한 신문사 신춘문예 최종심사에서 떨어졌어. 떨어진 이유가‘잘 썼지만 야해서 못 뽑겠다’였어. 대학에 들어와서 생각하게 됐지. 사람이 제일 중요한 게 식욕과 성욕인데, 먹는 얘기는 너무나 많이 한다. 노동문제도 먹는 얘기 아니냐. 그래서 성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공부해보자. 그런 거지.”[韓: 진솔함이 지나칠 경우, 그것이 오히려 페인트 모션(눈속임 동작)일 수도 있다. 보다 더 깊숙한 치부를 감추기 위한. 마교수의 진솔함은 그런 음흉함으로 느껴지지는 않은데... 내가 그것까지 알 도리는 없고.]

- 대학 생활은 어떠셨나요. 요새도 연애하세요?

“대학교 때는 여자하고 여관도 많이 갔지. 젊을 때니까 기운이 좋잖아? 이혼은 백 번 잘한 거고, 자식도 필요 없고. 작년 초에 10년 만에 연애를 시작해 보려다가 딱지 맞았어. 나보다 20살 어린 분이었는데, 넉 달 동안 쫓아다녔는데 실패했어. 늙었다 이거지. 또 머리가 빠졌단 말이야. 내가 안성기 씨 하고 동갑인데, 안성기 씨처럼 머리만 성해도…. 내가 머리카락에 대한 콤플렉스가 심해요. 콤플렉스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내가 힘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어. 폭력에는 꼼짝도 못해. 몸의 폭력이든, 말의 폭력이든. 그래서 만날 얘기하는 게 왜 폭력영화나 폭력소설은 봐주느냐 이거야. 섹스가 훨씬 착한 거지. 우리나라는 조폭 영화가 많잖아. 그건 다 봐주고 야한 거는 안 되고 이게 말이 돼?”['韓: 자신의 콤플렉스를 이만치 까발릴 수 있는 것은 고수나 하는 일이라고 나는 믿는다. "(폭력보다) 섹스가 훨씬 착한 거지." 착하고 아름다운 문학적 표현이 아닐 수 없다.]

- 연하만 찾는 거 아닙니까.

“나보다 연상이면 어떻게 해. 그럼 환갑 넘겼을 텐데. 늙을수록 여자가 필요한 것 같은데, 아 이젠 연애에 자신이 없어.”[韓: 환갑 넘긴 여자는 여인으로 취급도 못하겠다는 저 못 말릴 철 없음...]

- 취미 활동이 ‘포르노 보기’라고 들었습니다.

“요즘에는 포르노 안 보게 돼. 이제는 질려. 인터넷에서 영화를 자주 보지. 그래도 앤드루 브레이크의 포르노는 한 10편 컴퓨터에 저장해 놨어. 다른 건 촌스러운데 이거 굉장히 미학적이야. 그냥 홀딱 벗는 건 재미없는데, 이건 손톱도 나오고, 옷도 나오고…. 그냥 영화로는 ‘O(오)의 이야기’가 좋지. ‘임마누엘’을 만든 저스트 재킨 감독 작품이지.”[韓: 정말 고리타분한 삼사십 년 전 고전들만 읊고 계시다니, 실망스럽다.]

-‘O의 이야기’도 상당히 야하다고 들었는데요.

“포르노는 스토리 없이 침대 장면만 나오는 거고. 이 영화는 스토리가 있으니까 포르노는 아니지. O의 이야기는 소설부터 좋아했어. 내 책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에서 O의 이야기를 칭찬하는 부분이 나오지. 이 영화가 상당히 유미주의적이야. 우리나라 것으로는 ‘파리 애마’가 괜찮은 것 같아. 조폭영화 말고 애로영화도 좀 나와야 할 텐데.”[韓: 'O의 이야기'는 미국서 여러 놈들과 술마시며 보느라 거의 기억도 안나고, '파리 애마'는 케이블TV에서 조금 보다가 지겨워서 꺼버렸구먼.]

- 연애도 안 하고, 포르노도 안 보면 성적 욕망은 어떻게 해소하나요. [韓: 기자의 질문이 더 재미있다.]

“해소 못 하지. 글 쓰는 걸로 하는 거지. 나는 돈으로 여자는 안 사.”[韓: 돈으로 여자 사면 철창갑니다.]

- 좋아하는 연예인으로 황신혜와 송혜교, 김지수를 뽑았습니다.

“황신혜는 내가 봤을 때 가장 완벽한 얼굴이지. 송혜교는 얼굴은 마음에 드는데, 스타일은 별로야. 김지수가 가장 아까워. 손가락이 제일 예뻐. 내 손가락이 예뻐서 그런지 손가락을 먼저 보는데 김지수 손가락이 제일 예뻐.”[韓: 나와는 미적 취향이 전혀 맞는 곳이 없는 분이군. 더군다나 나는 여자의 손가락을 유심히 본 적은 한 번도 없고. 마교수에 비하면 나는 정말 섬세함이 여실히 떨어지는가 보다.]

마 교수는 최근에 인터뷰 요청이 많이 들어온다고 했다. 문학·문예지는 하나도 없고, 여성 월간지가 대부분이었다. 꿈에 대해 물었다.“나는 나잇값 못하는 게 꿈이야. 늙으면 폼만 잡잖아. 상상력 떨어지니까 대하소설이나 역사소설을 쓰고. 나는 그런 거 안 해. 늙어 죽을 때까지 피 터지게 쓰는 게 꿈이야." [韓: 이미 꿈을 이루신 위대한 분. "나잇값 못하는" 꿈을 이룰 수 있는 이가 세상에 어디 더 있을까. 꿈을 이루셨으니, 앞으로도 계속 폼 같은 걸랑 잡지 마시고 피 터지게 쓰시기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그 기개 앞에, 그의 온몸을 뒤덮고 있던, 세상의 잔인한 손가락질이 새겨진 껍데기 타일들이 우수수 떨어져내려서 부서져버리는 것 같다. "변태, 성도착자, 음란증 환자, 정신병자..." 누가 탕자고, 누가 성자인가? 너무도 쉽게 그 구분과 분별의 잣대를 소유했다고 믿는 우리의 경박함이 문제 아닐까?]

 



 


                  



3. 우디 알렌의 콩가루 집안

우디 알렌이라는 미국의 배우겸 제작자가 있다. 나는 그가 던지는 말들이 신랄하고도 심오하다 여겨, 그 중 하나를 이 싸이트의 입구 화면에도 걸어 놓았다. 몇 년 전인가 그가, 자신의 아내인 여배우 미아 패로우와의 슬하에 입양한 한국계 입양아 '순이'를 새 배우자로 삼았다는 외신보도가 들려왔다. 가만히 따져보면, 살다보니 아내가 장모님이 되는 희한한 케이스다. '동방예의지국'의 법도에 비춰보면 그야말로 쌍놈의 콩가루 집안이 아닐 수 없다. 당시엔 나마저도 알렌을 조소했었다. 그러고 나서 또 세월이 흘렀다. 차분해지고 나서 내가 아는 것은, 나는 그를 심판할 아무런 자격도 없다는 것이다. 그들 가족사의 깊은 심연과 그들 관계망의 미세한 얽히고 섥힘을 제3자가 알 도리가 없다. 무디디 무딘 '거대 담론'인 유교적 가치관을 서구인인 그 가족에게 들이댄 내가 할 일 되게도 없는 놈이었을 뿐. 이제와서야 나 스스로에게 고백하건대, 나는 여전히 그의 삶에 대한 태도를 존경해오고 있었다. 그의 삶의 과오와 실책 - 이또한 제3자가 자의로 규정하고 있을 뿐인 - 에도 불구하고. 며칠 전 신문에 그의 이같은 말이 실려 있었다: "내가 능력이 없다고 해서 하고 싶은 일에 뛰어드는 것을 주저한 적은 없다."

우디 알렌은 미국 문화의 주류적 시선으로 볼 때 국외자이다. 헐리우드 스타들처럼 잘생기고 균형잡힌 몸을 보유하지도 못했고, 두꺼운 뿔테안경을 끼고 왜소한 몸집을 가진 인텔리겐챠의 전형적 풍모를 지니고 있다 - 미국 대중문화의 전형적인 기피대상. 그런 그의 존재가 내 생각에는 미국이라는 문화의 소중한 해독제 작용을 해왔다고 믿는다. 확장적, 파괴적, 공격적, 야수적, 남성적인 미국 문화의 반대편에서 홀로 외로이 대조적인 취향과 가치관을 제시해옴으로써 그 문화가 일방적인 파국의 구렁텅이에 빠져드는 것을 조금이라도 막아줬다고 믿는다. 즉, 우디 알렌이 있어서 미국은 조금이라도 더 나아졌다는 말이다 - 또는 조금이라도 덜 나빠졌거나. 만약에 나의 이러한 평가가 타당하다면, 이는 한 개인이 평생 해낼 수 있는 일로는 어마어마한 공로가 아니겠는가. 물론 이는 나 개인의 지극히 개인적인 평가에 불과하지만.

* 최근 입수한 소식에 의하면, 알렌의 전처인 미아 패로우는 알렌과 혼인하기 전에 세계적 지휘자인 앙드레 프레빈의 아내였는데, 당시 프레빈이 첼리스트 정경화와 염문을 뿌린 일이 있었고, 바로 그 일 직후에 패로우는 한국인 소녀 순이를 입양했다고 한다. 혹자는 한국인 정경화에 대한 증오심 때문에 패로우가 순이를 입양하고 학대했으며, 이렇게 자란 순이의 내면을 새 양부인 알렌이 어루만져주며 둘 사이에 사랑이 싹텄다고도 한다. 순이는 양모인 패로우에 대해 공적으로 아무런 비난도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패로우와의 접촉을 완전히 끊고 살고 있다고 한다. 물론, 이것도 이 복잡한 가정을 바라보는 단 하나의 관찰에 불과할 뿐이다. 어쨌든 알렌과 순이는 매우 단란한 가정을 꾸려서 잘 살고 있다 한다.


4. 변태와 성자

같은 맥락에서 나는 마광수라는 한 개인이 장기적으로 볼 때, 한국사회의 문화의 편향성과 파괴성에 대하여 미량이나마 해독제를 투여해준 공로자라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도덕주의적 점잖음과 일상화된 위선으로 단단히 포장돼있는 우리 사회에 투명성 높은 자아를 예시해준 그의 공을 높이 사고 싶다. 그런 큰 공, 상을 주기는커녕 아무도 인정해주지도 않고 비난하고 조롱하기만 하는 공을 세우기 위해 그 자신의 사적인 삶은 해체당해야 하는 비극을 겪었어야 하는 것일지... 둘째 딸 나나가 요즘 애비와 '한국의 위인 백명'을 논하던 중, 유관순에 대해 설명해주자, 주저없이 "어리석은 사람"이라 평하는 것이었다. 당황한 내가, 나라를 위해 제 목숨을 바친 '위인'들이 있어서 우리가 이만큼이라도 살 수 있는 것이라며 어줍잖은 '교화'를 시도했건만, 영악한 딸년은 콧방귀도 안뀐다. 뻔히 죽을 짓을 왜 하냐는 것이다. 죽을 줄 알면서도 만세운동 하는 이가 바보같다는 것이다. 나는 어쩔 도리없이, 그렇게 느낀 점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잘하는 일이라고 칭찬을 해줬다. 실은, 나도 나나의 논리를 완전히 부정할 수가 없다. 사회를 위해 진정한 기여를 하는 이들이 죽임을 당하거나 배척당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굳이 예수님을 거론할 것도 없이.

'사회를 위한 큰 공'이라는 평가는 나처럼 편향된 시각을 가진 한 개인의 과장이라고 치자. 이미 파괴적인 '소유적 섹스'가 만연해 있는 우리 사회에 - '북창동,' '나이트,' '묻지마 관광,' 아동 성폭력, 직장 성폭력 등등에 관해 들어봤는지 - '탐미적 섹스'에 대한 감성적 견해를 밝히는 것이 죄가 될 수가 있나? 내게는 사라나 라라가 한국사회라는 거친 황무지 벌판에 피어난 소중한 - 비록 크게 아름답지는 않을지 몰라도 - 들꽃 한송이로 보인다.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말을 무시하자는 게 아니다; 마교수의 작품은 적지 않은 파급효과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나 '프리섹스' 따위는 이미 이 사회에서 그가 더 촉진시킬 건덕지도 없을 성 싶다. 게다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자본주의적 배금주의나 가부장주의적 남성특권의식, 또는 전체주의적 개발을 지지하는 폭력성 등등에 비할 때, 그 파급효과라는 게 일어나봤자 얼마나 대단한 파괴성을 가질지 나는 회의한다 - 만약에 그 파급효과가 '파괴성'을 가진다고 구태여 가정해야만 한다면.

사회적 공헌이고 뭐고 간에, 나로서는 탐미적 섹스를 공공연히 선언하는 마광수의 개인적 투명성이 가장 존경스럽다. 그건, 명문대 교수이자 유명인사인 그도 그렇게 자신을 까발리는데 - 애초에 까발림으로 유명인사가 되긴 했지만 -, 별 것도 아닌 나같은 인간이 그렇게 하지 못함이 부끄럽기 때문이기도 하다. 허나 내가 그와 다른 점은, 내게는 아내와 두 딸이 있고, 대학에서는 장래의 교사 지망생들을 가르친다는 사실이다. 전자를 고려하면 내 내면의 어둠을 공표하는 것은 어린 딸들에게 혼란과 상처를 줄 수 있으므로 현명치 못하다; 후자를 고려하면, 아무래도 젊은이들을 위해서 여전히 밝음과 맑음을 예시하는 편이 그나마 더 적절하다고 본다. 이 두 요소가 내게 없었다면, 나도 그와 같은 수준의 투명성을 보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진짜 나'는 아마도 '가짜 나'의 안에 숨어있는 어둠을 끄집어내는 것을 신중하게 옹호하지 않을까? 인간 사회가 아니라 신이 만드신 검색대를 통과해야 할 때가 되면 어차피 다 끄집어내야 할 테지만. 가장 깊숙한 구석에 숨겨둔 어둠까지도 말이다. 내 눈에는, 제 내면의 어둠까지도 다 검색대에 끄집어내서 투명성을 확보한 이가, 즉 신과 투명하게 내통하고 있는 이가 성자다. 따라서 '성자'라는 후광에 관습적으로 따라붙는 외적인 경건함의 장치들과 성자됌은 본질적으로 아무런 관련이 없다. 내 눈에는, 폼잡는 성직자보다는 마광수가 더 성자에 가깝게 다가선 이로 보인다. 폼잡는 성직자를 성자에 가깝다고 보는 상투적 시각은 지나치게 인간적이어서 편협하고, 또 부정확하다.

내 눈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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