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의
토끼 사냥 (2007/7/18)
©
Suk Hoon Han
[원고
발췌 1]
*
지난 주에 예고한 바와 같이 앞으로는 제가 지금까지 집필해온
글들 중에서 이 쎅션에 어울릴만 한 부분들을 발췌해서 올리겠습니다.
제가 글쓰기에 집중하고 있는 동안은 당분간 이런 형식으로 '수행 일상'을
이어가겠습니다. 이 글들은 대체로 소설의 형식을 빌고 있습니다만,
일상적인 의미의 소설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교재'에 가까운 글입니다.
궁극적으로 출판할 글이므로, 문장에 이상이 있다든가 한 것을 발견하신
분께서는 친절히 지적해주시면 대단히 고맙겠습니다.
“전단지를
좀 받아주시겠습니까? 하하!” 쾌활하게 웃고 있는 한 청년이 몸을 숙이며
전단 한 장을 N에게 내밀었다. 순간, N은 내심 놀라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여러 해 동안 수도 없이 이 길을 오갔지만, 그깟 전단 한 장을 건네기
위해 이렇게까지 열정을 바치는 이는 본 적이 없었다. 청년은 해사한
미소를 얼굴 가득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상체를 깊숙이 숙여 지극한
예우를 표하고 있었다. 그깟 ‘찌라시’ 한 장 건네주려고... N은 전단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청년의 정성이 가득한 영업행위를 무시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그 청년에 대한 존경심마저 N의 마음속에 슬그머니
피어올랐다. ‘정말 열심이구나.’
.....
방금의 그 청년에게
감탄하고 보니 문득, 몇 시간 전에 지하철을 타러 가던 길에 목격한
한 초로의 행상 아낙이 떠올랐다. 남루한 행색의 그녀는 구매자인 한
중년 여인과 나물뿌리 몇 포기의 값을 흥정하고 있었다. 아낙과 구매자는
나물 한 포기를 같이 움켜쥐고 승강이를 벌이고 있었는데, 구매자가
제시한 값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행상은 애처로운 표정으로 이렇게 간청하고
있었다. “아주머니, 한 단에 오백 원씩에 드릴게요.” 구매자가 채가려는
듯 쥐고 있는 나물 밑단을 함께 움켜쥔 행상 아낙의 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고작 몇백 원의 이문을 남기기 위해 그녀는 그 순간 자신의
온 존재를 바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들었던 촌스러운 속담이
떠올랐다. ‘사자는 토끼를 사냥할 때에도 최선을 다한다.’ 그래, 토끼
한 마리 잡는 것도 건성으로 해선 실패하겠지. 오백 원짜리 나물 한
단도 건성으로는 팔 수 없고, 찌라시 한 장도 건성으로는 돌릴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N은, 자신이 생활 속의 모든 일을 건성으로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 자체를 건성으로 대하고 있는
처지의 그가 삶으로부터 별 감흥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다. 최선을 다하는 삶이 부럽긴 한데, 자신이 그리 하지를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못마땅하다.
‘뭔가 신나는 일 좀 없을까... 그걸
찾을 수만 있다면 최선을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은데... 혹시 난 그걸
찾는 것마저도 건성으로 해온 건 아닐까?’
N은 그 사자의 속담이
나름대로 깊은 뜻을 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자도...”라
하지 않고, “사자는...”이라 한 것은, 굳이 강자의 특성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라, 누구든 매사에 최선을 다해야 사자와 같은 최상의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뜻을 내보이기 위함이 아닐까? 꽤 그럴 듯 한 경구 같다.
무더운 아프리카 사바나에나 서식하는 사자와 어울리지 않는 토끼를
함께 등장시킨 탓에 촌스럽게 들리기는 하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