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도 (2007/11/4)
©
Sukhoon Han
[원고
발췌 14]
[이단
도학자 장원의 말]
"젊은이들, 유교도 좋지만, 우리 선조들이 물려줄 수 있는 유산
중 최고는 바로 풍류여. 풍류도를 깨치면 맹공(孟孔)이 소리가 우습제.”
“풍류라면, 선비들이 경치 좋은 데 가서 기생들하고 놀면서 술 마시던 거 아닌가요?”
Y가 물었다.
“허허, 이 친구, 고등학교 슨상님이래구선, 이래 우리 문화에 대해 깜깜하다니. 풍류는 단순히 술 처먹고 기생 끼고 노는 게 아니여. 풍류란 내 몸의 기를 최고조까지 끌어올려서 순수한 ‘나’가 돼서 자연의 법리와 하나가 되는 예술적 구도의 방법이여.”
N은 ‘아아, 그러니까 락 가수가 뽕 맞고 헤까닥해서 자신의 예술을 더 높은 경지로 승화시키는 것과 비슷한 거로군요?’라고 물으려다 표현을 다소 순화해서 물어봤다.
“아아, 선생님, 나 자신과 내 앞의 자연에 ‘경’해서 몸이라는 ‘기’ 속에 감춰진 인간의 본연지성과 자연의 ‘리’를 표출하는 거라고 말해도 되겠습니까?”
“허허, 역시 오교수의 제자가 뭘 좀 아네. 풍류는 호연(浩然)의 도를 자연스럽게 불러일으켜 주지. 그래서 술의 독이 풀리고, 가야금 소리는 바람을 타고 하늘에 이르게 된다네. 그때 시 한 수가 흘러나오면 내가 곧 천지와 합일(合一)하게 되는 거지.”
‘오교수님 욕할 땐 언제고.’ N은 볼수록 장원이 우스웠다. 밉지가 않았다. N의 장난기도 발동하여 장원의 술잔에 자신의 술잔을 연상 갖다 붙이며 분위기를 살렸다. 실제로 주도(酒道)를 풍류의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능력을 보유했는지, 장원은 계속 술을 들이키며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신라의 최치원이 유·불·선 삼교가 풍류도 속에서 하나라고 쓴 것이 유명하잖여. 원래 셋 다 껍데기 자아를 떨치고 최상의 자신, 참된 자신, 자연과 신과 하나인 자신으로 돌아가라는 가르침을 펼쳤잖여. 그것이 바로 하나님과 하나인 상태란 말이여. 좁아터진 우리의 자아를 내던지고 무한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엑스터시를 우리 조상들은 봄, 가을에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면서 체험했던 것이지. 몰아의 경지가 되서 하나님을 체험하면 몸과 마음에 사랑이 넘쳐서 주변에 사랑의 기운을 퍼뜨리려고 하게 돼. 바로 홍익인간! 이것이 풍류의 본질이여. 물론 강단에서 연구하는 학인들은 이런 얘기가 너무 거칠다고 안 좋아하지만, 난 세심한 그들처럼 사실 확인이나 하고 앉았기엔 풍류를 즐길 일들이 너무도 많거들랑.
말이 나왔응께 말인디,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제례를 드렸던 우리 민족의 고유의 전통이 바로 샤마니즘인 것이여. 시베리아 샤마니즘이 풍류도로 발전했다고 보는 학자들도 꽤 있어. 그리고 이 샤마니즘, 우리 민족적 기질의 핵심인 무속의 뿌리라고 보이는 이 샤마니즘이 유교, 불교, 도교 모두의 모태라는 주장도 있지. 신과 합일하는 엑스터시의 능력을 가지고 빙하시대에 직관적으로 제 족속을 이끌었던 자들이 샤만인디, 이 샤만의 제례 의식을 공자가 물려받아서 보다 사회적으로 세련되게 만든 게 유교란 말이여. 유교의 ‘유(儒)’ 자는 하늘과 통해서 비를 부르는 샤만을 의미하는디, 실제로 ‘유’는 상나라 때 제례 전문가들을 지칭했어. 마찬가지로 불교의 수행자인 사문(沙門) 허고, 도교의 선인(仙人)을 말하는 선문(羨門), 둘 다 샤만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이 말이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