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물치지 (2007/12/2)
©
Sukhoon Han
[원고
발췌 15]
[이단
도학자]
장원은 정자 옆의 나무 한 그루를 가리키며 말했다.
“자, 이 참나무를 한 번 보드라고. 서양식 과학자는 이 나무를 해부해서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를 연구하고, 이 나무를 인간이 어떻게 써먹을 수 있을까에 관해 머리 터져라 연구하잖아. 그 과정에서 지금 이 순간 자신 앞에 서있는 참나무는, 참나무 종(種) 전체를 대표하는 한 그루의 샘플이 돼버리지. 샘플은 손쉽게 실험 재료가 될 수도 있어. 과학자는 도끼로 이 나무를 베어버리고 잘게 썰어 현미경 관찰대 위에 올려놓을 지도 몰라. 그렇게 함으로써 이 과학자는 이 나무가 대표하는 참나무라는 한 수종의 인간에 대한 유용성을 밝혀내게 되지.
헌데 우리의 성리학자는 어떻게 할까? 이 작자는 우선 이 참나무가 참나무 종을 대표하는 하나의 샘플에 불과하다고 보지를 않아. 바로 지금 내 눈 앞에 서있는 요 나무, 바로 요 나무 그 자체로서만 바라볼 뿐이야. 생각하고, 분류하고, 다시 말해서 냉정하게 객관화된, 관찰자와 철저하게 분리된 하나의 ‘대상’으로서 이 나무를 보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인 이 참나무에게 ‘경’ 하는 거야. 바로 요 참나무의 독특한 개성을 보고, 이 참나무가 지금 이 위치에서 하늘과 별과 바람과 무슨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살피고, 이 구체적이고도 특수한 정황과 맥락 속에서 바로 요 참나무가 존재하는 이치를 깨닫고자 하는 거야. 그래서 요 참나무와 나와의 관계를 알고, 자연 속의 참나무에 담겨있는 ‘리(理)’를 보고, 그 ‘리’가 자신 내면의 ‘리’인 본연지성과 교감하는 것을 맛보는 게야, 바로 호연지기 하는 거지.
이게 바로 성리학자의 격물치지(格物致知) 방법이여. 사물을 소유하고 써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사물과 궁극적으로 결코 분리될 수 없는 ‘나’하고의 관계의 가장 높은 경지를 깨치는 것이 그 목적이지. 그렇게 될 때 ‘나’는 참나무를 분류하고, 인간 문명에 대한 그 기여도를 분석할 수는 없지만, 이 참나무 한 그루를 존경하고 사랑스러워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 이 참나무에게 친절하게 마음 써주게 되고, 이 참나무와 더불어 자신의 삶을 더욱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들 수 있게 되는 것이지.
허허, 이것이 바로 성리학이, 유학이 21세기 지구 문명에 제공해줄 수 있는 크나큰 기여일지 몰라. 서구식 자연과학이 지배한 현시대는 자연 속의 사물을 존경하고, 그들에게 친절을 베풀며 평화롭게 공존하는 방법을 전혀 모르거든. 우리가 격물치지의 방법을 익혀서 자연 속의 생명들에게 ‘경’할 수 있다면 작금의 생태계 파괴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런지도 몰라."
